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무너진 날

by 희정의 향기

김대리의 모든 것에 소름 돋는다. 말할 때에는 내 귀를 막고 싶다. 자신보다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두 다리를 모으고 경청을 한다. 자신이 우위라고 느끼는 사람 앞에서는 다리를 쩍 벌리고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거드름을 피운다. 주희는 그런 김대리가 역겨웠지만 윗상사였기에 티를 낼 수 없었다. 그의 거만의 몸짓은 약자에게는 끝도 없었다.


스무 살인 주희에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기준하는 몇 가지가 있다.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야 하고, 빙긋 잘 웃고 도움을 주면 좋은 사람이다. 아마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팥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일 거라는 개인적인 확신이다.


주희 엄마는 한 방에 모든 것을 뒤집어서 집안의 가난을 해결하겠다는 공상가 남편을 대신해서 집안일과 돈 버는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삼 형제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면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저녁이면 몸을 쉬게 하는 것을 뒤로하고 밥상을 뚝딱 차리고 내일을 준비하며 삼 형제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며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보고 자란 주희 눈에 엄마 같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떡을 좋아하셨다. 그중에서도 팥떡을 좋아하셨다. 옷가게를 하시던 가게 골목 끝집에는 떡 집이 있었다. 아침이면 떡방아소리가 들렸고 가끔 엄마는 갓 나온 따끈하고 달달한 팥떡을 사서 주희와 막냇동생

의 입에 넣어 주셨다.


"엄마는 팥떡이 좋아?"

"응 엄마는 팥떡이 제일 맛있더라. 외할머니도 팥떡을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주희에게 팥떡은 그때부터 일반적인 떡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베풀고 희생하고 무언가를 주는, 마음이 은은한 난로 같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었다. 주희만의 착한 사람 공식은 스무 살이 넘어 깨졌다.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김대리 손에 하얀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선배 언니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종이봉지를 들고 있는 김대리를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이거? 오는 길에 아는 분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떡을 나누어 주더라. "


주희는 김대리 입에서 떡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불쾌했다. 의자에 앉으며 주희 씨도 와서 먹으라고 말하는 김대리의 목소리에는 오만함이 흘렀다.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린 순간 주희는 떡을 먹는 김대리를 보고 허걱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가 먹고 있던 떡은 팥떡이었다.


"김대리님도 팥떡을 드세요?"


주희의 입에서 부정과 간절과 놀라움이 섞인 물음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몰랐어? 난 팥떡을 제일 좋아해."


순간 두 다리가 꺾였다. 20년 이상 상상도 하지 않았던 상황이 눈앞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만들었던 작고 소중한 꽃밭을 김대리가 지금 갈아엎고 있었다.


"저런 인간도 팥떡을 좋아하다니."


사실 주희만의 세계가 깨질 수 있었던 시기는 오래전에 있었다. 다만 주희는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희엄마의 옷가게 골목에는 일주일에 두 번 리어카에 과일을 싣고 와서 장사를 하는 분이 계셨다. 30대 아저씨로 여름이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과즙을 줄줄 흘리면서 먹는 참외며 수박이며 토마토를, 겨울이면 먹음직스러운 빨갛고 노란 사과, 배 등을 가지고 와서 조각을 내서 맛보라고 내어 주었고 옷가게 골목 아줌마들은 과일을 사면서 덕담을 한 마디씩 했다.


"장사가 잘 돼서 김 씨도 가게 마련해야지. 이렇게 열심히 사니까 좋은 날이 올 거야."


아저씨는 아줌마들의 말에 얼굴에 의지를 보이며 과일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주희 눈에 아줌마들은 다 천사요 나눔의 실천가들이었다.


어느 날 조금 비틀거리며 나타난 아저씨에게 리어카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팔 과일 사러 새벽시장에 갔다가 돈을 몽땅 도둑맞았어요. "


아저씨는 꺼이꺼이 소리와 함께 눈을 훔치며 절망했다. 아줌마들은 난처함과 귀찮음이 섞인 표정들을 지으며 딴청을 피웠다. 난 아줌마들이 아저씨한테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게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아줌마들의 모습이었으니까.


"왜 여기 와서 술주정이야. 저리 가. 장사 방해 돼."


어린 주희에게는 머릿속이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평소에 주희에게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돈도 주시고 과일도 사면 나누어 주셨던 분이다. 여유롭게 웃으면서 넉넉함을 보였던 모습에서 상상도 못 했던 말을 들었다. 아줌마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다시 얼굴을 훔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골목을 벗어났다. 아저씨의 뒷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혼자 사막을 걷는 듯했다. 주희는 엄마가 아저씨에게 뭐라도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였는지 엄마 또한 아저씨를 외면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행동은 어린 주희에게는 충격이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주희가 알던 착한 사람이 맞나? 왜 아줌마가 그렇게 말했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심부름을 재촉하는 엄마 덕분에 착한 사람을 의심하는 상황은 그렇게 주희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주희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건너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사건들은 크고 작게 존재했을 것이다. 지난했던 시간들은 주희가 외부로 돌려야 할 시선을 안으로 묶어놓는 최고의 방패였다. 그렇게 주희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겼다. 그리고 주희가 키워왔던 소중한 나무를 단번에 부러뜨린 폭거자를 사회의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만난 것이다.


이후로 주희는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이 깨지는 일을 경험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때로는 부정하고 때로는 발악하지만 개인의 작은 연못은 사회라는 거대한 바다에 묽어진다. 그 거대한 바다의 물결이 주희에게는 버거울 때도 있지만 파도에 몸을 맡기고 유연해지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주희는 지금도 팥떡을 먹을 때면 떡으로 사람을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했던 자신이 순수했던 것인지 순진했던 것인지 자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어이없게 자신의 확신이 조각났던 그 상황에 허무한 웃음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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