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희정의 향기

" 이 집이에요."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을 따라서 들어간 집은 오래된 빌라의 1층이다. 4차선 도로의 한 옆에 난 골목 양 쪽으로 원룸을 지은 다가구 주택이 다닥다닥 붙여서 일렬로 늘어서 있다. 틈이 없는 집들의 삭막한 눈길을 받으면서 골목의 끝까지 가면 돌을 깎아 만든 벽아래 한쪽 면이 더 넓어 보이는 기형의 사각형 빌라가 보였다. 건물에 검정물이 흐른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다. 들어가는 공용 현관 입구는 오른쪽 옆으로 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먹다 남은 커피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 다 먹고 그냥 던진 듯 한 과자 봉지, 배고픔에 개나 고양이가 기웃거렸던 흔적으로 쓰레기 규격 봉투에 담긴 쓰레기와 혼재되어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보여준 집은 골목 정면에서 보이는 집이었다. 한 층에 세 가구의 현관이 있고 희주가 본 집은 1층 왼쪽 집이다. 공용 현관 입구의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아직 이사를 가지 않는 사람들의 짐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침대와 바닥에 널브러져 뒤집어져 있는 옷 들, 흩어져 있는 책들로 빈 틈이 없는 책상은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남루하고 낡았다. 햇빛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강조했다. 희주는 갈등했다. 하지만 30만 원이라는 월세는 희주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래 여기서 허리띠 졸라매는 거야. 2년만 눈 딱 감자."


희주는 그날 바로 계약을 하고 이사 날짜를 서둘렀다.


막상 이삿짐을 옮기고 보니 텅 빈 집은 처음 보았던 것보다 더 엉망이었다. 가스레인지 선반의 스테인리스 색은 보이지 않았고 창 틀의 색이 원래 흑색이었나 싶었다. 문 손잡이는 덜렁거렸고 열고 닫을 때 삐거덕 소리가 났다. 희주는 청소용품을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며 목록을 적었다.


회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세제를 묻힌 수세미와 걸레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집의 원래 색을 찾으려면 두 달은 청소에 매달려야 했다. 회색이 감도는 현관문에 새와 나무가 그려져 있는 공원 그림의 시트지를 붙였다. 주방 싱크대와 선반은 수세미를 뜨거운 물에 적셔서 묶은 때가 있는 곳을 세제로 빡빡 닦았다. 흰색 페인트를 사서 누레진 방문을 칠했고 손잡이도 저렴한 새 걸로 교체했다. 누군가는 전세도 아니고 월세에 무슨 돈을 그렇게 들이냐고 할 수 있다. 희주는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 2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 현이에게 아침마다 첫 햇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왼쪽 방을 주었다. 아들에게 매일 이전에 없었던 온화한 빛을 주고 싶었다. 희주는 빛은 없지만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기에 좋은 오른쪽 방으로 했다.


퇴근 후 찌든 때에만 매달렸던 희주는 잠들기 전 상을 피고 가계부를 폈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서 궁색하고 비루한 냄새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은 빗소리가 유난히 컸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알람소리보다 먼저 희주를 깨웠다. 희주는 한 발 한 발 겨우 이블 속에서 나와서 창문이 잘 닫혀있는지 확인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이사 오고 비는 처음이었다.


비는 저녁때까지 내렸다. 퇴근 후 집에 온 희주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똑, 또롱, 똑, 또롱, 똑"


처음에는 창문 밖에 빗물이 화분에 떨어지는 소리인가 했다. 숨을 죽이고 집 안에 귀를 열었다. 내리치는 빗소리 사이에 들리는 똑 똑 소리는 희주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희주는 방의 벽을 보고 창문을 열어보고 틈새도 보았다. 그리고 장롱 위를 보는 순가 천장과 벽이 만나는 천장 끝부분에서 물 떨어지는 광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현이 방에서 의자를 가져다가 장롱 위를 보려고 올라갔다. 아침부터 물이 새었는지 얇은 합판으로 된 장롱 위는 들떠서 장롱 안에 있는 옷까지 적시고 있었다. 목이 탁 막혔다. 목구멍에서 무언가 나와야 할 텐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니, 순간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순간적인 힘으로 장롱을 들어서 빗물이 떨어지는 천장 옆으로 비스듬히 옮겼다. 어떻게 옮겼는지 모르겠다. 세숫대야를 가지고 와서 물이 떨어지는 아래에 놓았다. 그날 희주는 밤새 내린 비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문을 타고 벽이 젖어 있었다.


집주인한테 전화를 했다.


"어머, 한동안 안 그러더니 다시 새나 보네. 지금은 비가 와서 안되니 비 그치고 봅시다."


울화통이 터져서 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비가 멈추고 집주인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벽을 타고 들어오는 건데 그거 손 못 대. 항상 비가 새는 게 아니라 어쩌다 한 번 새는 거라서 잡기도 힘들어. 이번에 운 나쁘게 비가 샜나 보네. 다음에 다시 비가 와서 또 새면 그때 다시 봐요."


희주는 집주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앞으로 희주는 비 올 때마다 운이 좋기를 바라야 했고, 장롱은 자리를 옮겨야 했고 세숫대야는 방 안 물건이 돼야 했다. 빨리 뜨고 싶었던 이전 집과 다를게 없었다. 월세가 30만 원이라고 했을 때 무조건 좋아라 할 게 아니었다. 희주는 자신을 책망했다.


아껴서 돈을 더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비루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희주는 이사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쓸고 닦고 칠하는 것이다. 비루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빡빡 닦고 구석구석 쓸고 칠하는 것이다. 희주의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배 째라는 집주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껏 끌고 왔던 의지가 진흙 속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웃풍이 너무 세서 보일러를 틀어도 무용지물인 집이 있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났는데 월세가 싸니 보일러 교체에 돈을 보태라는 집주인도 있었다. 집을 칠하고 가꾸어도 기본을 바꾸는 것은 희주 혼자 힘으로는 힘들었다.


세숫대야를 방안네 놓고 살면서 운이 좋기를 바라야 할지, 다시 쓸고 닦고 칠해야 하는 집을 찾아 헤매야할지 선택해야 했다. 희주는 허리띠를 조금 풀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10층이 넘는 아파트들이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처럼 일렬로 서 있었다. 그중 한 아파트 창문에 부딪힌 햇빛이 희주의 눈으로 들어왔다. 빛은 강해서 눈을 못 뜨게 했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빛의 각도가 변하니 그제야 가물가물 실눈을 뜰 수 있었다. 쌓여진 콘크리트 상자들이 거만하게 희주를 내려다 보는 듯 했다. 희주는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버스 의자에서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무릎에 놓았던 가방 끈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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