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기억

by 희정의 향기

오늘도 겨우 눈을 뜬다. 암막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자다 보니 알람이 꽥꽥 소리를 질러야 눈을 뜨는 호사를 누린다. 눈동자는 움직이지만 몸은 침대에 붙어있다. 침대가 나를 붙들어 맨 건지 내가 침대를 붙든 건지 모른다. 확실한 건 침대를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묶어놓은 쇠사슬을 끊어내듯이 팔과 다리를 휘저어서 이불을 제친다. 맹추위가 밤부터 시작된다고 방송에서 요란을 떨었지만 집 안은 조용히 따스하다. 담요느낌의 잠옷을 입고 거실로 나가 커피포트에 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버튼을 누른다. 쉬이익 소리가 나면서 물이 끓어오를 준비를 한다. 고딕풍으로 생긴 찻잔에 커피를 붓고 물을 붓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난다. 아늑한 느낌의 거실에서 고소한 향의 커피를 마시는 호사에 얼굴에 여유가 번진다.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원하는 만큼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고 반팔을 입고 있어도 되니 겨울이라는 계절이 민망해하겠다. 여렸을 적에는 따뜻하고 아늑한 집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상상에도 없었다.


아침이면 엄마가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 이불을 확 제쳤다. 내복을 입고 잠을 자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얼음물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들었지만 파고들 구멍도 없는 이부자리로 몸을 들이밀어 넣었다.


연탄으로 따뜻한 집을 유지했던 당시 우리 집은 연탄아궁이가 없었다. 수선집을 하면서 손님이 요청하면 바지나 치마를 맞추었기에 옷을 지을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가게에서 멀지 않은 반찬가게 2층은 부모님이 찾는 그런 집이었지만 연탄아궁이가 없었다. 우리는 방 한 옆에 연탄난로를 피웠다. 난로를 지키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벌겋게 달구어진 연탄을 꺼내서 검정연탄과 자리를 교체시키는 것을 볼 때면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오르는 연탄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연탄난로는 지금의 도시가스와 달리 일정한 따스함을 유지하지 않는다. 난로는 연탄이 위 아래 두 개가 직렬로 놓인다. 불덩이 아래 연탄이 베이지색 재로 변하면서 위의 검정 연탄에 자신의 불덩이를 옮긴다. 아래 연탄의 불꽃이 위 연탄으로 옮겨 붙는 데에 성공하면 난로에서는 후끈후끈한 열기를 내뿜어 방 안의 공기를 따스하게 덮여준다. 연탄을 꺼트리는 날에는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 안 공기가 다른 날과 달랐다. 분명 설익은 듯한 온기가 돌아야 할 방인데 쌩쌩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불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이불밖으로 내민 입에서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보였다.


"오빠! 이것 봐라. 내 입에서 연기가 나온다."


초등학생은 오빠에게 더 많은 입김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힘껏 입에서 숨을 뱉는다.


엄마가 난로 뚜껑을 열고 보시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연탄이 빨리 탔네......"


아침까지 은은하게 따뜻함을 뿜을 수 있도록 난로 불구멍을 적당히 닫아주었어야 했다. 활짝 열린 불구명은 연탄이 확확 거리며 빠르게 재가 되게 만들었다. 어젯밤 엄마의 피곤함이 불구멍 조절을 막았다.


엄마는 연탄집게로 아직 윗부분에만 열기가 남아 온몸이 베이지 색으로 변하려 하는 위 연탄을 꺼내, 난로 옆 양동이에 놓고 제 역할을 마친 아래 연탄을 꺼냈다. 다시 밑에 불씨가 남은 연탄을 아래에 놓고 새 검정 연탄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불이 잘 붙어야 할 텐데...."


엄마는 공기가 숭숭 들어가게 난로 불구멍을 있는 대로 제쳐 열었다.


따뜻한 공기를 언제 들이마실 수 있느냐는 연탄이 얼마나 빨리 자신을 불사르냐 마음먹는데 달렸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난로의 불구멍을 열어 놓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식어버린 연탄은 엄마의 가장 큰 겨울의 걱정거리였다.


보일러 온도를 너무 높게 돌려놓았는지 청소를 한다고 집 안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더니 몸에서 열이 난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고 긴팔 남방 하나만 입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싱크대에 놓여있는 컵과 어제 씻지 않고 내버려 둔 접시를 닦는다.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하니 서두르지 않는다.


욕실에서 씻을 준비를 한다.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찬물로 욕실 여기저기를 뿌리면서 고양이청소를 한다. 뜨거운 물이 나오면 머리 감기를 시작해서 온수가 감싸주는 몸의 온기를 느끼면서 천천히 씻는다. 어렸을 적 이렇게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어렸을 적 목욕은 내 몸의 허물을 하나 벗기는 날이었다.


엄마는 수선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시면 뚝딱뚝딱 저녁상을 차리셨다. 수선일은 해가 지고도 별이 보여야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늦은 저녁을 먹었기에 무얼 먹어도 꿀맛이었다.


엄마가 큰 맘먹고 삼 형제를 집에서 목욕시키겠다고 하신 날, 삼 형제는 갱신의 날이었다. 동생과 나 둘이 들어가도 될 정도의 빨간 고무다라에, 난로에서 덮이고 석유곤로에 덥힌 물을 채우면 삼 형제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손에 낀 분홍색 이태리 타월이 몸 한 군데를 밀면 살이 벌건색으로 변하면서 끊어진 까만 국수가락이 나왔다. '으악! 아파 엄마.' 이태리 타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비명은 자동이었다. 오빠가 씻은 물에 다음은 내가 들어가서 때를 벗겼고 마지막은 동생이었다.


가끔 다라의 목욕물이 빨리 식어서 내 차례에 물이 미지근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에는 때가 잘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럼 더욱 손에 힘을 주고 살을 빡빡 밀어댔다. 콘크리트 벽에 살을 뭉개는 느낌의 고문이었지만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등짝에 철썩 소리가 났다.


"엄살은, 때를 벗겨야 할 거 아니냐, 지나가는 거지가 친구 하자고 하겠다."


눈에서 닭똥만 한 방울이 떨어졌지만 거지와 친구 할 수는 없었기에 이를 악 물고 참았다. 온몸이 벌게져서 열이 나면 깨끗한 따스한 물이 머리부터 부어졌고 목욕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겨울에는 고무다라가 엄마의 목욕탕이었고 삼 형제는 엄마의 유일한 목욕탕 손님이었다.


엄마는 그 추운 날 아침 일찍 가게에서 정신없이 수선 일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치이고, 저녁에 집에 오셔서 다섯 식구 저녁을 준비하고, 목욕비를 아끼겠다고 물을 데워서 세 명의 자식들을 집에서 씻겼다. 나는 지금 따뜻한 욕실에서 내 몸 씻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가끔 엄마와 목욕탕을 간다. 물이 뽀글뽀글 솟아나는 탕속에서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엄마, 나 어렸을 때 집에서 목욕 시켰던 기억나? 그때 완전히 나 살 벗겨지는 줄 알았잖아."


"그때는 아껴야 한다는 생각밖애 없었어. 먹고살아야 하니 목욕비도 아껴야지 어쩌니. 너희 씻길 때 밀어도 밀어도 때가 계속 나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날은 내가 엄마의 등을 밀어 드렸다.


따뜻한 햇볕이 불투명 창을 뚫고 거실을 비출 때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 햇볕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한없이 평온하고 편안하다. 시간을 다투면서 살았던 엄마의 고된 시절에 비하면 지금 나는 유럽 귀족부인이다. 자다가 연탄이 꺼져 추위에 노출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목욕하겠다고 난로에 물을 데울 필요도 없다. 몸에 벌건 도장을 여기저기 찍을 필요도 없다.


얼마 전에 남편에게 사소한 집안의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 겨울에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집이 있는데 무탈한 일상의 고마움을 모르나 싶어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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