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 모아, 봄

by 희정의 향기

창문을 너머 들어온 봄이 거실로 내려앉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쌀쌀했던 햇빛의 차가움을 담았던 것과 달리 오늘은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담고 있다. 소파에 앉아서 코를 간지럽히는 봄을 음미하니 백억 부자가 된 듯 포만감이 가득하다.


봄님의 은밀한 유혹에 넘어가 푸릇한 맨투맨 티와 연두색 면바지로 봄향기를 내본다. 집 앞 성북천을 사뿐사뿐 걸으니 분홍 꽃비가 살랑거린다. 몇 년 전부터 한성대부터 신설동을 지나 동묘로 이어지는 성북천에는 자신만의 색을 내세우는 크고 작은 카페가 생겼다. 목재를 사용하여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낸 카페가 있는가 하면 벽과 테이블을 순백으로 채운 카페도 있다. 자신만의 옷을 입은 가게들 덕분에 성북천 거리에 봄이 일렁인다.


엄연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봄꽃들은 지금 순서를 기다릴 마음이 없나 보다. 요염 떨며 피는 매화꽃은 이제부터 달릴 준비를 하는데 목련은 벌써 지고 개나리와 벚꽃은 자기들 세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와글와글 꽃들이 활개를 치는 시간, 카페는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로 코끝을 자극한다. 하얀 카페 문 앞에 놓인 하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남자가 앞에 앉은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노란 니트를 커플로 입은 그들이 봄 풍경을 한 스푼 얹는다. 작은 카페에 사람의 향기가 가득하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알바를 가기 위해서 점심 무렵이나, 가벼운 러닝을 하기 위해서 저녁 무렵 즈음 나오면 텅 빈 의자가 더 많은 카페를 볼 때마다 내 발이 동동거린다. 무얼 해도 힘들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멋있는 여자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가 5천 원이라고 붙어있는 팻말을 보면서도 눈으로만 담았던 시절이 있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매일 계란과 김치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통장에서 0이라는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늙어 죽기 전까지 가난 때문에 비참하게 살다 죽겠구나라고 자포자기 한 시절. 지금처럼 벚꽃이 그늘을 만들면서 머리에서 떨어지던 봄이었다. 꽃 잎 하나 남지 않은 벚꽃나무를 보니 비극의 끝을 보는 것 같아서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또르륵 맺혔다가 떨어졌다.


봄꽃이 쌓인 거리를 터벅터벅 걷던 어느 날, 벚꽃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이 눈에 띄었다. 꽃잎 사이를 비집고 내 머리 위를 적시던 빛을 따라가니 꽃잎 사이로 푸릇한 이파리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순간 발이 멈추었다. 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달릴 준비를 하는 이파리들이 햇빛과 함께 나의 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심장이 뛰었고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벚꽃이 진다고 나무가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걷고 있는 성북천에는 벚꽃눈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닌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담을 수 있는 시간들의 고마움으로 두 발을 가만히 모으고 벚꽃 잎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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