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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란 Aug 30. 2024

프로직장인도 딸의 고등어는 어렵고등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

오래간만에 내 모든 유년시절이 있는 본가에 간다. 가정의 날 덕분에 2시간 일찍 퇴근했는데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리니 9시가 다 되어가네. 아유 배고파.

지방 출신인 부모님은 아빠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혼수로 마련한 이불 보따리 하나를 들고 상경한 서울. 그 후로 오랫동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해 온 결혼사진 속에 앳된 연인 한쌍이 어색하게 웃고 있다. 한창 놀기 좋은 나이에 왜 이렇게 일찍 결혼을 했을까.

답은 안 봐도 뻔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무려 6남매 중 넷째였던 여자와 첫째에 차이고 막내에 치이고 평생 대접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둘째 아들의 만남. 지원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럴 바에 둘이 빨리 합쳐 빨리 돈을 모으자는 청춘의 객기였을거야. 그들은 젊고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그대와 함께라면 충분하니까.

둘이 살기도 좁은 관악구의 다세대 주택. 옆방에서 나는 기침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그곳은 부모님의 신혼집이었다. 매달 월급을 받으면 한 달 치 버스 토큰을 사서 저금통에 넣어놓고 딱 굶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만 남겨둔 채 모두 저축했다. 힘들어도 몇 년만 버티면 아파트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다정한 너를 쏙 빼다 닮은 어여쁜 아이를 낳자. 그런데 타고나기를 성질이 급했던 나는 계획보다 빨리 찾아왔고 그럴 줄 알았다는 상사의 구박에 천덕꾸러기가 된 엄마는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큰일이네. 입덧을 참아가며 부업을 구했다. 애 키우는 게 한두 푼이 아니라던데. 애 낳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해. 그런데 태어난 아기는 또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지. 하루종일 앙앙 울어대던 나 때문에 견디지 못한 집주인이 눈치를 줬고. 어린 엄마는 그 골방에서 나를 끌어안고 매일 빌었다. 울지 마 아가야. 네가 자꾸 울면 우리 다 쫓겨나. 자장자장. 하지만 난 외할머니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까칠한 아기였고 결국 부모님은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 새벽에도 기차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 내 기억 속 첫 집이다. 나에게는 걱정 없던 그리운 시절인데 엄마는 숨통이 조여오던 대출이자부터 떠오른다지.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IMF가 터졌다.

슬슬 말귀를 알아먹을 만큼 자란 나는 퇴근한 아빠 무릎에 앉아 엄마가 썰어주는 사과를 먹으며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뉴스를 같이 보곤 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뉴스 금지령이 떨어졌다.

“빨리 방에 들어가! 푹 자야 키가 크지!”

“흥! 엄마 나빠! 아빠 미워!!”

치사하다 치사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 당시 뉴스에는 아동납치에 보험사기에 온갖 험한 일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는 걸.

“엄마! 아빠 왜 요즘 집에 안 와? 왜 맨날 우리끼리 밥 먹어?”

“으응. 아빠가 요새 바빠서 그래. 아빠가 열심히 일해야 우리 딸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잖아. 아빠가 사랑해서 그러는 거 알지?”

밤늦게 와서 새벽에 가셨다는 엄마 말에 심통이 잔뜩 돋아났다. 아빠 나빠! 왜 엄마만 보고가! 왜!! 바락바락 투정을 부린 탓에 잔뜩 혼이 나고 퉁퉁 불은 눈으로 잠든 그날 꿈을 꾸었다. 아직 세상이 푸르던 시간. 내 얼굴을 보드랍게 쓰다듬는 손. 시원한 스킨향. 아빠다. 근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압쁘아... 압빠... 코오코오.

어느 날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서 신발장에 엎어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 꼬라지를 보고도 엄마가 화를 안 내. 그저 곁에 앉아 넥타이를 끌러내더니 조용히 아빠의 등을 토닥인다.

“고생했어.”

토닥토닥.

푸우푸우. 코끼리 같은 소리를 뿜어내던 아빠의 몸이 둥그렇게 오그라들더니 이내 바닥으로 얼굴이 사라졌다. 그렇게 굳어버린 아빠. 엄마는 묵묵히 등을 토닥였다. 아빠 소리가 반가워서 뛰쳐나가려다 뭔가 낯선 분위기에 멈춰 선 나는 방문 틈으로 조용히 상황을 훔쳐보다 조심스레 방문을 닫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아빠는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다. 같이 웃던 직원들이 눈앞에서 댕강댕강 잘려나가는 도축장 같은 사무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지옥 같은 터널을 걷고 또 걸었다.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동료들의 비난. 너 내일 책상 빼버린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어버린 곳에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사옥을 나왔다. 무한충성을 맹세하며 군소리는 머릿 속에서 지워버렸다. 처음부터 회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굴었다. 온갖 부당한 일이 쓰나미처럼 몰아쳐도 온몸으로 파도를 막아섰다. 차갑고 외롭고 괴로워도 버텨내자. 나만 참으면 될 일이야. 다 그렇게 산다. 다 이렇게 살아. 그래서 딸랑구들은 그의 기도처럼 무사히 말랑하게 자라났다.

그 시간도 흘러 흘러 2년마다 전셋집을 떠돌며 살았던 우리 가족에게 집이 생겼다. 옆동네 신축아파트로 이사했거든. 우와! 엘리베이터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이제 이사 안 다녀도 돼? 세상에! 너무 좋아. 아빠 최고! 학원가로 유명한 동네답게 영어, 피아노, 발레, 종합반에 과외까지 안 다녀본 학원이 없다. 점점 탐나는 건 왜 이리 많은지. 마이마이 사줘! 컬러폰 사줘! 애들 다 있단 말이야!

어렸던 나에게 이 모든 건 당연했다. 이 집도 내가 쓰는 돈들도 아빠의 회사도. 이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건지 알 리가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직장인이 되어서야 알았지. 당연한 돈은 없고 회사는 그냥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아빠는 주 6일제에도 주말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쏘다녔는데 나는 어떻게 된 게 자도 자도 피곤하다.

그 시대는 다 그랬다는 아빠. 그렇구나. 근데 나는 가끔 내가 사랑하는 두 중년의 청춘이 안쓰럽다. 좀만 즐기지. 일은 평생 질리게 할 텐데. 나의 철인들.


개찰구 앞에 익숙한 잠바가 보인다. 응? 아빠?

“추운데 왜 나왔어.”

좋으면서 왜 말이 이렇게 튀어나가는지. 은근슬쩍 아빠의 팔짱을 끼며 반갑다는 말을 대신한다.

“회사는 괜찮아?”

 “그냥저냥. 근데 손에 든 건 뭐야?”

아빠가 나를 먹이려고 트럭에서 파는 고등어구이를 사러 나왔단다.

“와 맛있겠다.”

흐뭇해하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익숙한 길. 말없이 걷는 두 어른의 걸음을 따라 아빠의 고등어 봉지가 찰랑거린다. 가끔씩 퇴근한 아빠 품에 들려있던 검은색 비닐봉지. 어린 나는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배꼽인사를 건네며 흘긋 그의 품을 확인하곤 했다. 에이. 오늘은 없네.   


”아빠 기억나? 예전에 우리가 아빠 데리러 갔던 거”

오래된 기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듯 아빠의 눈이 잠시 허공 속에 멍하니 맺혔다가 웃음에 휘어진다.

”허허. 맞아. 그랬지. 시간 참 빠르네.”

어린 시절 맨날 9시가 넘어야 들어오던 아빠가 웬일로 칼퇴를 하면 우리 자매는 손을 꼭 잡고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가서 역무원 아저씨 앞에 서있어. 어디 딴 데 가면 안 돼.”

일찍 집에 온다는 아빠의 전화에 분주하게 저녁밥을 준비하던 엄마의 잔소리. 손은 바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어린애들 둘이 아빠 마중을 간다고?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어. 30분 넘게 걸리는 학교도 혼자 잘만 다니는데 집 앞 기차역쯤이야. 가끔은 미션이 추가됐다.

“아빠한테 통닭 먹고 싶다고 그래.”

통닭? 좋아! 그치. 엄마도 가끔 밥이 하기 싫었겠지.  

찰칵. 뚜껑이 열리는 캐릭터 전자시계. 이번 생일선물로 아빠가 사줬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저 아래 계단에서 수많은 아저씨들의 머리가 쏘옥쏘옥 올라오고. 기다림이 지겨워진 동생이 온몸을 베베꼬며 아빠를 찾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의 비슷비슷한 어른들.

“어? 아빠다! 아빠아아아!!! 아빠아아아아아!!”

아까 바라본 달님처럼 환하게 피어난 동생이 달려 나간다.

“소리 지르면 안 돼! 같이 가!”

적막한 소란을 가르는 아이들의 우렁찬 외침에 회색사람들의 눈이 반짝이며 생기가 돌아오는가 싶더니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고 다시 살포시 가라앉는다. 그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아빠의 얼굴. 동생과 똑 닮은 얼굴의 그만이 말갛게 빛나고 있다.

“아이고!”

표를 넣고 개찰구를 빠져나온 아빠가 한쪽 무릎을 꿇고 우리를 안아준다.

“아빠 보고 싶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따스한 눈길. 아빠의 웃음소리. 행복하다. 너무너무 행복해.


아빠가 청춘과 건강을 다 바친 회사를 퇴직하던 날. 아빠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작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공로상 트로피를 받은 아빠에게 축하인사를 건넸지만 사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아빠의 퇴직이 반갑지 않았어. 나 내년에 고3인데 어쩌려는 거지. 학원은 계속 다닐 수 있는 건가. 등록금은? 아 몰라. 알아서 하겠지.

아빠 품에 안겨있던 그 상자는 오래도록 안방의 구석자리를 지켰다. 평소 같으면 그 꼴을 두고 볼 리 없는 깔끔쟁이 엄마가 무슨 이유인지 그 너덜너덜한 골판지 상자만은 쉽사리 정리하지도 구박하지도 않으시더라고.

어느 날은 공부도 하기 싫고 심심해서 아무도 없는 사이 그 상자를 열어봤다. 사무용품들 사이로 보이는 낯익은 캐릭터 봉투들. 뭐지?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편지가 한 움큼 튀어나왔다.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삐뚤빼뚤 접은 카네이션. 색종이에 그린 아빠 그림.

아빠 돈 많이 벌어와.

이런 소리는 왜 한 거지?

얼마나 열어본 건지 접힌 부분마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편지지. 마찬가지로 낡아서 색이 바랜 가족사진. 아장아장 걷는 동생과 나. 젊은 엄마.

궁상맞게 이런 걸 왜 여태 가지고 있는 거야.

매몰찬 감상평과는 다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는 이 편지들을 언제 보고 있었을까. 그 순간이 조금은 힘이 되었을까. 한참을 울다가 아빠가 눈치채지 않게 상자를 다시 덮어두었다.

그날 나는 나에게 주어진 평안의 대가를 눈치채고야 말았다.

처음 하는 장사준비로 한창 바빠진 부모님은 고3을 맞이한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하셨지만 난 언제나 씩씩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어차피 공부는 내가 하는 거야!

요즘 잘나간다던 안들으면 큰일난다는 인강을 듣고싶은데 구독권은 뭐가 이렇게 비싼건지. 수시 지원비는 어떻고. 평생 본 적 없던 가격표에 동그라미들이 왜 이리 많은거야. 독서실비가 아까워서 주말에도 시간을 꽉꽉 채워 매일 나갔다. 돈돈. 그놈의 돈. 그때부터였네. 나의 돈타령은.

덕분에 부모님이 바라던 인서울 대학에도 붙었다. 학과는 무조건 취업률로 선택. 돈을 벌어야 해. 그래야 부모님이 내 걱정은 안 하겠지. 좀 편해지시겠지. 장래희망 같은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야. 그리고 원래 꿈같은 거 없었어. 내 비전은 아빠처럼 훌륭한 월급쟁이가 되는 거야. 든든한 딸이 되어야 해. 그렇게 내 나름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살아온 덕에 여기까지 왔다. 큰돈은 못 벌지만 여자한테는 최고라던 철밥통 공공기관.

하지만 결국 아빠가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하던 본인의 고향보다 더 시골인 이곳에 떨어져 버렸지만.


"손 씻고 나와. 고등어랑 밥만 차리면 돼.”

내 신청메뉴인 된장찌개다. 이상하게 집밥은 소소한 게 먹고 싶더라. 돼지갈비를 해준다는 엄마를 말렸다. 엄마 마음은 알겠는데 내가 먹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부모님은 10년 정도 장사를 하시다가 코로나 전에 그만두시고 취직을 하셨다. 더 늦으면 구직이 영영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이 운이 좋았지.

환갑이 넘어서도 일하시는 게 신경 쓰이지만 그렇다고 내 형편에 번듯하게 모두를 먹여 살릴 수는 없으니 두 분의 건강에 감사할 뿐. 엄마는 운동을 다녀와서 좀 늦는다고 아빠와 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어우. 배고파.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드는데. 툭. 내 밥그릇에 거대한 고등어의 살코기가 얹어진다.

“아빠. 이거 너무 큰 거 아니야?”

“많이 먹으라구”

아빠가 준 고등어를 한입 베어문다. 겉껍질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과연 전문가가 구운 아주 훌륭한 고등어네. 간은 또 어떻게 이렇게 잘한 건지 밥도 한 술 떠서 먹으니 하나도 안 짜고 딱 좋다.

“간간하니 맛있네.”

내 칭찬에 아빠의 작은 눈이 사라진다. 흐흐. 전에 아주 맛있는 고등어 트럭을 발견했다는 아빠의 자랑에 맛있겠다고 답한 것을 아빠가 내내 마음에 품고 있었다보다. 애정표현이 어색한 중년 아저씨의 내리사랑이 이 윤기 나는 살코기에 가득 담겨있다. 그런데.

“아야! 으이구. 못 살아.”

내가 울상으로 뼈를 빼내자 아빠가 당황한다.

“아이고. 눈이 침침해서 못 봤나 봐. 미안.”

“크키키. 미안하면 또 줘.”

이번에는 신중하게 뼈를 발라내는 아빠. 귀여워. 히히. 아빠를 기다리며 엄마의 된장찌개를 먹는다. 음. 이 맛이야. 내 영혼이 원하던 그 맛. 포슬포슬 신선한 콩맛이 가득하다.

“아빠. 이 두부 맛있다.”

내 말에 다시 밝아지는 얼굴.

“엄마가 너 준다고 아침에 시장 가서 사 왔어."

역시 그 집 두부였군.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요즘 귀하신 애호박도 국물이랑 같이. 캬아! 달큼한 이 맛. 좋아! 아빠 요즘 식당에서는 애호박을 보기 힘들어. 대신 주키니를 넣는데 걔는 아무 맛이 안나. 자영업자였던 아빠는 그래도 구색 맞춰 뭐라도 넣어주는 게 어디냐며 가게 편을 든다. 아니 내가 뭐라 했나. 그냥 그렇다는 거지. 흥. 어이 고등어씨. 당신도 노르웨이에서 왔겠지? 어디서 왔든 무슨 상관이야. 맛있으면 됐지 뭐.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온다. 딸! 들어오자마자 꼭 안아주는 엄마. 아이고 우리 딸. 보고 싶었어. 쪽쪽. 아빠와는 다른 돌직구 사랑. 엄마! 나 아빠가 고등어 발라줬다? 내 말에 엄마도 깜짝 놀란다.

“나도 좀 그렇게 발라주지!”

엄마의 핀잔에 또다시 머쓱해진 아빠.

“아니 딸 일하고 와서... 다음에 발라줄게.”

후후. 그래. 오늘 아빠 고등어는 다 내 거야. 이번에는 내가 바른 고등어를 아빠에게 건넨다. 아빠도 먹어.


"근데 너 밥을 왜 이렇게 안 먹었니?”

엄마 나 잘 먹고 있어. 응응. 찌개 맛있어. 인사하냐고 말 못 한 거야. 어어. 그 김치도 먹었어. 레퍼토리도 항상 똑같은 익숙한 잔소리. 괜찮아. 원래 엄마 밥은 잔소리에 비벼먹는 거야. 먹방 유튜버에 빙의하여 맛깔나게 밥을 먹는다. 차려준 이에게 전하는 최고의 찬사. 툭. 조용히 리필되는 고등어. 아빠의 마음도 포개져 놓인다.

“너무 힘들면 억지로 안 참아도 돼. 설마 아빠가 너 굶기겠냐.”

“아빠 그러면 안 되지.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악물고 버티라고 그래야지. 여자한테 그만한 직장이 어딨냐고. 다들 그러고 사니까 꾹 참으라고. 이상한 아빠네. 진짜.”

장난스러운 내 투덜거림에 호탕하게 웃는 아빠. 어이없어. 자기는 그렇게 안 살았으면서. 아니. 못 살아봤으면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던 부모. 평생 그 눈길 한 번을 위해 혼자 아등바등 사랑을 애써왔던 그는 그 답 없는 기다림을 대물림하지 않았다. 자신은 감히 바라본 적 없는 온전한 관심. 헌신적인 지원. 하지만 그의 보살핌은 어딘지 모르게 삐그덕거렸고 엉성하니 서툰 구석이 있었다.

외할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기다 못해 넘쳐흐르는 엄마와 달리 사랑받은 기억이 귀했던 아빠는 나를 키워보고서야 사랑하는 법을 배운 걸까. 동생에 이르러서야 제법 능숙해진 그 표현방식에 조금 섭섭했던 적도 있지만 아빠의 사랑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베이비부머스럽게 묵직한 그 입에 사랑이 오르내리는 일은 드물었으나 나를 바라보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오롯한 눈빛을 쬐고 자란 나는 누군가의 근거없는 미움과 비난에 잡아먹히지 않고 여지껏 안녕히 살아남았다. 덕분일까. 나에게는 그와 같은 구김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보란 듯이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는 내 나이에 참 많은 걸 이뤄냈지만 난 나 하나 먹여 살리느라 숨통이 턱턱 막힌다. 주변에서 말하는 보통사람. 턱걸이로 오른 계단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가 아슬아슬 버겁다. 결국 가끔씩 용돈으로 자식 도리를 퉁치면서 이 시국에 책임을 돌리곤 해. 저 나이가 되도록 당연스럽게 출근하는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미안해해야 할지. 울컥 목이 메여오지만 다 큰 딸이 눈물을 보일 수는 없으니 밥 한술을 가득 떠 입안 가득 삼킨다. 쩝쩝. 고등어가 짭짤하네.


“아야!”

눈치 없는 뼈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간다.

"그러게 안 하던 걸 하니까 그렇지!”

엄마가 아빠를 흘겨보다 웃음이 터진다.

“이상하다. 분명 없었는데. 어휴.”


남들이 다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을 다녔던 아빠는 남들은 몇 번을 들어도 모르는 나의 회사를 자랑스러워한다. 지방 출신의 설움을 삼키고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았건만. 본사의 지방이전으로 저 먼 시골에서 먹고살게 된 딸. 지방으로 내려가던 날 내 짐을 옮겨주던 아빠는 베란다로 보이는 국립공원 풍경에 한숨 한 번을 내쉬었다.

“왜? 너무 시골이야?”

내 말에 속마음을 들킨 듯 깜짝 놀라 돌아보던 아빠.

“시골이 뭐 어때서! 공기 맑고 조용하고 좋기만 하구먼. 뷰 좋다 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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