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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Dec 12. 2023

'초급 한국어' 그리고 '중급 한국어'_문지혁

일상 속의 한국어와 글쓰기,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작가 문지혁이 쓴 주인공이 문지혁인 이야기. 제목이 마치 한국어 교재 같아서 도대체 무슨 책일까 궁금했고, 읽다 보니 주인공이 결국 작가여서 소설이 맞는 것인가 헷갈려하며 읽은 책.

 애초에 두 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서 도서관에서 두 권을 함께 빌려와 읽었는데,  <중급 한국어>를 읽다 보면 <초급 한국어>와 자연스레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어 꼭 순서대로 앞의 내용을 잊기 전에 읽기를 추천한다.








1. 이야기


<초급 한국어>

 지혁은 은혜와 7년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특히 한국어의 문법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동안 한국에 있던 동생 지혜에게 연락이 온다. 지혜와는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의 글을 자기가 쓴 글인 것 마냥 제출해서 수상을 했던 사건도 있었다. 아무튼, 그 연락은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수업을 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시간 동안 엄마 곁에는 지혜와 은혜가 있었다.


 그리고 지혁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중급 한국어>

 한국에서의 지혁은 아내가 생기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난임 끝에 은채라는 아이도 생겼다.


 미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던 그는 한국에서는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작 내 글은 항상 실패하는데 나는 작가라 불릴 수 있는가. 고민이 많던 차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은혜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고 지혁은 집에서 은채를 돌보며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2. 생각하기


 글은 결국 자서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급 한국어>에서 작가는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12p)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다. 그리고 이 소설은 유독 그러한 작품이어서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읽으면서도 계속 혼란스러웠다. 


 <초급 한국어>가 조금 더 재미있었고 <중급 한국어>는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많았다. (아, 중급 한국어에도 가끔 피식하게 되는 유머들이 나와서 분위기를 환기시켜 준다. 예를 들어 '삶은 무엇인가요? 계란 아닙니다. 리튬(Li)과 철(Fe) 아니에요. (침묵)'과 같은...)


  <초급 한국어>에서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의 표현과 문법을 가르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수업 중 일어나는 여러 가지 웃긴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은,는,이,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안녕'이란 무슨 뜻인가, 왜 10시 10분을 열 시 열 분도 십 시 십 분도 아닌 열 시 십 분으로 읽는가. 


 이제 <중급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혁은 학생들에게 문장부호를 가르치며 물결 표시(~)는 그 어떤 진지한 글이나 문장도 가벼워지게 만드는 마법적인 힘이 있다며, 그냥 키보드에서 뽑아버리라고 말한다.(49p) 사실 책에 대한 정보보다 이 문장을 먼저 접하고 너무 동의해서 이 책을 읽기로 다짐했었다.


 물결처럼 내용에 애매한 뉘앙스를 부여하는 흔한 특수문자에는 '^^'이 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매번 살짝 불편하게 웃는 느낌으로 '너 뭐 돼?^^',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하는 뉘앙스로 쓰곤 한다. 비꼬는 듯한 느낌. 그런데 취직을 해서 일을 시작하니 메신저로 '감사합니다^^'하고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사실 그 이질감에 아직 적응 중이다.


 지혁이 은혜를 걱정하며 물었던 '괜찮아?'라는 말에 대해서도 동감했다. 대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괜찮냐고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같은 대답을 계속하는 것도 지친다. 그저 챙겨줄 수 있는 것을 챙겨주거나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다.

 '괜찮아?'라는 말은 단순히 걱정이 아니라 화자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문장을 빌리자면 "나의 불안을 투사해서 '괜찮아?'라는 말로 괜찮을 것을 명령하고 있었던 것."(111p)일지도.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며 그는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쓰는 익숙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 같이 느껴져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많다. 가끔은 그 탓에 무거워지고 가라앉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가 그 무게에 짓눌리기 전에 다시 수업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가벼운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자극적이게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천천히 스며드는, 잔잔하게 웃고 잔잔하게 울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문장을 놓고 가려한다. 지금 나의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희망을 붙들지 말고 절망에 물들지 마세요. 그냥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살듯이."





3. 물음표

한국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삶이라는 압축파일을 풀어낸다면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감정을 단어 하나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초급 한국어>
"여러분, 물결 표시는 그냥 키보드에서 뽑아 버리세요."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의 표정을 읽기가 더 어려워졌다. 타인의 마음은 안개 낀 창문에서 완전한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은혜에게 나의 불안을 투사한 뒤, '괜찮아?'라는 말로 괜찮을 것을 명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은혜가 보내는 몸짓언어를 해독하는 대신? 
 말하지 말고 보여 줘야 합니다. 판단하지 마세요. 정의하지 마세요. 가르쳐 주고 설명하지 마세요. 그냥 보여 주세요. 
 희망을 붙들지 말고 절망에 물들지 마세요. 그냥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살듯이.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중급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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