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현실을 떠나다

by 희정의 향기

여행은 나에게 숨 쉴 수 있는 구멍이다. 계속되어야 하는 하루의 빽빽한 일들은 천천히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요즘은 하늘을 본 적이 있나 싶다. 나도 모르게 점점 어깨가 굽어져서 펴지지 못한다고 느낄 때 즈음 여행을 간다.


나의 여행은 차를 타면서 시작된다. 눈을 스쳐 지나가는 빼곡히 차 있는 건물들을 지나 한적한 집이 드문드문 보인다. 차창문을 열면 머릿속에 있던 온갖 쓰레기 잡념들이 바람에 실려 차 뒤로 멀어진다. 머릿속은 찬물 속에 뇌를 담가 흔들어서 다시 넣은 것처럼 시원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온갖 걱정거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차창밖에서 바람이 들어와서 조금이라도 남겨져 있는 찌꺼기를 훑어서 다시 사라진다.


남편이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달리는 차 안에서의 한가함을 즐긴다. 볼륨을 키운 라디오에서는 어쿠스틱

음악이 리듬을 타고 있다. 아는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알지도 못하는 흥얼거림이 나온다..


“그렇게 좋아?”


허밍을 듣고 남편은 빙그레 웃는다. 내가 음악을 흥얼거리니 남편도 고개를 까닥거린다. 자동차 회사에서 나왔던 CF가 떠오른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맞바람을 견뎌낸다. 느껴지는 희열은 바람에 지지 않아서 일 것이다.


신호등에 걸려 차가 선다. 옆 차선에도 검정 소형 suv 차가 선다. 차 안에서 신나는 리듬이 흘러나온다. 그들도 나들이를 가나 보다.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한 주를 보낸 그들도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나 보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어떠한 시간들을 보냈을까. 얼마나 사람들에게 치이고 상처받았을까. 그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현실이 아닐 것이다. 그래, 꿈에서 노닐듯이 한껏 부풀어 달려보자.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눈을 뜨면 다시 부딪히고 설득하고 이해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압박의 현실이니 꿈의 시간으로 가는 지금을 즐기자.


같은 도로에서 달리는 모든 차들을 보면서 동지애가 느껴진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에 있다는 것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무언가 손에 들고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이십 대 남자를 본다. 남자가 서 있는 자리를 뒤로 하는 순간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에서 선망의 잔영을 본듯 하다.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경춘선을 타고 출퇴근한 적이 있었다. 집이 평내 쪽이라서 주말이면 외곽으로 가려는 차들로 도로가 붐볐고, 경춘선은 등산을 가는 사람들과 춘천 쪽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주말이 평내의 모습이었다. 장을 보기 위해서 마트를 갈 때나 일이 있어서 길거리로 잠깐 나오다 보면 비트 있는 음악소리를 흘리며 달리는 차를 보곤 했다. 날씨가 봄날일 경우는 차창문을 열고 얼굴에 웃음을 채운 사람의 얼굴도 본다. 그들을 보면서 부러움에 어깨가 움츠러든 적이 있었다. 아이와 둘이 살면서 아껴서 돈을 모아야 했던 시기였다. 차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런 차를 보면 나도 모르게 함구의 눈빛으로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상을 했다. 여행을 가는 저 차 안에 내가 타 있고, 내 마음을 뛰게 만드는 자동차 소리에 맞춰 내 심장도 뛰고 있는 상상을.


스쳐가는 남자를 보면서 평내에서 마트를 가면서 느꼈던 감정을 저 남자가 느꼈을 거라 가늠된다. 반은 그러기를 바라고 반은 아니기를 바란다. 누군가 나를 부러워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지금은 일을 하지만 그도 내일은 나처럼 도로에서 달릴 것이라는 바람에서 그렇다.


우리는 다산 공원에 차를 세운다. 서울에서 가깝고 흐르는 강물을 옆에 두고 커다란 나무와 동행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 피곤하면 돗자리를 깔고 풀밭에 누워서 코를 골아도 된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부부터, 갓 연애하기 시작한 커플, 포근한 이불처럼 편안해 보이는 가족,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모두 현실을 떠나 잠시 여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다. 공원은 조용히 사람이 많다.


아무 말없이 한강을 보면서 남편과 발을 맞춘다. 바람이 불면 동행하는 나무에서 사사삭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이 나무를 유혹하며 사라지는 소리다. 머리카락이 옆으로 날리면 고개를 사십오도 각도로 흔들면서 영화에서 본 여주인공 흉내를 낸다. 남편은 말없이 손을 잡는다. 심장이 편안하게 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걱정이 웃고 있다. 그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다.


한가롭게 흐르는 한강 옆 의자에 앉는다. 남편은 나의 손을 더욱 꽉 쥔다. 나의 심장은 그만큼 더 안정적이다. 아무 말없이 흐르는 한강은 우리에게 편히 쉬라고 눈짓을 한다. 그동안에 쌓였던 힘들었던 시간과 짐들을 윤슬에 녹여내라고 한다. 머리가 비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사라졌다. 강과 우리 만이 지금 존재한다. 바람도 존재를 숨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든 짐을 두고 와서 그런지 한껏 가볍다. 내일을 생각하려다가 멈춘다. 조금이라도 현실에 발을 디디는 것을 늦추고 싶어서다. 서울로 다가갈수록 정체구간이 길어진다. 차창 밖의 풍경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인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체시간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란다. 느린 풍경을 좀 더 바라보고 싶다. 그래야 내일이 빨리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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