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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란 Sep 06. 2024

들들들들 볶아볶아 제육볶음

회사 사람들의 말에 들들 볶이는  날.

9시가 넘었는데 상사들이 출근을 안 한다. 오잉? 어리둥절한 나와 팀원들. 

“아 말씀 안 해주셨어요?” 

옆 팀장님에게서 전해 듣는 내 팀장의 소식. 요 며칠 언론에서 시끄러웠던 건으로 국회의원실에 해명하러 가셨단다. 전날 밤에 연락이 와서 부장님과 새벽부터 여의도로 날아가셨다고. 그렇구먼. 국회의원 나으리들이 부르시면 바로 가야지. 아니 근데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팀장이라는 사람이 담당직원한테 일정 공유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본인은 내가 연차라도 쓴다 그러면 은근히 캐물으면서. 그리고 오늘 결재 올리기로 한 내 계획안은?

“실장님 내일부터 안 계셔서 오늘 결재받아야 하는데 어떡할까요?” 

“아 맞다. 부장님 내용 아시죠? 부탁 좀 할게요. 과장님.” 

나의 카톡을 확인한 팀장의 답장에 천불이 치솟는다. 부탁 좀 한다니. 그게 오더야? 업무지시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모르나?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알맹이 하나 없는 상사의 명령에 힘이 탁 풀린다. 오늘도 체념 +1. 그래.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이거지. 간단명료하네. 자기 부하직원이고 뭐고 남 일이다 이거지. 내가 여유 있을 때 미리미리 해놓자니까 그때도 귀찮은 티 팍팍 내더니. 하여튼 좀만 바빠지면 이렇게 나사 빠진 소리를 해대서 사람 속을 썩인다. 손 많이 간다. 손 많이 가.

혼자 씩씩거리면서 결재판에 각 잡힌 보고서를 꽂아 넣는다. 하명을 받아 적을 다이어리도 챙기고 가자! 이 정도 다니면 실장실쯤이야 혼자 들어가는 거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정석대로라면 '실무자 - 팀장 - 부장 - 실장 - 임원' 순으로 차례대로 바턴 터치로 보고가 이어지거나 꼬리물기처럼 줄줄이 서서 상사 방에 들어가겠지만. 알잖아 실무자가 제일 잘 알지 누가 아냐. 과장쯤 되니까 임원 보고도 혼자 보내더라고. 상사면 담당직원 일은 빠삭하게 알아야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런 기대 다 내려놓은 지 오래다. 제발 가서 이상한 소리만 하지 말아 줘. 그래 차라리 자신 없으면 그냥 나를 데려가. 아니다. 그냥 내가 혼자 갈게. 그게 낫겠다.

실장님 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실 주무부서 직원에게 실장의 부재여부를 확인한다. 눈빛으로 주고받는 사인. 지금 혼자 계시다 오바. 오키오키 고맙다 오바. 실장실 바로 앞에 있는 주무부서는 실장 비서나 다름없거든. 출장에 회의에 일정관리는 기본. 매일 점심 실장이랑 밥 친구도 해줘야지. 지금처럼 보고하러 온 직원도 챙겨. 높으신 분들 오시면 커피도 나르고 간간히 떨어지는 심부름까지. 으으 난 승진 잘해도 여기 안 와. 싫어.

“요즘 애들은 이 글씨체 되게 좋아하더라?”

보고서를 받자마자 아니꼽다는 듯 타이틀로 딴지를 건다. 과연 빨간펜 선생님. 팀장 때부터 의사결정도 없어 업무 파악도 안 해. 그저 빨간 사인펜으로 띄어쓰기나 죽죽 잡아내고 오타 하나에 빽빽 샤우팅만 한다고 해서 붙은 그의 별명.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지. 문서 아티스트답게 자간, 장평, 글씨체로 트집 잡기가 그의 전문분야. 3년 넘게 같이 있으면서 의견을 내는 꼴을 한 번도 못 봤어. 맨날 그 정도는 담당자가 알아서 판단하래. 

그러니 윗사람들이 던져대는 일도 다 무조건 예스. 왜냐면 본인이 안 할 거거든. 실컷 욕을 해대다가도 이런 줏대 없는 예스맨이 실장으로 앉아있는 우리 회사의 현실이 암담하다.


“그럼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보고드릴 계획안을 간략히 요약해 드리면”

어쩌고저쩌고. 보고 듣는 내내 한쪽으로 턱을 괴고 있는 저 진상을 보고 있자니 혈압이 절로 오른다. 저 팔 한번 팍 쳐버리고 싶다. 그 와중에 저거 저거 또 내 보고 안 듣고 위아래로 건수 잡을 거 찾는 눈 좀 보라지. 하! 내가 아주 당신 부장일 때 이가 갈리게 당하고 살아서 그쪽 맞춤형 오마카세로 만들어왔다 이 자식아! 어디 이번엔 뭘로 구박하나 한번 보자.

"흥. 이대로 결재 올려. 아 그리고 여기 이거 띄어쓰기 2개만 고쳐줘."  

이씨이이... 펜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걱정 마. 상사를 해치지는 않아. 제발 그 자리에 맞는 선배미 좀 갖춰줘. 내 월급 안에 굽신 비용이 있는 대신 그쪽의 높으신 연봉에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잖아. 왜 돈만 먹튀 하냐고! 당신이 맨날 입에 달고 사는 거버넌스적인 관점에서 좀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척이라도 하란 말이야! 

그저 말만 번지르르 하지. 실장씩이나 돼가지고 말이야. 아직도 글씨 가지고 쫌팽이스럽게. 그리고 거기서 흥이 왜 나와? 어? 틀린 거 없어서 섭섭하냐? 어? 음소거로 이어지는 무한 궁시렁 타임. 돌려받은 결재판 속 문서. 살짝 접힌 페이지를 열어보니 하! 빨간 펜으로 브이자 표시가 적혀있다. 하! 대단한 건수 잡으셨네. 대단해! 됐다 됐어. 당신 내가 한 말 다 들은 거 맞지? 이 보고서도 다 이해한 거고? 그치? 그래놓고 나중에 딴 소리하면 나 가만 안 있는다. 

다이어리에 보고 날짜와 시간, 보고 결과를 쓱쓱 적어 넣는다. 회사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믿을 건 문서대장과 기록뿐이야. 

“그럼 결재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떠나려는데 그가 날 붙잡는다. 오랜만에 봤는데 '오붓하게' 이야기 좀 하잖다. 와… 멘트 장난하나? 우웩.

그렇게 이어진 실장의 단독 토크쇼.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다. 지지. 저런 거 귀에 담지 마. 산전수전 다 겪은 과장은 이럴 때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는다. 반응해 주면 앙코르공연만 더 길어지거든. 저 말을 끊고 뛰쳐나갈 수 없으니 제 풀에 지쳐 떨어지게 두는 게 나아. 잘 보이려고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 공공기관의 장점 안 잘린다. 단점 저 놈도 안 잘린다.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머릿속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지나친 과몰입으로 내적 댄스나 콧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주의할 것.


“어머 자기. 실장님 방에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나 밥 혼자 먹는 줄 알았잖아.”

확신의 외향형인 슈퍼 핵인싸 주무부서 과장님. 그와 저번주에 양치실에서 마주쳐 잡게 된 점약이다. 유명한 마당발인 그가 굳이 왜 나랑 밥을 먹고 싶어하는 걸까. 사내 유명인에는 크게 3 부류가 있다. 첫째 모두가 알아서 설설 기는 권력자. 둘째 모두가 알아서 친해지고 싶어 하는 능력자. 셋째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이슈를 꿰고 있는 정보통. 나의 오늘 점약 메이트는 3번. 우리 회사의 이름난 소문 빅데이터.

그런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핫한 이슈가 궁금할 때 가장 빠른 패스트 트랙이거든.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 하나를 들었으면 하나를 내줘야 해. 그 룰을 무시한 채 캐내기만 했다가는 눈치가 유단자급인 그에게 도리어 찍히는 수가 있어. 그렇게 서로 신뢰를 쌓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 

왜 학교 다닐 때부터 반에 한두 명씩 이런 친구들 있었잖아. 이런 그가 자발적 아싸라 소문에는 깜깜이인 내게 흥미가 생긴 이유가 뭘까? 흐흠. 워낙 스타일이 달라서 대충 네네하고 도망치려 했는데 결국 그는 약속을 확정할 때까지 나를 놔주지 않았다.  

“자기야. 우리 직원식당 가서 밥 빨리 먹고 커피 들고 산책 가자. 요새 날씨가 너무 좋더라”

오 그럴까요?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아주 멋들어지게 지어진 사옥에는 지역주민을 위한답시고 만든 산책로가 생겼다. 나무도 심어놓고 꽃도 피고 나름 잘해놨지. 근데 과연 누가 남의 회사에 와서 산책을 할까. 그게 항상 좀 의문이다. 암튼 점심시간이 되면 손에 커피를 한잔씩 들고 여기서 어슬렁어슬렁 걷는 직원들이 제법 있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친구랑 쭈쭈바 들고 운동장 돌던 거 생각나네. 솟아나라! 비타민D여!


오전 내내 상사들한테 들들 볶였더니 허기가 진다. 메뉴도 모른 채 도착한 직원식당. 와글와글. 붐비는 인파에 마음이 설렌다. 오올. 오늘 좀 괜찮나 보네. 역시나 기대에 부응하는 화려한 라인업. 특식은 돈가스에 일반식은 무려 제육쌈밥이다. 캬아. 영양사님 힘 좀 쓰셨네. 아 뭐 먹지. 제 선택은요?! 두구두구두구. 슈퍼패스로 일반식을 선택하겠습니다! 와아아! 제육볶음만으로도 흡족한데 계란찜에 내 사랑 양배추까지 나온다니 크으. 4천원의 행복이네. 하하호호. 신나게 웃고있는 직원들을 보니 구내식당이 최고의 복지라던 말이 과장이 아닌 듯하다.

식판을 나눠든 과장님과 나란히 서서 셀프로 급식을 담는다. 오 흑미밥 좋아. 메인인 제육볶음은 적당히 큰 녀석들을 골라 담아주고 계란찜은 두 토막. 배추김치는 없으면 좀 섭섭하니까 요맨큼. 삶은 양배추는 좋아하니까 두둑이. 그 옆으로 쌈장도 슬쩍 합석을 시킨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식당 직원님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득템한 콩나물국까지. 자율코너에 가서 기웃거려 보니 오늘은 쌈채소가 나와서 그런지 샐러드가 없다. 대신 바나나가 있네. 재밌다. 줍줍. 다이어트를 하신다며 옆에서 현미밥을 뜨던 과장님과 얼른 빈자리에 앉는다.

왁자지껄. 주변이 온통 수다로 가득하다. 다들 무슨 썰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 네모 계란찜부터 한입. 뇸뇸. 식었지만 짭짤한 게 간이 딱 좋네. 오물오물. 자잘하게 썰린 당근이 느껴진다. 요즘 상추가 비싸서 양배추를 준 것 같다는 과장님. 아 그래요? 전 집에서 요리를 안 해서 그런 거 잘 몰라서요. 허허. 채소만 나오면 땡큐지. 젓가락으로 먹기 좋게 토막 난 삶은 양배추를 쌈장에 콕 찍어 먹는다. 달짝지근하고 아삭한 게 아주 잘 삶으셨네. 입맛 돈다. 지금 많이 먹어둬야 해. 집에서 먹기에는 그 거대한 양배추가 너무 처치 곤란이야.

맞은편에서 모르는 직원이 양배추와 제육볶음을 함께 집어먹는다. 오올 좀 하는데? 좋은 건 바로 써먹어야지. 와앙. 생각보다 제법 칼칼한 제육볶음. 이거 기사식당 스타일이네. 제법 매콤해. 그래도 함께 먹은 양배추가 포근한 단 맛으로 끝맛을 감싸준다. 이번에는 고기맛만 한번 즐겨볼까. 냠 화려한 불맛도 없고 기름기가 적어서 살짝 뻑뻑하지만 그럴 때는 시원한 콩나물국을 더해주면 된다. 캬아. 이거 냉국이잖아. 시원한 감칠맛이 훌륭하네.


"근데 자기 아까 실장님 방에 왜 그렇게 오래 있었어? 둘이 친해?”

그건 또 언제 보셨대. 얼른 국물 한입을 더해 입을 한번 헹궈준다. 저 푸근한 얼굴에 속으면 안 돼. 이 분한테 말하는 건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마음 같아서는 팀장 흉부터 보고 싶지만 그간 쌓인 미운 정을 봐서 참아주기로 한다. 

“실장님 스타일 아시잖아요.” 

그 인간이라면 치가 떨린다는 듯 진절머리를 친다. 

“어우 말해 뭐 해.” 

다행히 약간 과장된 내 리액션에 만족한 듯 탄식과 함께 손사래를 치는 과장님. 주무부서인 본인은 오죽하겠냐며 생색을 낸다. 

“맞아요. 힘드시겠어요오. 저도 예전에 부장님으로 모셔봐서 다 알죠 알죠.” 

어쩐지 나랑 말이 잘 통한단다. 아... 예예. 좋은 건가? 허허. 험담 안 하면 좋지. 근데 그게 없는 곳이 세상에 존재할까.

직장생활의 재미라는 사람도 있지. 솔직히 나도 흥미롭긴 하다. 실사판 막장 드라마잖아. 마치 퇴근 후 술자리 같아. 편한 사람들과는 부담 없이 반갑고 즐거운데 이런 애매한 관계에서는 꼭 해야 하나 싶고 그런 거지. 그렇다고 전 이런 거 싫어한다며 고고한 학처럼 굴었다가는 내가 다음 안주거리로 씹힐 것이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마이웨이로 살 수도 있겠지만 난 현실에 타협하기로 했다. 정의롭지는 못 하지만 너무 비겁하지도 않게. 나만의 선을 적당히 지켜가면서 감당할 만큼만 줄타기를 즐기는 거지. 그래도 이렇게 네임드 빌런이 있으면 같이 씹을 만 해. 욕 한 바가지를 퍼붓고 나면 속도 좀 풀리고 말이야. 오늘은 실장 욕을 조미료 삼아 밥을 먹게 생겼네.


대체 그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아는 건지 궁금했는데. 오가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냐고 식사를 못 하신다. 저게 다 이 분의 정보망인 걸까. 념념. 그 짧은 찰나동안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살피는 사람들. 내 관등성명까지 묻는 걸 보니 우리 둘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한 눈치다. 아무 사이 아니랍니다. 그냥 옆부서 쭈구리에요. 허허. 인싸의 삶 대리체험. 

“어어 이따 채팅으로 말해줄게.” 

하루종일 채팅만 하시나. 하긴 승진 준비를 핑계로 부서의 주요 업무는 전부 후배들한테 몰빵시켜버렸다지. 소문의 여왕이라 해서 그 자신도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곁에는 언제나 그의 추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법이잖아.

와아앙. 다사다난한 그를 기다리며 제육볶음을 잔뜩 집어 한입 가득 넣는다. 오독. 여기도 당근이 들어있네. 계란찜과 달리 길쭉하게 썰린 당근이 메인댄서처럼 식감을 살려준다. 보컬은 당연히 쫄깃한 보이스의 제육이지. 히히. 맵싹 한 게 중독성 있잖아. 에? 얘는 양배추네? 흐흐. 뭉근하게 익은 양념 범벅 양배추 조각. 요정도 돌려 막기야 귀엽게 봐줄 수 있지. 히히. 살짝 얼큰해진 입에 이번에는 간간한 계란찜을 먹어준다. 아직 얘기 안 끝나셨나? 밥도 한번 와앙. 오늘 메뉴 조합 너무 환상적이야. 식판 위로 뫼비우스의 띠를 그려가며 만족스러운 한끼를 비워나간다.


야곰야곰 먹어치운 내 식판이 텅 비어갈 동안 그의 밥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네? 다 먹었으면 가잔다. 뭘 드시긴 하셨어요? 커피를 들고 산책로 쳇바퀴를 도는데. 

“자기 있잖아. 그 소식 들었어?” 

백화점 지하에 가면 커다란 철판을 앞에 놓고 먹음직스럽게 재료들을 볶고 있는 철판요릿집들이 있다. 마치 그 주방장처럼 새로운 대상을 하나씩 더해가며 달달달달 볶아내는 과장님. 네가 이걸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꿀꺽. 실장에 이어서 과연 이번에는 누가 볶여 나올까. 부디 아는 사람은 아니면 좋겠는데.

"이번에 신입직원 엄마가 자기 아들 3대 독자인데 이상한 데 보냈다고 인사부에 깽판 쳐서 부서 바꿔준 거. 아 자기도 알아? 업데이트도 들었어? 이번에는 담당 부장한테 아들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면서 부모 마음으로 잘 챙겨달라고 전화를 했대. 그래 맞아! 거기 부장 미스에. 그래! 카리스마 장난 아니잖아! 그 여편네가 자기 수가 또 통할 줄 알고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간 거지. 그래서 부장이 부서 회의시간에 완전 쩌렁쩌렁하게 이 직원 엄마가 전화해서 잘해주라고 했으니까 다들 잘 챙겨주라고 질러버렸대! 그럼 당연히 들으라고 한 소리지! 걔도 뭐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뭐 멀쩡한 애겠니? 암튼 또라이는 또라이가 답이라니까. 키키키키. “

와우. 봐바. 솔깃하잖아. 허허. 그런데 리액션을 뭐라고 해야 하지? 다음 중 마음 편히 욕할 곳을 고르시오. 보기 중에서 공공의 적이자 특정인이 아닌 인사부를 골랐다. 

“근데 인사부는 왜 자꾸 그런 걸 받아준대요?” 

과장님의 은밀한 목소리에 나도 데시벨을 따라 낮춘다. 

“자꾸 받아주니까 점점 더 그러는 거잖아요. 요즘 외동 아닌 직원 어디 있다고. 누구는 부모 없대요?” 

“어머어머! 내 말이!” 

찰싹찰싹. 아야. 또 팔뚝을 맞았다. 후우. 통과인가. 근데 이제 슬슬 이 모임의 목적이 드러날 때가 됐는데. 원래 이렇게 떡밥을 하나 던지면 그 다음은 내 차례거든. 


본게임 시작이다. 

"크흠흠. 근데 자기야. 혹시 소개팅 생각있어? 내가 교회에서 여기 옆 회사 사람 하나랑 친해졌는데 말이야. 사실 내가 관상을 좀 보거든. 근데 자기랑 완전 찰떡궁합인거야. 자기 올해 몇살이지? 아… 그래? 에이 뭐 이 정도 나이차는 요즘 나이차도 아니지 뭐. 연예인들 봐. 띠동갑도 넘는데 잘들 살잖아. 어때? 할 거지? 나 한다고 말한다?”

으악!!!! 

“저 헤어진지 얼마 안 되서요. 저번에 된 통 당했더니 생각이 없어요. 하하. 네네. 혹시 나중에 마음정리되면 말씀드릴게요. 호호.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우. 식은땀이 줄줄 나네. 나는 입사 후 쭉 갓 이별한 실연녀 상태다. 적어도 우리 회사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어. 휴우. 깜냥도 안 되면서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았네. 역시 난 아싸 라이프가 맞아. 역시 회사생활은 도무지 만만해지지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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