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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비 Aug 03. 2022

보드라운 흙 위 트레비소는 쨍쨍한 여름날의 햇살을 덮고

진짜 쉼에 대하여


 쉬는 건 뭘까. 몇 달 전의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난 '핸드폰 보는 거'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핸드폰을 본다는 행위는 내가 매우 애정 하는, 좋아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돌아온 주말에는 책을 챙겨오면 뭐 하나,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봤고, 방학 때는 마음먹고 공부하겠다 다짐했음에도 끊임없이 핸드폰에 손을 댔다. 그래도 죄책감은 없었다. 나는 '정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주말에는 평일에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로, 방학에는 학기 중에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로, 나도 좀 쉬어야 하니까 핸드폰을 봤다. 


 쉬고 나면 그렇게 행복했다..는 무슨,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본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튜브도 보고, SNS 피드도 구경하고,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을 다 했는데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쉼'이라는 행위로 인해 하루 편히 쉬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날들이 이상하게도 무료하고 따분했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쉬어본 적은 있을까. 근데 진짜 쉰다는 건 뭐지.' 이젠 아무리 생각해도 작디작은 핸드폰 화면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진짜 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내 손보다 작은 이 기계에 내 귀한 하루를 쏟아붓고 있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나의 피 같은 하루, 피 같은 시간이 발전 없이 지나가는 것이 화가 났다.  


 애초에 내가 정말 제대로 쉬어본 적은 있었나 어제를 되돌아봤다. 어릴 적에야 아무 걱정 없었다 치고, 핸드폰을 갖기 전에는 주말 내내 TV 앞에 앉아있었다. 핸드폰을 갖고 나서는 위에서 쓴 그대로의 일상을 보냈다. 할 일이 생기면 정말 열심히 하되, 할 일이 없을 때는 핸드폰만 봤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앞에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시간에 수시로 핸드폰을 꺼내 화면 속 풍경을 감상하였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그런 쉼. 그건 더 이상 쉼이 아니었다.




 진짜 쉼이란 무엇일까. 내가 아직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그 쉼이라는 것. 도대체 그게 뭐길래 이렇게 나를 애타게 만드는지. 그 애타는 나의 마음은 새로운 시도를 반기지 않았던 내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달간 다양한 것들을 해보았다. 전부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카페에도 가보고, 주말에는 동천동의 느티나무 도서관과 우주소년에서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수다도 떨어봤고, 시험이 끝나고는 함께 역전으로 나들이도 갔다. 그리고 이번 방학에는 홍성에서 농사를 배우고 마을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제서야 진짜 쉼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진짜 쉼을 경험한 나의 몸은 단단하지만 부드러웠고, 따스한 나날을 보낸 나의 마음은 그 어떤 허브차보다 따듯하고 말랑했다. 


 쉰다는 것은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누워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만히 앉아 핸드폰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홍성의 하우스 안 트레비소,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깨알보다 작은 씨앗에서 아기 손가락만 한 새싹을 피운 후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비단 쉬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쉬는 와중에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진짜 쉼은 나의 몸과 마음을 더 풍요롭게, 그리고 커지게 한다. 




 보드라운 흙 위 트레비소는 쨍쨍한 여름날의 햇살을 덮고 조금씩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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