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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름 Sep 03. 2024

아샷추처럼 겪어봐야 아는 맛도 있더라

평판이 전부가 아닌 세상

"아샷추가 뭐예요?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


뜨거운 여름 예전 부서 팀원들과 한 달에 1번씩 갖는 점심약속 날. 길거리 입간판을 보고 던진 내 질문에 A대리님의 입이 떡 벌어진다. 이걸 아직도 모르냐는 눈빛. 알잖아. 나 유행 잘 모르는 거. 귀찮아서 SNS도 안 하는 사람인데 뭘 놀래. 내가 알면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거야.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샷 추가라고? 으잉? 듣기만 해도 이상한데? 그걸 왜 먹어? 호불호가 심해? 그럼 안 먹을래. 이상할 거 같아.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A대리님이 자기 평생소원이니 제발 여기 아샷추를 딱 한 번만 먹어보란다. 본인이 다 사주겠다고. 얘는 맨날 평생소원이래. 아 맞다. 이 분 얼리어답터였지. SNS에서 유행하면 꼭 해봐야 하는 사람들 있잖아. 분야도 다양하다. 온갖 음식들부터 시작해서 IT 장비, 취미, 여행, 운동 등등 뭐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본다니까? 덕질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느낌이야. 그래도 덕분에 세상 소식을 때맞춰 듣게 돼서 즐거울 때가 많다. 가끔 본인한테 안 어울린다던가 너무 많이 샀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선물도 많이 받았지.


결국 또 졌다. 우리들의 손에는 들려진 아샷추. 킁킁. 뭐 냄새는 그냥 아이스티 같고 괜찮네. ‘이게 요즘 유행이야?‘ 팀장님이 관리자스러운 말씀을 하신다. 그렇게 다 같이 한입 크게 쭈우욱 마셨는데. 으에엑 이게 뭐야. 팀장님은 사레에 들리셨는지 켁켁거리신다. 다른 대리님이 이 정도면 진짜 맛있는 편이라고 했다. 배신자! 이런 맛인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맛이지? 뇌가 정의를 포기한 것 같았다. 우리의 반응을 보고 흥분한 A대리님이 원래 처음에 다들 그러는데 눈 딱 감고 몇 번 더 먹어보면 중독될 거라며 열띤 변호를 시작했다. 세상에 무슨 음료를 그렇게까지 하면서 먹어? 그래도 사준 성의가 있으니 한 입만 더 먹어볼까. 쪼오오옵. 에에엑. 우아한 팀장님의 입에서 ‘담뱃재맛’이라는 엄청난 표현이 나왔다. 세상에! 아니 평생 비흡연자셨으면서. 깔깔. 소개해준 대리님까지 모두 빵 터져버렸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딱 맞는 맛이긴 해. 나도 담배를 피워 본 적은 없지만 원하지 않는 간접흡연을 늘상 당해봐서 그런가. 그 설명이 단번에 이해가 가버렸다. 결국 팀장님은 포기선언을 하고 아메리카노나 다시 시켜야겠다며 키오스크로 향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놀려댔으면서 내 입이 자꾸만 이 요상한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잖아. A대리님이 역시 평소에 차를 잘 마시는 나는 좋아할 줄 알았다며 씩 웃는다. 분명 시작은 달큰하고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인데. 그 익숙한 단맛에 흠뻑 빠져갈 무렵 두둥하고 등장한 쌉싸름한 커피 향이 입안을 깔끔하게 싹 씻어주는 기상천외한 맛. 남은 아샷추를 사무실까지 애지중지 들고 와서 마시다 보니 호불호는 강하다지만 왜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보통 달달한 음료에는 크림 같은 유제품이나 과일이 들어가서 밥을 먹고 나서는 더부룩한 느낌에 그런 음료는 좀 꺼리게 되는데. 이건 베이스가 아이스티라 그런지 식후에 호로로록 즐겨도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아. 포만감이 없어서 좋네. 마치 국민메뉴 '아아' 같이. 게다가 샷추가로 카페인이 들어있으니 커피를 마신 느낌은 충분히 나고 텁텁하지도 않은 마성의 음료. 직장인들이 빠질만한 녀석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다시 점심을 먹게 되었을 때 팀장님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 이상해. 자꾸 그놈의 아샷추가 주기적으로 생각나. 그래서 맨날 사서 한입 먹고 이상하다고 욕해.”


아이고 못 살아. 깔깔. 이어지는 나의 충격 고백. ‘저도 그래요.’ 이번엔 팀장님이 박수를 치시며 신이 나셨다.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역시 이상한 음료라니까. 안에 뭘 넣은 게 분명해. 틀림없어. A대리 책임져! 팀장님과 나의 아우성을 바라보는 대리님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그날도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모두 다 함께 모여 아샷추를 마셨고 아무도 중도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 아샷추가 A대리님과 정말 닮았다. 겪어보기 전에는 소문만 듣고 별로 일 것 같았지만 나랑 잘 맞는 사람.




대리님은 내 친한 동기의 멘티였다. 그 동기는 일머리도 좋고 놀기도 잘하는 인싸라 동기들 뿐만 아니라 선배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런 그가 자기 밑에 입사한 A대리님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오빠가 사람을 힘들어하다니 말도 안 돼. 처음엔 말이 없어서 답답하다로 시작했다. 그러다 사고를 쳐도 먼저 질문하는 법이 없고 항상 동기가 나서서 이거 왜 이러냐고 물어보면 그제야 질문하려고 했다는 핑계를 댄다고 했다. 실수를 해도 죄송하다가 끝이고 대책이 없다며 눈치를 보는 건지 회피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죽겠다던 그는 그날도 실수를 걸려놓고 말없이 멀뚱히 앉아있는 대리님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렸다. 도무지 속을 모르겠어. 하소연은 멘토링 기간 내내 계속 됐다. 나와 동기들은 당연히 화가 났지. 뭐 그딴 게 다 있어? 심지어 경력직이라고? 말도 안 돼. 걸리기만 해 봐.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싫어할 준비 완료.


그러니 어느 날 정기전보의 인사발령 속 A대리님의 이름을 보았을 때 내 기분은 참... 몇 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세상에. 망했다. 이 사람이 우리 부서에 오다니. 설마 하는 마음에 메신저를 검색한다. 동명이인이 없다. 젠장. 구겨진 내 표정을 보고 팀장님이 물어보셨다. ‘아는 사람이야?’ 살짝 고민했다. 미리 경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결국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나니까. 기존 멤버의 평가는 새로운 멤버의 앞날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 선입견이라는 게 무섭거든. 지금 나처럼. 그렇지만 내가 직접 당한 게 아닌데 한쪽 말만 듣고 여기저기 퍼 나르는 게 맞을까?  ‘아니요. 잘 몰라요.’ 말 끝을 흐렸다.


“너 회사 생각보다 좁다. 좋은 게 좋은 거야.”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많이 듣는 말. 저 소리를 들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짜증이 솟구쳤다. 내 회사만 좁아? 저 사람은 그런 생각 안 하고 저따위로 구는데 왜 나만 참아야 해? 좋긴 뭐가 좋아! 내가 안 좋다고!! 내가!!!! 하지만 다녀보니 알겠다. 이 회사는 정말 좁아 터졌어. 전국에 지사가 퍼져있어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이 대다수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 그리고 우리에겐 메신저가 있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나보다 지사직원들이 이 쪽 소식에 더 빠르다. 공지사항은 그렇게들 안 보면서 소문은 산불처럼 삽시간에 퍼지거든.


두 번째 부서에 발령이 나고 처음 인사드리던 날. 내가 한 말은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두 마디뿐인데 이 분들은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나이, 출신학교, 결혼유무 심지어 사는 동네까지. 내 옆에 스파이가 있나. 그동안 회사에서 쫑알거린 내 정보들이 다 널리 널리 퍼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입사 때부터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내가 또 무슨 말을 했더라? 그러더니 그들은 칭찬이랍시고 내가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앞으로 회의가 많을 테니 잘 부탁한단다. 주변에서 추천을 듣고 나를 인사부에 요청해서 데려온 거라고. 정말? 누가 뒤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 거지? 소문이 무서운 이유는 한번 퍼져버리면 진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기정사실이 되어버리거든.


하지만 남들만 흉볼 게 아니야. 나 또한 새로운 누군가와 일을 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기저기 정보를 물어보고 다녔다. 이 사람 혹시 알아요? 어떤 사람이에요? 그렇게 묻다 보면 내 소문이 그랬듯 별의별 이야기가 다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때 한번 귀에 들어온 정보들은 덥석 믿게 된다니까. 이유야 단순하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알려준 정보니까. 지인을 믿어야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잖아. 실제로 만난 상대가 내가 들은 정보와 다른 모습을 보여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 본모습을 드러내겠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어. 그쪽이 그럴 리가 없다며 내 멋대로 맞춰놓은 첫인상에 상대를 욱여넣었다.




A대리님도 그랬다. 처음에 지켜보니까 동기 말이 구구절절 맞는 거야. 굼벵이도 아니고 정말 속이 터질 것 같아. 발령 이후 혼자 뭔가를 하루종일 하는데 질문 한 번을 안 한다. 아니 이제 신입도 아니라서 옆에서 붙잡고 알려주는 멘토도 없는데 모르면 알아서 우리한테 캐내야지. 그런데도 팀장님은 대리님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답답한 구석은 있는데 그냥 좀 소심한 스타일인 것 같고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 요즘 이상한 애들이 워낙 많아서 걱정했거든. 후우. 나는 당시 팀장님을 잘 따랐고 굳이 그 상황에서 혼자 아니라고 초를 치기도 뭣했다. 그저 조용히 들고 있던 커피를 홀짝였지. 뭐 하러 상사 기분을 망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러기를 2주. 이대로는 저 양반이 자기 몫을 언제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안 되지. 지금 우리가 본인 일 다 나눠서 하고 있는데. 결국 팀장님을 포함한 모든 팀원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대리님 옆에 전담으로 붙어 일을 알려주기로 했다. 대리님은 괜찮다며 난감해했지만 그게 통할 시기는 지났어.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생존이 달린 일이야. 나의 순번이 다가오고 대리님의 책상에 가보니 온갖 피규어에 모니터 여기저기 붙은 쪽지들에 정신이 없다. 하이고. 이러니 일을 못 하지. 내 멋대로 내린 결론. 그러고 나서 일을 알려주는데 상대가 고요하다. 피드백이 없으니 뭘 모르는지 내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지. 아오 답답해. 아오오 속 터져!!! 결국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대리님, 대답을 해주셔야 이 기회에 제가 실컷 알려드리죠."


 떼끼! 요즘에는 아랫분들께 어디 감히 함부로 조언이라도 건넸다가는 최소 꼰대 타이틀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라고! 나도 알아. 그렇지만 이대로는 정말 화병이 날 것 같은데 어떡해!


대리님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애도 아니고 저게 뭐 하는 거래. 아 아니야. 좋은 게 좋은 거. 응응. 그래그래. 이것도 답은 맞으니까 넘어가자. 그 뒤로는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렸지만 대리님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오옹 반영을 하네? 그럼 됐어. 옆에서 지켜보니 역대급 완벽주의 성향이 문제였다. ‘대리님 일이 이거 하나가 아니에요. 자기 멋대로 이거 하나만 계속 붙들고 있으면 어떡해요.’라고 말을 하려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가 떠올라 꾹 참았다. 그 대신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업무일정표를 공유했다. 나는 원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 이상한 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 표에는 내 업무가 1년 동안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나와있다. 이걸 보면 단계별로 어느 정도 기간을 잡아야 하는지 본인도 알겠지.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늘어지면 안 되겠다는 감도 좀 오고. 싫으면 안 써도 된다는 면피성 멘트도 쪽지에 적었다.


그 다음날 처음으로 내 자리에 대리님의 선물이 올려져 있었다. 엥? 포켓몬 빵이잖아? 편의점에서 난리라더니 이걸 어디서 구한 거야? 고맙다는 나에게 머뭇거리며 일정표 활용법에 대한 질문을 한다. 좋은 징조로군. 며칠 뒤 팀장님은 대리님의 일처리에 속도가 조금 붙었다고 안도하셨다. 나에 비하면 아직 나무늘보 같지만. 휴우. 으늬즤. 즈은긔 즈은그즈느.


퇴근시간쯤 되면 메신저로 아까는 감사했다거나 죄송했다는 쪽지를 보내왔다. 그 말을 왜 바로 하지 않는 것인지 좀 의아하지만 어떻게든 들었으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별말씀을요. 화이팅!'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우렁이의 선물이 점점 늘어난다. 이건 뭐지? 젤리인가? 마음은 고맙지만 항상 이런 걸로 되갚아주지 않아도 되요. 그런데 도대체 내 말을 뭘로 듣는건지 이번엔 소품점에서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사 왔다며 미니언즈 피규어 하나를 슬쩍 올려놓는다. 엥? 내가 이 캐릭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아니 됐고. 돈 좀 그만 써! 진정해! 그만하라고! 돌려주려는 나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가는 현란한 무빙. 히히. 저 사람 저렇게도 웃을 줄 아네. 참내. 못 살아 진짜. 결국 대신 밥을 사주기로 하고 몇 번 같이 점심도 먹었다. 밖에서 둘이 보면 말을 잘하는구나.




결정적인 날이 있었다. 대리님은 평소보다 더 쭈뼛거리며 나와 B대리님에게 다가왔다.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만든 시나리오를 봐줄 수 있냐는 부탁. 바쁘실 텐데 너무 죄송하다. 이런 걸로 귀찮게 해 드려서 너무 죄송하다. 무슨 대화 한 번에 죄송하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는지. 기승전 죄송이다. 솔직히 전화 한 통하는 게 뭐 대수라고 이런 곳에 시간을 쓰나 답답했다. 이러니까 맨날 집에 못 가지. 그런데 그 종이를 받아 들고 할 말을 잃었다. 무려 3가지 버전으로 쓰인 예상질의 답변서. 이걸로 콜센터 면접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사람 낯선 사람이랑 말하는 걸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구나. 그런데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나름대로 정면승부를 준비 중인 것이다. '잘 썼네요.' 이 정도면 무리 없을 거라고. 혹시 악성민원이면 매뉴얼에 따라서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했다가 그런 경우는 잘 없다고 덧붙였다. 괜한 말을 했네.


A대리님이 전화를 거는데 B대리님이 작게 파이팅을 외친다. 같은 마음이셨군. 평소 악성민원에도 떨리지 않던 내 속이 울렁거렸다. 제발 괜찮아라. 다행히 대리님은 말을 조금 더듬기는 했지만 무사히 응대를 마쳤다.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 혼자 땀범벅인 대리님이 또 히히 웃는다. B대리님과 나의 엄지 척을 받으며. 그 뒤로 A대리님은 민원전화를 점점 더 잘 받게 되었다. 긴장한 티가 많이 나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한 달 뒤에는 팀장님도 많이 걱정하셨던 첫 회의를 순조롭게 잘 진행했다. 회의에서 지켜보니 대리님 손에 들린 시나리오가 땀으로 너덜 해져간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나.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리님이 싫지 않다. 난 노력하는 사람한테 약한가 봐.


완벽한 육각형 밸런스의 직원은 유니콘 같은 존재다. 누구나 더 잘하는 일이 있고 좀 어려워하는 일이 있다. 나는 새로운 일을 겁내지 않지만 반복업무를 힘들어한다. 대부분 그런 식이야. 대리님은 표현하는 일에는 약했지만 그 특유의 꼼꼼함 때문인지 데이터를 산출하는 능력이 타고났다. 특히 에러를 잡아내는 센스는 부서 최고. 통계를 만들 일이 별로 없는 이전 부서에서는 몰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아주 귀한 스킬이라 부서사람들은 대리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만큼 고마워했다. 자신감이 생긴 대리님은 몇 달 만에 가장 높은 레벨의 데이터 관련 사내 자격증을 따냈다. 올해 전사에서 딱 5명의 합격생. 그중 유일한 대리. 오와아! 너무 멋있잖아!


여전히 대리님에 대한 평판은 반반이다. 같이 일하기 답답하다는 사람과 노력파라는 사람. 둘 다 맞는 말인데 나는 상관없다. 극과 극인 성격이지만 난 대리님과 같이 있는 게 너무 즐겁거든. 그거면 됐지. 아샷추처럼 낯설고 새로운 사람. 안 겪어봤으면 어쩔 뻔했어. 요즘에는 내가 대리님처럼 ‘아샷추 딱 한 번만 먹어봐’를 외치고 다닌다. 아샷추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천상의 맛이 난다니까? 조심스럽게 맛을 본 후 원망의 눈빛을 쏘아대는 사람들. 내 말 믿어. 며칠 뒤에 또 생각날걸? 그들 중 누군가는 얼마 뒤 아샷추를 들고 오다 나와 마주친다. 하는 말들은 똑같아. 이상해. 이게 왜 자꾸 생각나지? 그렇게 동지를 만들었을 때의 쾌감. 대리님 말이 맞네.


그 이후로도 평판에 대한 신뢰를 잃는 사건들은 계속 있었다. 집단지성이라더니 아샷추처럼 사람 바이 사람인 건가. 최악의 경험을 꼽으라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별로인 상사. 이 인간의 평판이 왜 좋은지 도무지 모르겠으나 대충 둘러봐도 내 편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니 어디다 티를 낼 수가 없어. 부러워하는 직원들에게 버럭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좋으면 네가 데려가든가! 농담 따먹기만 하고 성과 안나는 일은 다 나한테 떠넘긴다고! 그나마 같은 팀원만이 내 고충을 알아주었다. 당해본 사람만 아는구나.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이전처럼 굳이 나서서 그의 소문을 캐내지 않는다. 안 물어봐도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헤헤. 어디 또 아샷추 같은 직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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