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쫌생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을 증명한 나

by 희정의 향기

"비닐장갑을 새로 끼셔야지요."

"그건 순서가 틀렸어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처음 하는 버거집 알바 일은 내 머릿속을 혼란에 놓이게 했다. 우선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 어려운 문법이 섞인 영어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비닐장갑을 이 순간 왜 새로 끼어야 하는지, 왜 순서가 틀린 건지, 왜 안 되는 건지 이유는 말해 주지 않는다. 용어는 또 어떤가. 와주, 불주, 치와, 통와..... 이게 한국말인지 중국말인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음식 만드는 쪽으로는 이해력이 부족한가? 그리고 묘하게 감정이 상했다......처음의 의욕과 호기심이 앞서, 빨리 출근해서 일하고 싶었던 마음이 도망가려 했다.


기분이 왜 나쁜지 무엇이 문제인지는 뒤로 놔두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요구 사항이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감정은 상할까? 바로 명령조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불친절한 말투였다. 나라면 좀 더 친절하게 알려주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70년 개띠 56세다. 흔한 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사회라는 경쟁 사회에서 눈물, 콧물 쏟아가면서 일을 배운 적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말할 수 없는 수모도 당해보았다. 나름 맡은 일에서 인정도 받았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아,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이 될 때 한 번 읊어 보겠다.) 그러한 다사다난한 시간들 덕분에 지금은 화가 나도 상황에 따라서 참을 줄 안다. 상대방이 나의 뜻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있다고 가끔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개인적인 평가다. 남들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에게 쫌생이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마음공부를 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는데...




나와 함께 알바를 하는 친구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30살이 되지 않는 친구들이다. 대학을 휴학했거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서 잠시 알바를 한다. 이들은 모두 나의 알바 선배들이다. 적게는 한 달, 많게는 1년 넘는 경력의 선배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햄버거에 대해서 아는 것 없고 가르치기 답답한 초보 알바생일 뿐이다. 그러니 하나부터 열 가지 알려주면서 짜증이 났을 거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으니 같은 일을 반복해서 알려 주는 것도 지긋지긋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의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안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데 마음에 스크래치가 되는 말투가 계속 내 속 어딘가에 쌓이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미주알고주알 매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끓어올랐던 감정에 대해서 수돗물 틀어 놓듯 콸콸 쏟아냈다.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막내로 들어가서 일하는 게 쉬운 줄 알았지? 나이가 어려도 그들이 선배야. 당신이 보기에 선배가 갑질하는 듯 보여도 우선은 참아야 해. 지금은 아는 게 없잖아. 그리고 그들은 당신하고 일하는 게 쉽겠어? 엄마뻘 되는 사람하고 일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어. 말도 쉽게 못 하고."


남편의 마지막 말에 머리가 띵했다. 요즘처럼 한 살 차이만 나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시대에 몇십 년 차이나는 아줌마한테 일을 가르쳐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나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나 또한 20대 시절, 30대, 40대, 50대와 말을 나누고 싶어 했던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던가?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내 입장만 생각하고 그들의 불편함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속 깊은 생각을 하는 주부 희정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퇴사 후 다시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지원서를 넣으면서 무엇을 하든 잘할 자신이 있었다. 말한 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무난하게 지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퇴사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새롭게 다시 시작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에 나이차이가 많은 사람들과 일 할 때 부딪힐 수 있는 언행과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고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며칠이 지났다. 나의 알바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알바 선배의 불친절은 지속되고 있고, 나는 여전히 그의 후배 알바생이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가끔 나오는 불친절한 언행에 가슴의 불덩이도 예전만큼 타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 마음속의 쫌생이도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나를 놀리고 있다.


"어이, 쫌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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