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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Apr 28. 2022

얼떨결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오른쪽 다리 10번 갈게요."
"외외왼.. 왼쪽은 8번 했잖아요!"
10번 반복하라는 강사에게 다급함과 당황함을 담아서 소리쳤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남편은 고질적인 허리와 목 통증을 얻었다. 정형외과에서는 필라테스를 권했다. 바로 필라테스 상담을 받았다. 남편 혼자 받는 1인 수업 비용에 오천 원을 더 내면 나도 함께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어색하고 낯설기만 한 필라테스에 잠시 쭈뼛거렸지만 오천 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과  같이 운동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나에게 운동의 완성은 장비이다. 과감하게 레깅스와 티를 준비했다. 물론 까만색이다. 밝은 색은 내 몸에 좀 부담스럽다. 척 민망하지만 극복해 보기로 했다. 허리에 넓은 밴드 처리가 되어있는 레깅스임에도 불구하고 볼록 뱃살들이 삐집고 나왔다. 레깅스 안에 쑤셔 넣었다.


필라테스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을 보고 흠칫 놀랐다. 까만색의 효과일까?'오호~~~ 봐줄 만한데.' 요리조리 허리를 비틀어 가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흡족해있었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고 들어오기 전까지. 거울에 비친 남편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아저씨로 보였다. 젠장. 날씬해 보이는 거울이었다. 


요즘 필라테스가 핫한 모양이다. 티브이 필라테스를 하는 연예인도, 일반인많이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몸이 단단하고 예쁘다. 이 운동을 하면 나 역시 그런 몸을 가질 수 있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면서 강사를 따라 했다.


"으윽"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허벅지 안쪽 근육 운동은 너무 아팠다. 10번 반복하라는 강사의 말에 진심 화가 난 톤이 나왔다. "왼쪽은 8번 했잖아요!"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10번을 채우고 수업은 끝났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개다리 춤 췄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써서일까? 어색한 통증과 함께 몸이 후들거린다. 이상하게도 이 느낌이 싫지가 않다. 분명 픈데 개운하다. 다가 낯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한다.


어느새 익숙한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가 됐다. 그 익숙함은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낯선 것에서 오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슬슬 피했다. 선뜻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만난 필라테스의 "낯섦"에 설렌다. 뭔가를 처음 시작할 때 느낄 수 있는 떨림과 긴장감이다.


작년 여름에 귀국했다.
한국 슈퍼마켓이 낯설게 변해 있었다.



소비자가 직접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입한 물건들을 들고 음이 됐다. 직원 도움으로 계산을 했지만, 그 후 이용할 때마다 쓸데없이 긴장을 했었다. 게 뭐라고... 지금은 거만한 자세로 셀프 계산을 한다. 나름 바코드 찍는 "띡. . ." 소리까지 즐긴다. 낯섦에 한 발 내디뎠던 난 셀프 계산 초보 객에서 '초보' 딱지를 뗐다.


슈퍼에서의 경험은 비록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낯선 것을 해낸 내가 기특했었다. 누구나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접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크든 작든 그것을 넘어서려면 침을 꿀꺽 삼킬 만큼의 긴장과 용기가 필요하다.


선 것을 만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하나 더 알게 된다. 그만큼의 내 시야도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낯선 을 두려워하거나 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기로 해본다. 


얼떨결에 시작한 낯선 필라테스. 익숙한 근육만을 쓰던 나는, 이제 낯선 근육을 쓰는 방법도 알아가고 있다. 낯섦이 주는 짜릿한 떨림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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