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달 전에 느낀 "끝났다" 그 감각의 정체
얼마전, AI가 보내준 브리핑에 이런 게 있었다.
"Cursor $2B ARR, Claude Code $2.5B ARR — AI 코딩 시장이 1년 만에 10배 성장."
"Tailwind CSS, 사용량 사상 최고인데 매출 80% 하락."
"SaaS is Cooked Due to AI — SaaSpocalypse 담론 확산."
2편에서 말했던 그 시스템이다. 내가 매일 새벽 AI한테 내가 관심있는 여러개의 토픽을 서칭 시키고, 아침 8시에 브리핑을 받는 그 구조. 그 브리핑이 나한테 이걸 가져다줬다.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 이거였구나. 2달 전에 내가 느꼈던 그 감각. "끝났다"는 메타인지. 그게 이거였구나.
1편에서 썼다. 오픈클로가 나왔을 때, 세부 내용을 알기도 전에 이미 느낌이 왔다고. 내가 8개월 만든 AI native ERP가 쓸모없어졌다는 감각. 허탈했다고.
그때는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오픈클로라는 경쟁자가 나와서? 아니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였다.
진짜 이유는 이거였다.
SaaS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끝나고 있었다.
SaaSpocalypse. SaaS + Apocalypse. "SaaS의 종말"이라는 뜻이다.
2026년 1월 말부터 2월 초. 불과 일주일 만에 S&P 500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시가총액 약 1조 달러(한화 약 1,300조 원)가 증발했다. Atlassian의 주가는 2월 한 달 동안 36% 폭락했고, Salesforce 등 굳건했던 SaaS 주식들을 투자자들이 일제히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20년 동안 SaaS 기업들은 이런 공식으로 돈을 벌었다.
직원 1명 = 소프트웨어 1개 라이선스 = 월 구독료.
직원이 100명이면 100개 라이선스를 사야 했다. 직원이 늘면 매출이 늘었다. 이게 SaaS의 기본 수익 구조였다.
그런데 AI Agent가 나왔다.
AI Agent 하나가 직원 10명 분의 일을 한다. 그러면 기업은 묻는다. "왜 100개 라이선스를 사야 하지? AI Agent 10개면 되잖아?"
이 질문 하나가 SaaS 산업의 근간을 흔들어버렸다.
Tailwind CSS 이야기가 이걸 가장 잘 보여준다.
나도 경험했다. 25년 2월, 커서로 바이브코딩을 시작했을 때 Tailwind CSS는 기본 세팅이었다. 프론트엔드 디자인을 잡아주는 프레임워크인데, 당시에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항상 Tailwind를 먼저 설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때 Tailwind를 따로 언급하지 않게 됐다. AI가 알아서 디자인을 해주니까. 기본적으로 깔려 있든, AI가 직접 처리하든, 어쨌든 Tailwind를 의식적으로 설치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 결과가 이거다.Tailwind CSS 창업자의 공식 발표했다. Tailwind의 사용량은 역대 최고. 바이브코딩이 폭발하면서 Tailwind를 쓰는 프로젝트가 엄청나게 늘었다. 매출은 80% 하락. 왜? AI가 무료 기능만으로 충분한 퀄리티를 뽑아내니까. 유료 컴포넌트를 살 이유가 없어진 거다.
사용량은 역대 최고인데 매출은 80% 하락. 이 한 문장이 SaaSpocalypse의 본질이다.
더 많이 쓰이는데 돈은 안 된다. AI 시대에 소프트웨어로 돈 버는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내가 느꼈던 메타인지의 정체가 보인다.
내가 만든 AI native ERP는 SaaS였다. 월 구독료를 받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이 가입하고, 매달 돈을 내고, AI가 회계를 해주는 구조.
그런데 오픈클로가 나온 순간, 이 구조의 전제가 무너졌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주는 시대가 되면, 왜 남이 만든 소프트웨어에 매달 돈을 내야 하나? AI한테 "나한테 맞는 회계 시스템 만들어줘"라고 하면 되는데?
내가 8개월 동안 만든 건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걸 말로는 못 했지만 몸이 먼저 알았다. 그게 메타인지였다.
TechCrunch는 이걸 이렇게 정리했다. "사고 쓰던 시대"에서 "만들어 쓰는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20년 동안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샀다. Salesforce를 사고, Atlassian을 사고, 더존을 사고. 하지만 AI 코딩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장벽이 무너졌다.
한 투자자에게 이런 문자가 왔다고 한다. "우리 회사 고객 서비스팀 전원을 Claude Code로 교체했습니다."
이게 SaaSpocalypse의 실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SaaS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모든 소프트웨어가 죽는 건 아니다. 데이터 보안, 규제 준수,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소프트웨어는 살아남는다. 가트너는 2030년까지 포인트 솔루션형 SaaS의 35%가 AI Agent로 대체될 거라고 예측했다. 반대로 65%는 살아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조는 완전히 바뀐다.
"사람당 요금"에서 "성과당 요금"으로. "소프트웨어를 파는 시대"에서 "AI가 서비스를 하는 시대"로. Software-as-a-Service가 아니라 Service-as-Software로. 소프트웨어가 인간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AI가 직접 서비스를 실행하는 시대.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AI Agent들이 일을 할 때, 그 AI를 관리하고, 보안하고, 감사하는 레이어. "AI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영역. AI가 많아질수록 이 레이어의 가치는 올라간다.
돌아보면, 내가 AI native ERP를 만든 건 틀린 게 아니었다. 다만 시대를 잘못 읽었다.
AI가 회계를 해주는 시스템. 방향은 맞았다. 하지만 그걸 "SaaS"로 만들어서 "월 구독료"를 받으려 한 게 틀렸다. SaaS라는 그릇 자체가 깨지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더 고차원적이고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아야 우리가 오래 할 수 있는,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았으면 이걸 몰랐을 거다.
SaaSpocalypse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산업의 이야기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구조. 사람 수에 비례하던 비용이 AI에 의해 무너지는 구조. 이건 소프트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반복적으로 하는 일"에 적용된다.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디자이너, 개발자. 인간 1명당 비용을 받던 모든 서비스가 같은 질문에 직면할 거다.
"AI가 하는데 왜 사람한테 돈을 내야 하지?"
SaaSpocalypse는 소프트웨어의 종말이 아니다. 인간 노동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종말이다.
그리고 그 종말은 이미 시작됐다. 400조 원이 하루 만에 증발한 게 그 증거다.
ZeroInput — AI 시대의 경계에서 직접 부딪혀본 것들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