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지향 일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고 비거니즘을 지향한다. 건강이나 종교를 이유로 채식을 하기도 하고, 동물권이나 기후 위기를 이유로 비건을 지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동물권이나 기후위기 등을 이유로 -지금은 그것을 이유로 실천하고 있지만- 채식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꽤나 이상한, 그리고 특이한 이유로 비거니즘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지향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의, 그리고 사회의 모순성' 때문이다.
바야흐로 3년 전,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에 설렘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 2층을 탐방했다. 그러다 어떤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도발적이면서도 강렬한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의 표지를 보고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딱히 관심이 있는 분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강렬한 제목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당시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단지 가끔씩 우리가 먹는 동물들이 '불쌍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주제가 내 앞에 탁 던져지자 내 안에 많은 물음들이 솟구쳤다. '소나 돼지를 먹는 것은 아무도 신경 안쓰면서 개를 먹는다고 하면 왜 다들 야만인 취급할까?' '왜 우리는 고양이나 강아지는 예뻐하면서 소, 돼지, 닭은 신경도 쓰지 않을까? 같은 동물 아닌가.' ''너무 모순적인 것 아닐까.' 같은 동물이면서 어떠한 부류는 예뻐하고, 다른 부류는 당연하게도 죽이고, 또 어떤 부류는 어떻게든 보존 시키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마음대로 동물을 '급'으로 나눈 것 같았다.
사회는, 공동체는, 그리고 개인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채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인지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모순적인 행동과 생각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있어 나 자신만큼은 솔직하고, 당당하고 싶었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모순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수단으로서 '채식'을 선택했다. 적어도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햄스터나 구피처럼 다른 비인간 동물 또한 '먹지 않으면' 그리고 '죽이지 않으면' 그 모순성이 간단하게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판단의 나의 생각이다. 누군가는 이것 또한 모순적인 부분이 있지 않겠노라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일단 '채식'은 내가 선택한 최선의 방안이었다.)
'채식하는 삶' '죽이지 않는 삶'. 나는 이러한 삶을 '동물이 안타까워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등의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이유만으로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내 안의 모순성을 견디지 못하여 그랬다. 물론 그 안에는 비도덕적으로, 그리고 비인간적으로 도축되는 비인간 동물에 대한 연민감이라는 감정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강아지랑 고양이는 예뻐하고 소랑 돼지는 먹는게 이상해서요. 저 자신이 같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비건을 지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