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이 대리인이 되는 AI시대

AI채용 공고를 보고..

by ZeroInput

얼마 전 채용공고 하나를 봤다.


RevenueCat이라는 미국 회사에서 "Agentic AI Developer Advocate"를 뽑고 있었다. AI Agent 전담 인력 채용공고다. 6개월 계약직. 월 급여는 1만 불. 한화로 1500만 원이다.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했다. 사회 동료, 가족, 친구들.

"AI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어."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됐다.

"엥? 무슨 소리야?"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AI를 채용한다"는 문장 자체가 해석이 안 되는 거다. AI를 왜 채용하지? 채용의 개념이 다른가? 그냥 AI에게 물어보면서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연결이 안 된다.


그래서 결국 돌아오는 반응은 "무슨 말이지?"였다.

사회 동료도 그랬다. 가족도 그랬다. 친구들도 그랬다. 모두 똑같았다.


그 순간 느꼈다. AI 발전 속도와 일반 사람들의 간극은 그냥 벌어진 게 아니다. 차원이 다르게 벌어져 있다.

나는 매일 AI와 일하고 있으니까 "AI 채용"이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해가 된다. 하지만 AI를 깊이 있게 써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AI 채용"이 상식과 사고의 밖이라서 그냥 이해가 안 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나는 1편에서 썼듯이, AI로 ERP를 8개월 간 만들었다가 2달 만에 끝난 사람이다.


그 경험 이후 시각을 바꿨다. 뭔가를 "만드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자고. 그래야 지금의 현상을 쫓을 수 있고 다음이 보인다고.


그래서 채용공고도 다르게 읽혔다.


AI를 "채용"한다는 건 단순히 자동화 도구를 도입하는 게 아니다. AI가 하나의 경제 주체로 조직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Microsoft는 이미 AI Agent에게 보안 ID를 발급하고 있다. 사람 직원한테 사번 주듯이, AI한테 고유 식별번호를 주는 거다.


HR 벤더들은 AI Agent용 직원 기록을 만들고 있다. 인사 시스템에 AI가 "직원"으로 등록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


Microsoft가 AI에게 보안 ID를 준다는 건, AI의 행동을 추적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HR 시스템에 AI를 등록한다는 건, 사람과 AI가 같은 조직 안에서 협업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거다.



지금 내 일상을 이야기해 보겠다.


"엥? 무슨 소리야?"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걸 보면 또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나는 "나만의 AI 리츠라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놓고 더 발전시키고 있다.


매일 새벽, AI가 일을 시작한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여러 토픽에 대해서 여러 채널을 훑는다. 단순 검색이 아니다. 반응이 큰 글, 흐름이 바뀌는 주제, 급부상하는 신호를 골라낸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내가 보고 싶은 기준에 맞춰 브리핑이 도착한다.

주식 동향, SaaS 시장 변화, 자동화, 새로운 사업 아이템.


내가 자는 동안 AI가 세상을 읽고, 내가 눈을 뜨면 정리된 보고서가 와있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추천해 줘"라고 하면 AI가 만든 프로그램이 데이터를 뽑고, 내가 가이드해 놓은 기준으로 AI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추천해 준다. 검증이 더 쌓이면, 실행의 범위도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더 재밌다.


나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AI들을 한 구조 안에 넣어두었다. 이름은 "난상토론"이라고 붙였다.

내가 주제를 하나 던지면, 각기 다른 시각의 AI들이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반박하고, 검증하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해 간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음 작업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조를 만들어두었다.


이게 지금 내가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AI 작업 세계다.


그런데 나만 이러는 게 아니다.


이미 많은 얼리어답터들은 각자의 상황과 관심에 맞춰 자기만의 AI 작업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각자의 AI세계를 구축 한 개인 즉, 대리인마다 AI가 할 수 있는 영역과 일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ERP 17년 차이기 때문에 내 AI는 회계와 재무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가 설계한 가이드와 기준, 그리고 오랜 도메인 경험이 AI를 다루는 방식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주식 전문가의 AI는 차트와 시장을 보는 눈이 다를 거다. 의사의 AI는 증상과 진단을 연결하는 방식이 다를 거다. 변호사의 AI는 판례를 읽는 깊이가 다를 거다.


AI는 똑같은 AI다. 클로드든, GPT든, 제미나이든.


하지만 대리인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같은 엔진을 달아도 운전자가 다르면 다른 곳에 도착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인간은 세상의 주체자였다. 직접 판단하고, 직접 실행하고, 직접 책임졌다. 회사에 출근해서 직접 전표를 치고, 직접 보고서를 쓰고, 직접 의사결정을 했다.


그런데 AI가 판단하고, AI가 실행하는 시대가 오면 — 인간의 역할이 바뀐다.


설계하고, 가이드하고, 승인하는 역할. AI라는 주체를 "운영"하는 역할.

그러니까 세상의 주체자였던 인간이, 대리인이 되는 거다.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구조적 전환이다.


Microsoft가 AI에게 보안 ID를 주고, 기업이 AI를 "채용"하고, HR 시스템에 AI가 등록되는 것 — 이 모든 게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AI가 주체가 되고, 인간이 그 AI를 운영하는 대리인이 되는 세상.


이게 무섭다고? 나도 무섭다. AI로 8개월 걸려 만든 시스템이 서비스 론칭도 전, 2개월 만에 끝나는 걸 직접 겪었으니까. AI의 속도가 어떤 건지 몸으로 안다.


하지만 무서워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엥?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묻는 사람과, 이미 자기만의 자비스를 만들고 있는 사람. 이 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좁아지는 게 아니라, 더 벌어질 거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간극이 더 벌어지기 전에 올라타서 경험해 보아야 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늦진 않았다.






ZeroInput — AI 시대의 경계에서 직접 부딪혀본 것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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