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삶
제로 웨이스트는 가능한 쓰레기나 폐기물을 만들지 않고 재사용하거나 친환경적인 물건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운동이다. 미니멀리즘이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면 제로 웨이스트는 환경의 미니멀리즘과 같다. 내 물 잔이 하나뿐인 미니멀리스트도 종이컵은 사용할 수 있지만 환경을 생각하며 그럴 때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선택이 바로 제로 웨이스트이다.
이 우주에 나라는 존재는 티끌 같은 먼지와도 같다.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환경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터전은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들과 사용하는 공공재임을 알아야 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서도 편하게 쓰던 물티슈, 직장에서 커피를 마실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종이컵,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울 때 사용하던 랩 등을 얼마 전 모두 정리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 하였다.
물티슈 대신 걸레나 행주를 사용하면 물론 처음에는 번거롭다. 하지만 자꾸 사용하다 보면 그 일련의 과정이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된다. 걸레는 사용하고 나면 빨아놔야 한다는 것. 닦고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사용하기 위해 깨끗한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사용한 물건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고 정리하는 것은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를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만드는 대신 재사용하는 나 자신이 좋아서. 물건을 구매하는 기쁨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물건을 다시 재활용하는 내가 좋아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겠다고 텀블러를 사용하다가 가방에 커피를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완전한 밀폐가 불가능하기에 조금이라도 가방을 눕혀지면 그대로 온 물건에 커피가 다 쏟아지곤 했다. 이렇게 물건을 닦고 정리하며 쓰는 에너지가 더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로 웨이스트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제로 웨이스트로 산다는 건 남들이 보기에는 불편하게 사는 삶이다. 돈만 있으면 살기 좋다는 한국에서 굳이 제로 웨이스트를 왜?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걸 하지 않는 삶이 불편해서,라고 대답한다. 걸레는 뒤집고 돌려서 더 많은 부분을 닦으며 좀 더 많은 곳을 청소할 수 있지만 물티슈는 한번 닦으면 버려야 한다. 재사용은 버려지는 것도 없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없다. 그 물건은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생명체는 아니지만 나의 물건에 애착을 갖고 용도를 다할 때까지 아껴 사용하는 삶. 그런 기분이 좋아서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내 삶은 서서히 무소유를 향해 간다. 더 이상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무소유적 삶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이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기다리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삶보다 내가 바라는 건 언제 어디서나 내가 나일 수 있는 삶이다.
인간이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살아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또다시 에너지를 쓰는 방식으로 살다 보면 하루가 피곤할 수밖에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함. 외로움과 허전함보다 사색을 선택하며 사는 삶. 되도록 단정한 공간이 좋아서 그걸 유지하기 위해 청소와 정리를 하다 보면 몸과 정신은 수행자의 상태가 된다.
가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 욕심을 내려놓고 분수를 아는 마음. 그리고 그 안에서 꿈꾸는 인생의 아름다운 꿈들. 소중한 나를 키워가고 아껴가는 삶 또한 소중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