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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Feb 11. 2023

객쩍은 이야기

웨이팅 리스트에 음주가무 예약

그랬으면 하는 안타까운 생명이 있을 뿐, 윤회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할 이야기는 객쩍은 농담인 셈이다.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리란 보장은 없다. if, 랜덤으로 얻어걸린다면 그땐 기분 좋을 만큼 딱 그 정도, 술을 즐길 수 있는 몸을 받고 싶다. 다음 생에 바람이 고작 그거야? 라고 해도, 내 대답은 딱히 달라질 게 없다.


누군가 주량이...라고 운을 뗄 때면, 사전적인 의미보다도 술기운이 먼저 느껴지는 게 혹시 주당인가? 앞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가 됐든 주량이란 말을 갖다 붙이려면 적어도 한 병쯤은 돼야, 덜 민망할 텐데 말이다. 맥주 355ml 캔 하나, 것도 다 비우기가 어렵다. 고작 반 캔, 이마저도 다음 날 세상 괴로운 두통을 담보로 마셔야 할 정도니 내가 떠올리는 주량이란 이미지에는 한참 부족한 양이다. 그 술을 마신다는 건, 그 통증을 감수하겠다는 뜻이고 또 그 시간에 맘을 뒀단 의미이기도 하다. 맥주 반 캔에 그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우스워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그 정도로 두통의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하긴 뭐어 그런 결심이나 이유 없이도 술이 땅기는 날이 있기도 하다. 엄밀히 술이 당긴다기보다는 소품처럼 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 탄산수만으로는 알코올의 기운을 채울 수 없어서, 그런 날엔 맛과 향을 은미하듯 천천히 눈으로 마시기도 한다.


상황이나 분위기 때문에 두통을 감수하는 건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캔 묶음 하나를 사놓으면 1년을 넘기는 게 예삿일이다. 와인은 코르크 마개를 제거한 후, 처음 한 두 번 마시고는 대부분 고기를 구울 때나 잴 때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월 묵은 와인을 그리 쓸 게 아닌데...


그나마 부패하지 않는다는 게 어딘가. 음식 함부로 버리는 거 아니고 해서 큰맘 먹고 골방에서 1년 넘게 푸~욱 숙성된 캔 하나를 꺼내 왔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닭 날개와 맥주 캔 하나, 오늘 영화관의 상차림이다. 살짝 얼린 투명 잔에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거품이 피어오른다. 청량감을 한껏 들이킨다. 으으으~ 몸이 떨린다. 아찔하다. 눈으로 마시고, 닭 날개를 맛나게 뜯었다.


사건이라고는 1도 없는 영화가 난 그렇게 좋더라. 뭐어 특별할 거 없는 내 삶과 닮은 듯하여, 거짓부렁 같지 않거든.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영화, 오늘은 그중에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을 골랐다. 고바야시 사토미 배우와 모타이 마사코 배우는 어쩜 저리 찰떡일까. 그들의 일상도 저리 고즈넉하고 단정할까? 궁금하다. 그 둘이 함께 출연한 <카모네 식당>과 <안경>은 보고 또 봐도 좋더라. 이렇게 심심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매번 시간 들여 보는 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난 좋은 걸~


밋밋한 영화 취향은 내 평안을 돕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밍밍한 삶은 다시 재생하고 싶지는 않다. 맹숭맹숭한 싱거운 생은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충분했다. 지나치게 제정신으로 줄 맞춰 걷느라 혹여라도 삐끗할까, 벗어날까 온통 그것에만 신경 쓰느라 온 생을 다 써버렸다. 상징적인 의미이지만, 그 길 위에서 그 무엇에도 제대로 미쳐본 적도 모험해 본 적도 없다. 과연 누가 믿겠나. 여기까지 오는 중에 한 번도 취해 본 적 없다면 말이다. 지나치게 제정신인 게 너의 문제라고 종종 타박하는 찐친의 말을 웃어넘기지만, 사실 아픈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생에 미련 떨지 않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이들을 보면 사각사각 소리 나는 배를 한입 베어 문 듯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의 산뜻함이 보기 좋다 한들, 평생 이렇게 학습된 모양새인데 경직된 몸을 바꾸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유연해지는 것도 아니고, 각자 다르게 생겨먹은 생임을 확인하는 것일 뿐, 그뿐이다.


그저 변할 수 있는 시간 동안 가랑비에 옷이 젖듯 마음자리를 따라 몸도 옮겨 앉을 수 있도록 달래는 것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음주가무는 영 틀렸지 싶다. 전생에 음주가무에 취해 흥청망청 살았던 고주망태였던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번 생이 이리 무미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참으로 극단의 윤회가 아닌가. 담 생은 그 어디 중간쯤이면 좋으련만, 이 역시 농이다. 눈으로 취해하는 넝~담^^


주말이다. 활기차게 보내셔라.




#다음생이있다면 #주량 #알콜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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