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행위는 행복이다. 음식의 고소하고 달콤한 연기가 코를 자극할 때, 풋풋한 야채의 모습이 눈을 매혹할 때, 코를 쏘아대는 매콤함에 목구멍에서는 자연스럽게 꿀꺽 소리를 낸다.
불 판에 구워진 고기를 입안 가득 넣었을 때의 그 만족감, 믹스 커피 한 모금이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달달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한 입 베어서 입 속으로 넣을 때의 만족감은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과는 다르다.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은 순간이라서 오래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자주 그 행복을 찾는다.
천성이 게을러서 조금의 기회라도 생기면 아무것도 안하고 비비적거리는 나를 알기에, 쉼 없이 동선을 잡아서 움직이고 움직임을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자주 났다.
지금은 나이를 먹으면서 먹는 양이 예전 같지 않다. 밥도 한그릇은 너끈히 채우던 위가 어느 날부터 한그릇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내 입이 좋아하는 것만 손이 간다. 여러 종류의 빵이 있다면 케잌류부터, 반찬은 고기부터, 과일이라면 수박이나 감부터 먹는다. 어느 정도 만족했다 싶으면 차순위를 먹어볼까 하는 식이다.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남편과 저녁을 먹을 때다. 영화를 본다던지 유튜브를 보면서 식사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고기 반찬을 혼자 다 먹을 때가 있다. 남편이 반주를 할 때면 속도를 천천히 하고 먹기에 밥을 빨리 먹는 나는 생각없이 없다가 접시에 담긴 반찬을 혼자 먹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식탐이 있나 봐. 나는 고기 한 점 밖에 안 먹었는데 벌써 접시가 다 비워졌어.”
남편 말에 접시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란다. 함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먹은 것이다. 순간 나는 민망함과 미안함이 얼굴에 번진다. 물론 냄비에서 가져다가 다시 담으면 되지만 한 접시를 혼자 다 비웠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가 왜 식탐이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내 입으로만 맛있는 음식을 생각없이 넣게 되었는지.
나는 삼남매다. 위로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고 아래로는 다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풍족하게 간식을 먹거나 고기를 먹던 시절이 아니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 순서가 달랐다. 나는 맛있는 부위를 빨리 먹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까워서 맛없는 것을 먼저 먹고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는 식이었다. 동생과 오빠는 달랐다. 맛있는 걸 먼저 먹고 맛없는 걸 나중에 먹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손해였다.
엄마가 포도를 사 온 날이었다. 탱글탱글 터질 듯하게 탐스러운 포도송이 사이에 물러터지거나 쪼그라 있는 포도알이 중간중간 있었다. 나는 탐스럽고 이쁜 포도알을 아껴 먹으려고 부지런히 쭈글이 포도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와 동생은 옆에서 통통한 포도알을 빠른 속도로 흡입하는 거다.
“왜 맛있는 것부터 먹는거야. 맛 없는 거부터 먹어.”
나는 눈을 흘기면서 화난 목소리를 던졌다.
“그럼 너두 맛있는 거부터 먹으면 돼잖아.”
오빠는 이렇게 말하고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억울했다. 맛있는 걸 빠르게 먹어 치워서 없어지는 것이 아까워서 천천히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내마음을 몰라주는 오빠와 동생에게 분노의 눈빛을 쏘아 댔다. 함께 먹는 포도송이에서 나만 아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포도알부터 마구 입으로 따 넣었다. 씹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줄줄 넘겼다. 껍질을 뱉어내는 건 지는 거였다. 조금 덜 억울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먹기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지않아도 먹는 것이 부족해서 밥만 많이 먹던 시절이었다. 과일을 먹거나, 과자를 먹거나, 세끼 밥을 제외하고는 풍족하게 먹는다는 건 제사때나 명절 때 외에는 없는 호사라, 있을 때 무조건 뱃속을 채워놔야 하는 건 세 남매의 보이지 않는 삼국지전이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어렸을 적 가졌던 식탐이 튀어나올 때 남편은 나에게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처음 남편에게 그 말을 들을 때에는 변명하기 바빴다.
“엉? 당신도 함께 먹은 줄 알았어. 나만 먹고 있는 줄 몰랐지.”
“함께 먹는 사람이 얼마나 먹는지도 봐야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알았어.^^:: 앞으로는 당신 먹는 것도 신경쓸께.”
민망함에 화끈거리는 얼굴의 열기를 끄기 위해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식탐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기 바라면서 입 속의 음식을 천천히 오물거리며 넘긴다.
지금은 먹고 싶은 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도 생겼고, 자주 먹다보니 그다지 먹고 싶은 게 없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애착도 없다. 그런데도 가끔 나도 모르게 치열하게 먹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행태가 나오나 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전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포만감은 승리의 기분을 주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오감은 행복감으로 온 몸에 전율을 줄 만큼이다.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계속 느끼며 살고 싶다. 때로는 살이 찔까봐 걱정하는 마음도 앞선다. 그래도 입에 맞는 음식은 남기는 여유없이 바닥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아직까지 나를 홀리는 음식을 보면 기꺼이 넘어가야 한다는 전투욕이 남아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