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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ong Lee Apr 27. 2024

내가 미뤄왔던 일들

2024년 4월 회고록

    피곤하다,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온 일들이 참 많다. '내년엔 다르게 살아야지'라는 다짐만 몇 년째, 2024년이 되었고, '다음 달엔 꼭 해야지'만 벌써 몇 달째, 이젠 곧 5월이다. 나는 확실히 천성이 게으르다.

    많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미루지 않는 일들도 있다. 대부분 그런 일들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와 엮여있는 일들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필연적으로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 일들. 그런 일들을 처리할 때는 파워 J가 되어서 날짜, 시간에 집착하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불안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K-눈치를 과하게 장착한 탓인가 보다.

    반대로 내가 미루는 일들은 온전히 나와 관련된 일들이다. 지난 글에서 쓴 것처럼 내 건강을 돌보는 일, 자기 계발, 집 정리, 돈 관리와 같은 것들. (매주 브런치에 글 한편 쓰기 같은...)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데, 슬프게도 나는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시간들이 모여서 이루는 인생인데, 나는 무엇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냐는 반성은 자주 한다.


    천성은 게으르지만, 막상 거창하게 시작했을 때 관성에 이끌려가는 데는 자신이 있다. 경험적으로 나의 이런 성향을 알아서 자주 급발진을 하곤 한다. '일을 벌여 놓으면 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대책 없는 마인드로 나를 몰아붙인다. 그렇게 이번 달을 시작하며 다섯 가지 일들을 벌려 놓았고, 나름 착실히 이끌려 가면서 기록을 남겼다.



1. 다이어트 (Feat. 핫바디 크루)


   4월을 시작하며 다이어트와 운동을 제대로 시작해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는 나의 동료를 찾아 떠났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은 넘쳐나기에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그 글을 쓴 날 저녁 약속을 함께한 친구였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뜨겁게 달아오른 열정 덕분에 우리의 목표는 처음과 달리 꽤나 상향 조정됐다. 4회 기본, 1회당 벌금 5천 원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쌓인 돈 들고, 더운 날에 해변가에 가서 웃통 까고(?) 맛있는 거나 먹자고 했다. 그래서 크루 이름은 핫바디 크루.


    현재 4주 차. 만으로 3주가 지났는데 성적은 나쁘지 않다. 출장과 회식이 있었던 한 주를 제외하면 4회 출근 도장을 모두 찍었다. 불참 벌금은 현재 만원. 점심은 평소대로 먹고 저녁은 단백질 위주 식단을 짜서 먹고 있는데, 생각보다 꽤 효과가 있었는지 2kg이 빠졌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이번에 운동을 시작하고 허리 통증이 많이 약해졌다. 웨이트를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나의 또 다른 핫바디 크루원은 이틀 참석 후에 장렬히 전사했다. 그렇게 다음 달 나는 맛있는 저녁 한 끼를 얻어먹게 되었다. 최고의 수확이다.



2. 주식 계좌 리밸런싱



    사람은 투자를 해야만 진정한 본인의 간의 크기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21년도에 주식을 시작하면서 나의 간의 크기가 매우 작음을 알게 되었다. 소심하게 나의 재산을 쪼개고 쪼개서 다섯 바구니, 열 바구니에 나눠 담곤 했다. 추세가 꺾일 때를 노리는 야심한 배팅이나, 레버리지를 당겨서 투자하는 야수의 심장은 나에게 없었다. 그렇다고 단타를 치려니 귀찮기도 하고 애초에  나름 고집과 지조는 있어서 한번 손을 잡은 기업에 대한 믿음을 쉬이 저버리진 않는다. (나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주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사실상 계좌 방치를 했다. 내 투자 철학에 의한 대응이라기보다는 '그냥 신경 쓰기 귀찮아서 가만히 있었다'에 가깝다. 그 사이 현금 비중도 많이 깨졌고, 장도 많이 안 좋아졌다. 리밸런싱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참에 계좌를 싹 갈았다. 미국 주식은 기술주를 팔고 고배당주들을 좀 많이 샀다. 엔화도 다시 샀다. 국내 주식들은 비중을 줄였다. 다 팔아치워버리고 싶었지만, (-)가 많아서 차마 다 팔지는 못했다.



3. 카메라 수업


    난 사진을 좋아한다. 군대 정훈병 시절에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 너무 행복했어서, 2년 전에 큰맘 먹고 사고 싶던 카메라를 샀었다. 평소 드라이브나 여행을 갈 때 꼭 챙겨가는 나의 보물 1호가 되었다. 그동안은 나름대로 찍고 싶은 구도를 계속 찾아보고, 보정도 많이 해보면서 실력이 늘었던 것 같았는데, 요즘은 확실히 정체된 기분이 든다. 찍는 구도나 보정 방식에도 버릇이 생겨서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너무 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찍는 것보다 인스타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확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들을 보면서 '이건 어떻게 찍은 거지?', '어떻게 보정을 한 걸까?', '나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던 와중에 평소 좋아하는 작가님이 최근 인물 촬영, 보정 관련 무려 8시간짜리 원데이 클래스를 여러 개 여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다닥 달려가서 마감 전에 포토샵 강의를 신청을 했었는데! 하필 신청 다음 날, 급한 출장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하루 만에 결제 취소를 했다. 아쉽지만 이번달 계획했던 일 중에서 실패로 돌아간 일이 되었다. 6월에도 강의가 열렸으면...



4. 영어 시험


    처음에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이제 나의 인생과 영어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1~2년 먼저 회사를 다니신 선배님 왈, 해외 업체보다는 국내 1차, 2차 벤더와 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굳이 영어 쓸 일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입사할 때 영어를 많이 안 보는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인의 마법의 단어 부바부, 팀바팀. 막상 들어온 팀은 1년에 두 번은 해외 출장을 다녀야 하는 곳이었고, 미국, 인도 현지 직원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사실 일적인 소통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일례로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미국 법인 직원이 나에게 'No go'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You can't go there'이라고 하면 될 것을, 내가 못 알아들을까 봐 손가락 바디 랭귀지와 쉬운 단어를 (문법을 파괴하며) 조합해서 알려준 것이었다. 이건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저 친구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시험으로 목표를 적은 이유는 앞서 적은 30년 인생의 빅데이터와 관련이 있다.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면 1달에 1시간도 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시험 날짜를 픽스해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사내에 영어 스피킹 시험이 있다. 공부 기간 따위 고민하지 않고 5월, 내 스케줄이 비어 있는 날짜에 그냥 신청해 버렸다. 한 번 시험을 보면 인사 기록에 시험 점수가 쭉 남는다고 한다.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네가 안 하고 배겨?'



5. 옷장 정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옷장을 갈아엎는다. 모두가 그렇듯 오랜 옷들은 솎아내서 버리고, 계절에 안 맞는 옷들은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다만 나의 조금 특이한 점은 안 입을 옷이라고 판단되면 언제 샀든지 고민 없이 버린다(혹은 당근에 팔아버린다)는 점에 있다. '당장 내일 약속을 나간다고 했을 옷을 입고 나갈 수 있는가'가 기준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버릴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옷을 좋아해서도, 옷이 너무 많아서도 아니다. 슬프게도 방이 너좁다. 방에 공간이 없어서 물건을 버려야 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나. 100년 치를 아껴집값보단 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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