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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Feb 21. 2024

ChatGPT, 우리 친하게 지내자

제5장 번역가의 공부

ChatGPT가 등장하면서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가 뽑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ChatGPT를 유료로 정기 결제 서비스를 신청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쓴다. 간단한 맛집을 검색하거나 무의미한 킬링타임용 대화부터 시작해서 언어를 공부할 때도 사용한다. 특히 내가 쓴 문장이 문법에 맞는지 알고 싶을 때는 ChatGPT에 물어본다. 그러면 뭐가 틀렸고, 어떤 표현이 더 좋을지 그 근거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매달 유료로 내는 2만 2천 원가량의 구독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럼, 번역 일을 할 때도 ChatGPT를 사용할까? 내 대답은 ‘딱히 그렇지는 않다’이다. 


사실 처음에 ChatGPT가 나왔을 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조금 더 똑똑한 번역기가 나왔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구글이나 파파고 번역기 성능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언론 기사나 유튜브 영상으로 접한 ChatGPT의 능력은 번역기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듯했다. ‘번역가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겠는데?’하고 불현듯 걱정이 들 무렵, ChatGPT 무료 버전을 시험 삼아 사용해 보았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어설픈 부분이 생각보다 많긴 했지만, 대답하는 문장도 매끄러웠고 나의 두서없는 질문의 맥도 잘 짚어서 최대한 그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해주었다. 왠지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곧바로 유료로 결제하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뒤늦게 얻은 내 밥줄이 끊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섭다고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ChatGPT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 비서처럼 똑똑하게 사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요청받은 원고가 있어서 그 내용을 ChatGPT에 입력한 후에 번역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대화창에는 벌써 번역된 텍스트가 길게 적혀 있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완성도 부분에서 100% 만족스럽지 않았다. 눈으로 쓱 읽어보면 큰 이상이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번역기로 돌린 것 같다’는 느낌이 나는 AI 말투의 문장이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한 문장에서는, 어투를 일관성 있게 만들지 못했는지 ‘저희가’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에 ‘우리가’라고 써 놓기도 했다. 문장의 통일성과 정확도를 높이고자 몇 가지 조건을 걸어서 수정 요청을 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깔끔하게 수정되지 않았다. 조건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수록 번역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하지만 필요한 조건을 한번에 여러 개 제시했을 때 그 모든 조건을 조화롭게 반영해서 결과물을 내주지는 않았다. 차라리 번거로워도 조건을 하나 제시하고, 결과물을 확인한 후 다시 추가 조건을 말하는 편이 나았다. 


조건이 더해질수록 번역문의 완성도는 조금 높아지는 듯했지만 요구하지도 않은 사항을 ChatGPT가 마음대로 반영해서 결과를 내는 바람에 예상과 전혀 다른 번역문이 나오기도 했다. ChatGPT를 다루고 나니 빠르고 정확한 듯 보이지만 아직은 꼼꼼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AI가 번역한 내용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해서 납품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손으로 어색한 말투를 교정하지 않으면 ‘이거 번역기 돌렸나?’하고 의심할 만한 작은 흠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몇 차례 ChatGPT를 써본 후, 혼자서 번역했을 때와 ChatGPT에 번역을 맡기고 여러 번 수정을 했을 때의 노동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초벌 번역의 수고를 덜어주는 효과는 있긴 했지만,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니 왠지 더 신경 써서) 초벌된 내용을 수정하다 보면 원고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ChatGPT를 쓰지 않았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 게다가 나는 ChatGPT가 내 요청을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써주는 작업이 은근히 귀찮았다. 놀라울 만큼 뛰어난 녀석임은 틀림없지만, 인간의 언어 능력을 완벽하게 대체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럼, 앞으로 ChatGPT를 멀리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ChatGPT는 앞으로도 충분히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큰 녀석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내 기대가 컸던 것일 뿐. 영어처럼 데이터가 많이 쌓인 언어 쪽에서는 정확도가 꽤 높다고 들었는데, 인도네시아어는 아직 그만큼의 데이터가 없어서인지 눈에 띄는 몇몇 어색한 답변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당장에 내 밥줄을 끊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위협적인 존재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더 고성능의 ChatGPT나 번역기가 나온다고 한들 기계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가 100%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언어에는 감정이 담겨 있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기계가 미세한 감정까지 모두 이해해서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감정의 영역을 공식처럼 외워서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것도 없지 않을까. 마치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ChatGPT와 일을 하는 대신, 내 인도네시아어 공부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모르는 표현이 나오거나 작문 연습을 한 후에 한번 봐달라고 요청한다. 이 친구의 장점은 본인도 잘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는 점이다.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간혹 본인이 틀리고도 틀린 줄 몰랐다가 ‘너 이거 틀린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그제야 ‘아, 죄송합니다’하고 곧바로 사과도 한다. 은근히 실수가 잦지만, 본인이 옳다고 뻔뻔하게 우기지 않으니 귀엽다.


ChatGPT에서 완벽하게 얻어내지 못한 답은 현지인 친구 Mia에게 물어봐서 해결한다. ChatGPT가 나온 이후 Mia에게 물어볼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주 연락하게 된다. 최신 인공지능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마냥 걱정하기보다, 오늘을 즐기는 삶이 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확률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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