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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Jan 10. 2024

입으로 찾아내는 비문

제3장 밥값 하는 번역가의 생존기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에도 당연히 실수가 없어야 하겠지만,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었을 때 주술 관계가 안 맞거나 틀린 글자를 보면 얼굴을 찌푸렸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글자만 보면 (내용 이해는 둘째 치고) 일단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만) 중독인 사람이라서, 잘 읽히지 않는 글을 보면 어떻게 수정하면 더 부드럽게 읽힐까를 자주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번역가로서 하는 일들이 내 적성에 잘 맞았다. 짧은 문장도 여러 번 읽어 보거나, 그 문장에 쓰이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래서인지 번역물을 납품하면, 번역문이 매끄러워서 좋다는 평가를 여러 번 받았다. 처음에는 번역을 위주로 하다가 나중에는 리뷰 작업까지 맡게 된 것도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다.


리뷰 작업을 해보면 문장을 불필요하게 길게 쓰는 경우, 해석이 어려운 단어를 생략하거나 모호하게 번역한 경우, 오탈자 등의 오류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군더더기가 많은 표현들로 문장을 길게 쓰는 경우는 그래도 번역가로서 뭔가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괜찮았다. 하지만 해석상 중요한 단어를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단어로 번역하거나 아예 생략한 번역문, 또는 사소한 오탈자가 가득한 번역물을 보면 불쾌했다. 마지막에 한 번만 더 읽어봤어도 이런 실수 가득한 문장을 쓰지는 않았을 텐데 싶었다.


맞춤법에 맞게 핵심 내용이 빠지지 않은 의미상 충분한 문장을 썼다면 시간이 되는 한 자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자주 읽어볼수록 문장은 더 매끄러워진다. 똑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는 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이때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 내서 읽어보면 더 크게 각인돼서 이상한 부분이 더 잘 보인다. 나는 보통 번역하고 나면 입으로 조용히 읽어 본다. 눈으로만 읽으면 속도는 빠르지만 꼼꼼하게 머릿속으로 검토해 내기가 어렵다. 어렵고 복잡한 문장을 보면 ‘힘드니까 빨리 읽고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시선의 흐름에도 반영되어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3초간은 읽어야 할 문장을 0.5초 만에 읽고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다며 넘어가는 식이다. 그래서 나는 눈으로만 읽는 행위를 지양하는 편이다. 가급적 작게라도 좋으니, 소리를 내며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의 어감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려고 한다.  


나는 빨리 눈앞의 일을 끝내고 놀고 싶은 내면의 나를 잘 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제출해.’라고 유혹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입으로 내뱉는다. 내면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진짜 만족하는 번역문을 완성할 때까지.


몰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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