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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ong Lee May 26. 2024

골드코스트

2024년, 2005년 , 2016년 5월의 회고록

내가 처음 해외를 접한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9년 전, 13살 때였다. 당시 다니던 영어학원 원장님께서 호주에서 두 달간 열리는 국제 학교 캠프에 가보는 게 어떠냐는 추천을 하셨고, 부모님은 고심 끝에 나를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꽤나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도 무리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로 나를 타지로 보내시나 보다.' 생각에 처음엔 덥석 걱정부터 됐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떨어져 타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마음속에 일었다. 그나마 하나 위로가 되는 일이라면 학원 친구들과 함께 떠난다는 사실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게 떠난 호주에서 나는 두 달간 티나와 세바스찬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름다운 마을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이 빛나는, 이름 그대로의 모습을 한 골드코스트에서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가운데 큰 방사형 도로를 중심으로 이층짜리 단독 주택들이 퍼져있다기보다는 웅크려 있는 작은 곳이었다. 옆의 집들보다는 낮은, 붉은 문을 열자마자 티나와 세바스찬이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금발의 외국인들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자 나는 다짜고짜 'Hello, my name is Alex. Nice to meet you'라며 다소 일방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뒤에 서 있는 원장 선생님에게 이 어색한 상황을 맡기고, 안쪽 현관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뛰어갔다. 두 마리 모두 희고 곱슬한 머리를 가진 아이들이었지만, 한 마리는 등이 내 허리까지 올 정도로 컸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내가 매고 있는 책가방 보다도 작았다. 큰 강아지는 토토, 작은 강아지는 클레오라고 했다.

 

두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돌려 집 앞 정원을 둘러봤다. 티나와 세바스찬의 집도 마찬가지로 이층짜리 단독 주택이었지만 주변 주택들과는 다르게 수영장이 없었다.

"너희 집엔 왜 수영장이 없어?"

어느새 학원 원장님이 떠난 문 뒤에서 나와 강아지를 웃으며 바라보는 외국인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건넨 질문이었다.

"두 달 뒤면 뉴질랜드로 떠날 거라서 큰 집은 부담스러워. 수영장에서 놀고 싶으면 우리 엄마 집으로 갈래? 바로 옆 집이야. 거긴 엄청 큰 수영장이 있거든! 우선 이 짐들부터 풀고 수영장에 놀러 가자"


내가 놀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푸근하면서도 친절한 미소에 긴장이 풀렸다. 그러곤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몇 살이야? 나는 스물세 살이고, 세바스챤은 나보다 한 살 많아 - 너희는 그럼 결혼한 거야? 아니 우린 동거하고 있어.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이야 - 아 그럼 그냥 사귀는 거야? 아니 그보단 진지한 관계야 우린 아이도 생각하고 있어 - 그럼 너희는 호주 사람이야? 아니 우린 영국 사람이야. - 해외에서 일을 할 수 있어? 나는 여기서 홈스테이 일을 하고 있고, 세바스찬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해.

우와...


놀라는 내가 더 놀랍다는 듯이 티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날 아이를 낳기 위해서 꼭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꼭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그날부터 시작된 티나, 세바스찬과의 두 달간 동거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 중 하나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집 앞 테라스에서 구워 먹은 프라이와 베이컨, 그리고 너무 커서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잘라먹었던 직사각형 모양의 큼직한 시리얼, 티나가 점심 도시락으로 싸준 튜나 샌드위치와 방울토마토, 세바스찬이 해준 한식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 입만 달라고 보채던 클레오가 생각난다. 또 그 옆에서 배를 드러 내고 긁어 달라며 꼬리를 흔들던 토토가 생각난다. 그랬던 토토가 무섭게 짖었던 천둥 번개 치던 날도, 거실 TV로 마이클 잭슨 콘서트 DVD를 보며 유일하게 가사를 외우는 팝송, Heal the World를 셋이서 떼창 했던 날도, 해변에서 상어 표지판을 보고는 겁에 질려 서핑을 포기하고 돌아왔던 날도, 신발을 잃어버려 맨발로 보도 블록을 걸으며 느꼈던 뜨거운 햇살도, 티나 부모님 수영장에서 함께 본 밤하늘도, 별도, 가끔 생각난다.


두 달의 체류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티나에게 메일 주소를 받았다. 매주,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메일을 쓰기로 약속했다. 뉴질랜드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인사도 건넸다. 언젠가 아이가 생긴다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애틋한 이별을 뒤로하고 공항에 도착한 날, 두 달 새 새까맣게 타서 돌아온 나를 본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누나도 나를 보자마자 웃을 때 이빨밖에 안 보인다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부엌에 계시던 할머니는 나를 놀리는 대신 얼른 와서 저녁 먹으라고 하셨다. 뭔 놈의 영어 공부를 시킨다고 조막만 한 애를 두 달 동안 해외로 보내냐며 잔소리도 얹으셨다.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 지금은 그 식탁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된장찌개와 갈치조림, 그리고 두부조림이었을 거다. 내가 '오늘 저녁은 맛있는 게 먹고 싶다'라고 하면, 바로 장을 보러 나가셔서 사 오시는 메뉴들이었다.


"그래 가들이 음식은 좀 하드나? 그래도 아가 삐쩍 곯진 않았네. 굶진 않았는가베. 안사람이 잘 챙깄나 보네."

"아니 그분 말고 남자친구 세바스찬이라는 사람이 음식을 엄청 잘해! 막 밥으로도 요리해 주고 그랬어. 근데 그 사람이 또 남편은 아니다? 호주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한대." 난 이때다 싶어 허겁지겁 호주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거기 해변가에는 상어가 나온다?"

"아이고 어머님, 원장님한테 들어보니까 여기 홈스테이 주인들이 엄청 친절하답디다. 요리도 잘하고예, 학교 숙제도 매일 챙겨줬답디더" 내 이야기를 다급하게 중간에 끊고 엄마가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래? 고마운 사람들이네"

"그래도 나중엔 할머니 음식이 너무 그리웠어!" 조금은 실망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를 보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티나에게 메일을 썼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어제 저녁에는 할머니 때문에 말은 못 했지만 사실은 세바스찬의 음식이 조금은 그리웠다고도 말했다. 편지 말미에 그립다, 고맙다, 언젠간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을 쓰면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컴퓨터 앞에 엎드려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할머니는 깜짝 놀라서 달려오셨다.

"호주로 너무 돌아가고 싶어."

알 수 없는 언어로 가득 찬 모니터를 보신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아이고, 아이고'만 반복하시면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할머니 품에서 나는 한참 동안을 더 울었다.


그렇게 울고도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방에 틀어박혀서 저녁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도, 엄마도 나를 달래는 것을 포기한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한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렸다.

"야 이재성, 걔들 집이 어디랬지?" 특유의 무뚝뚝한 사투리로 아빠가 문에 대고 소리쳤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티나와 살았던 이층짜리 집과 수영장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나와봐, 티나 집 찾아보자." 아빠가 문을 열고는 웃으며 말하셨다.

못 이기는 척, 입을 삐쭉 내밀고 거실로 나오자 모니터에는 큰 지구본이 띄워져 있었다. 아빠는 이게 지구 어디든 들여다볼 수 있는 지도라고 했다. 어느새 나는 의자를 가져와 아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빠는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금세 우리 집을 찾아내셨다.

"여기 봐봐, 이거 우리 집이잖아."

"와 진짜네?"

금세 신이 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굴려 골드코스트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동네를 찾았다. 붉은 문의 티나 집, 그리고 그 옆집 수영장도 보였다. 다시 줌 아웃, 이번엔 내가 다녔던 국제 학교, 다시, 이번엔 서핑 갔던 해변, 다시...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 손은, 그리고 내 입은 쉬지않고 그날들을 추억했다.




그때부터 3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티나와 자주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메일을 주고받는 주기는 점점 뜸해졌다. 매주, 매달 보내던 메일은 가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소식을 전하는 정도로 빈도가 줄었다. 요즘도 티나한테 자주 연락하냐는 엄마의 말에 그게 언제 적 일이냐며 짜증 낸 적도 있다. 그렇게 내 메일함에서 티나와의 메일은 스팸 메일과 내 일상에 밀려 밑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다시 티나가 떠올랐던 건, 24살 5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 자유 여행을 떠났던 순간이었다. 북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10년 전 티나에게 메일에 적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다음에 내가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뉴질랜드로 가서 너한테 연락할게" 그 다짐을 떠올리며,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켜서 티나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그 집 앞 거리 이름도, 익숙했던 붉은 문과 수영장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골드코스트 주변에서 길을 잃은 내 손가락이 헤매는 사이, 이륙하는 비행기의 인터넷 통신은 끊겼고, 나는 북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8년 후 어제, 7월 뉴질랜드 해외 출장 계획이 결정됐다. 출장 계획이 결정되고 랭커스터 숙소에 도착한 나는 제일 먼저 네이버 메일을 켰다. '모든 편지함'에 들어가 검색란에 tina를 검색했다. 검색창엔 아무런 내용이 뜨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 메일이 2018년이었다. '그땐 Daum 메일을 썼나?' 하지만 Daum 메일함에도 마찬가지로 그 어떤 메일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지런히 마우스 휠을 내려 도착한 메일함 가장 아래에는 2014년 메일이 마지막이었다. '기계공학부 13학번 이재성입니다. 공업수학 1 과제 제출합니다.'

북유럽으로 떠나던 그날에 구글맵이 아닌 메일함을 뒤져봤다면, 티나와의 메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때 나는 왜 대충 지도만 보고 말았을까 나를 자책하며, 내 손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메일창을 내리고 바로 구글맵을 켰다. 이번엔 다르지않을까?잠시후 지구가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목적지는 골드코스트, 그리고 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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