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는다. 이 목표는 매년 1년 계획 다이어리 맨 앞에 존재한다. 외국 여행을 가서 버벅거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부드럽게 내민다.
외국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가 적힌 단어를 운전기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우쭐대는 목소리로 영어로 목적지를 알려주고 싶다. 음식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그려진 그림을 어색한 눈웃음과 손으로 짚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어떤 맛인지, 어쩐 재료인지, 영어로 질문하고 주문하고 싶다. 호텔에서 직원에게 인사하면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50대는 영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청춘의 시절에 노느냐고 뒷방에 처박아 둔 꿈을 먼지를 털고 꺼내어 번듯하게 만들어 가고 싶은 바람이다. 자연스럽게 영어로 일상을 나눈다는 것은 옆사람에게 호기심과 부러움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20대였던 시기, 영어만 잘해도 취업이 되는 시기였고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시절이었다. 그때는 영어학원 붐이 불던 시기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자리가 없어서 의자를 따로 준비하고 앉아야 들을 수 있는 강의도 있었다.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쌉쌀한 추억은 내 나이 열다섯 살로 돌아간다. 열다섯 살의 나에게 영어는 나를 일으켜 준 도구이자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 준 첫 번째 욕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 과목은 영어였다. 자그마한 키에 눈동자가 커다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굴 속에서 말하는 듯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수업시간을 진행할 때면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우 같은 목소리오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문득 나의 워너비가 되고 있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영어를 가르칠 때 나는 선생님한테 주목받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간절해졌다.
당시 한 학급의 학생 수는 80명에 가까웠다.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려면 한 학기가 지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하루라도 빨리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른 과목은 제쳐두고 영어만 공부했고 중간고사에 90점을 넘게 받았다. 하지만 선생님한테 나를 각인시키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학급이 너무 많았고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기에 시험점수는 그냥 숫자로 남았다. 정작 나를 알리는 기회는 중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에게는 발가벗겨진 상태가 되었던 그 날이었다.
역사시간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처럼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 앞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선생님 한 분이 학생 세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 호명에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김희주, 지금 이름 불린 학생들은 가방을 싸서 교무실로 오도록."
나는 어리둥절했고 심장 박동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아이들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숨도 쉬지 않은 채 세 명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지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떠는 손으로 가방을 싸서 무엇에 홀린 듯 교무실로 갔다. 여러 반에서 아이들이 불려 와 죄인처럼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너희들은 등록금을 내지 않았기에 지금 바로 집으로 간다. 실시."
겁에 질린 양의 무리처럼 순수하게 그 말에 따라 교무실 밖으로 나왔고 교문을 넘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각자 자신의 집으로 이정표가 정해진 로봇처럼 그렇게 걸었다.
학교에서 다시 나오라는 연락을 받기까지 5일의 시간이 지났다. 5일 동안 집 안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조용히 쉬었다. 학교 가야 할 시간에 집에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게 그렇게 있었다. 그렇게 5일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5일 만에 보는 담임선생님은 조회 후 바로 교실을 나가셨다.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에게 나는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도 없이 종례 시간이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5일 전 집으로 간 아이들을 앞으로 불렀다. 우리는 쭈뼛거리면서 나아갔다. 선생님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몽둥이로 우리의 손바닥을 온 힘을 다 쏟아서 차례로 때렸다. 그냥 맞았다. 얼얼한 손바닥에서 불이 났고 얼굴에서 불이 났다. 다른 아이들의 숨죽인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침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같이 얼굴에 불을 붙였던 선생님은 몽둥이를 걷고 교실을 나갔다. 무엇을 잘 못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벌칙으로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가 밀치고 올라오려 했고, 한쪽에서는 원치 않는 주눅이 자리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른 아이들이 돈 벌겠다고 집을 나갔었대. 나는 희주 너도 그런 줄 알고 때렸지 뭐니 미안하다. 많이 아팠지?"
순간 나는 꺽꺽 소리가 튀어나왔다. 울부짖었고 참았다가 다시 통곡했다. 선생님은 말없이 나의 등을 토닥거렸고 휴지로 내 서러움을 연신 닦아내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 이름 석자 김희주를 정확히 기억했다. 상황은 비참했지만 이름의 기억은 어린 마음의 멍을 어루만졌다. 일사분기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이후로 영어공부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증명서였다. 영어점수는 내가 학교에 속해있다는 안도였고 선생님의 제자라는 도장이었다.
20년을 영어와 썸만 타면서 살다가 정식으로 교제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1년 치 수강료를 내고 온라인으로 영어회화를 연습하고 있다. 200일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0분씩 읽고 쓰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시작한 영어가 이제는 나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매일의 목표가 되었다. 매일의 목표 완료는 나에게 주는 매일의 선물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고 있는 영어회화가 어느 날 상상대로 원어민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입으로 나오게 할 그날을 상상한다.
I am studying English now.
I am proud of myselt for practing English again today.
Thank you for reading my br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