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AI를 많이 쓰는 것과 잘 쓰는 것은 다르다.

리밋에 걸려보고 알게 된 것

by ZeroInput

얼마 전 카카오에서 GPT Pro 요금제를 20달러에 파는 행사를 했다.


원래 200달러짜리다. 한화로 약 30만 원. 그걸 20달러에, 1인당 5개까지 풀었다. 5개월치를 한 번에 쏟아낸 셈이다. 당연히 순식간에 팔렸다. 나는 일이 있어서 빨리 보지 못했고, 결국 조기 종료됐다. 당근마켓에는 50~60달러에 되파는 사람도 나왔다.


순간 살까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한테는 GPT 20달러도 충분한데.


지금 그 행사로 Pro를 쓰게 된 사람들을 보면, 리밋 없이 토큰을 펑펑 태우고 있다. 쓸 만한 것도 만들지만, 쓸데없는 것도 많이 만든다. 풍족함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토큰을 많이 쓰는 게 AI를 잘 쓰는 걸까?


나는 바이브코딩 초창기부터 들어간 사람이다.


1편에서 썼듯이, AI로 ERP를 8개월 동안 매일 새벽까지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코딩 도구라는 것들을 거의 다 거쳤다. 커서(Cursor)에서 시작해서 클로드 코드(Claude Code), 키로(Kiro), 코덱스(Codex),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까지. 바이브코딩의 역사를 통째로 경험한 셈이다.


처음에는 커서의 무료 티어로 쇼핑몰 앱을 만들어봤다. 내가 말하면 옆에서 코드가 써 내려갔다. 신기한 장난감을 만난 기분이었다. 무료가 끝나면 다른 Gmail 계정으로 바꿔서 또 썼다. 나중에는 한 기계에서 몇 개 못 쓰게 막혔지만, 그때는 그런 것조차 재미있었다. 돈을 쓴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클로드 코드로 넘어가면서 20달러 요금제를 쓰기 시작했다. 5시간 리밋이 있었는데, 나름의 전략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클로드한테 인사를 한다. "안녕." 그 순간 5시간 타이머가 시작된다. 실제 작업은 2~3시간 뒤에 들어간다. 그러면 리밋에 걸리지 않고 끊김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잘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20달러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위클리 리밋이라는 게 생겼다. 7일 치 사용량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방식인데, 코딩에 몰입하면 사용량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정신 차려보면 7일 중 4일 만에 다 써버려 있다. 남은 3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5편에서 바이브코딩의 중독을 썼다. 만드는 쾌감에 빠지는 것. 그게 여기서도 그대로 터진다. 만들다가 멈추는 것. 흐름이 끊기는 것. 3일 동안 아무것도 못 하는 것. 이건 돈보다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다른 모델도 돌려봤다. 그런데 그 당시 AI 코딩 도구들은 전체 문맥을 보기보다 해당 단락만 보는 경우가 많았다. 부분만 고치니까 전체가 무너졌다. 코드가 망가졌다. 클로드가 짜던 코드를 다른 AI가 수정하면 망치기 일쑤였다.


코드는 망가져 있고, 클로드만큼 퍼포먼스를 내는 도구는 없고, 작업은 계속해야 했다. 100달러로 올렸다. 또 부족했다. 결국 200달러를 눌렀다.


처음 20달러를 결제할 때는 생각했다. "이걸 돈 주고 써야 하나?"


100달러로 올릴 때는 "좀 비싸긴 한데, 더 많이 만들 수 있으니까."


200달러를 누를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코드는 망가져 있고, 3일을 놀 수는 없고, 클로드 외에는 답이 없었다. 빨리 뭔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놔야 한다는 조급함. 그 마음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가 어렵다. 익숙해지면 지갑이 열리고, 열린 지갑은 다시 닫기 힘들다.


그리고 이건 AI 비용만 200달러다. 서버비가 붙고, 도메인이 붙고, API가 붙는다. 이런저런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따라온다. 조급함과 의심 사이에서 매달 30만 원 이상이 빠져나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계속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료를 활용하고, 리밋에 걸리고, 더 비싼 요금제로 올라가고, 다른 도구로 옮겨보고, 품질이 안 돼서 다시 돌아오고, 또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한 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AI를 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은 하나에 몰아 쓰지 않는다. 도구마다 잘하는 일을 나눠서 쓴다. 코딩에 강한 도구, 분석에 강한 도구, 반복 작업에 적합한 도구를 구분해 배치한다. 밤에는 로컬 환경을 활용해 계속 돌아가게 한다. 예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더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덜 쓰게 된 게 아니다. 쓰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어디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떤 조합이 효율적인지, 그 감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감각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도구를 거쳐 보고, 다양한 모델의 요금제를 써 보고, 실패도 해 보고, 돈도 써 보고, 불편도 겪어 본 다음에야 비로소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감각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감각을 내 나름의 AI 세계에 적용하고 구축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AI를 잘 사용한다는 건 뭘까.


200달러짜리 사용량을 끝까지 다 쓰는 건 잘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건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잘 사용하는 것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AI 서비스의 비즈니스 구조는 정반대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더 쓰게 만들고, 더 비싼 요금제로 올리게 만들고,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어렵게 만든다.


무료로 시작하게 해서 익숙하게 만든다. 리밋을 걸어서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을 참을 수 없을 때, 결제 버튼은 늘 거기 있다. 올라간 사람에게는 더 풍족한 환경을 준다. 풍족함에 익숙해지면 다시 내려가기 어려워진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설계다.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AI 토큰 가격은 원가가 아니다. OpenAI도, Anthropic도, Google도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면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가격은 보조금이 붙어 있는 가격에 가깝다.


우버가 초창기에 택시보다 싸게 태워주면서 시장을 잡고, 사람들이 우버 없이 이동하기 어려워진 다음 가격을 조정했던 구조와 비슷하다.


기술이 발전하면 토큰이 싸질 거라고들 말한다. 맞을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빅테크가 출혈을 감내하면서 사용자를 묶어두는 단계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충분히 깊이 의존하게 된 다음에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달러가 비싸다고 느끼는 시대는 곧 끝날 수도 있다. 지금의 200달러가 나중에 돌이켜보면 싼 가격이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금보다 훨씬 싸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하나다. AI 없이 일하던 시대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5개월 뒤에 카카오 행사가 끝난 사람들. 그들은 다시 20달러의 리밋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AI를 일상에 깊이 붙여쓰기 시작하면, 리밋은 단순한 사용 제한이 아니라 삶의 리밋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해 보았다. 리밋은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무력감마저 들게 했다.


나도 요즘 클로드 20달러 요금제로 보고서를 많이 만들다 보면 위클리 리밋에 하루 이틀쯤 걸릴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올릴까? 그런데 안 올린다. 예전에는 버티기 힘들었다. 지금은 버틸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하나의 모델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AI를 잘 사용한다는 건 토큰을 많이 태우는 것도 아니고, 가장 비싼 요금제를 쓰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모델에 종속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도구를 배치할 줄 아는 것.


그러니까 AI를 잘 쓴다는 건 AI를 많이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AI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ZeroInput — AI 시대의 경계에서 직접 부딪혀본 것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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