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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un 17. 2023

나쁜 일이라고 다 나쁘지만 않아

과제와 기말 테스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다.  운전하다가 길을 터 주거나 부모님의 보호자로만 동행했었지, 내가 119 차량 안에 환자가 줄은.  살다 보면 남의 일만 같았던 일이 내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잊지 말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난데없이 왜? 바쁜 아침 화분 정리를 굳이 해놓고 나가고 싶었는지, 그날의 뜬금없는 결정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꼭 일어나고 지나가야 할 일이었나 생각될 뿐. 이른 봄부터 신경이 쓰이던 꽤 큰 화분이 현관 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눈에 거슬렸고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뿌리를 뽑는 과정에서 화분이 깨졌고, 그 날카로운 조각이 발의 아치 바로 윗부분으로 파고 들어갔다. 텃밭용 장화라도 신었더라면 그날의 사고는 피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역시나 뒤늦은 후회다.



피는 말해 뭐해.  놀라운 것은 출혈이 아니라. 멘탈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무척이나 침착하고 이성적인(?) 수순으로 움직였다. 일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치 쭉 해왔던 루틴처럼 그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 나를, 또 다른 내가 한쪽 구석에서 체크라도 하는 듯 교관처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으으 ;;;  아니 그게 뭐가 됐든 여하튼 피부가 갈라지고 그 틈으로 피가, 드라마 사건 현장처럼 믿기지 않을 만큼 드라마틱하게 흘렀다.  출혈부터 먼저 손써야 했다.  거즈를 찾아서 상처 부위에 뭉텅이로 덮고는 일반 의료용 테이프로는 어림없어서 급한 대로 박스용 테이프로 발을 칭칭 휘감고는 119에 도움을 청했다. 보호자가 나뿐이라서, 처음 생각난 곳이 119였다. 역시 난 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 ,,, 은 무쓰은, 증상과 주소를 말하는데 성대를 단단히 부여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거즈와 테이프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니며 흘린 핏물이, 움직인 동선을 따라 여기저기... 그제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이동 중에 119 구조 대원은 박스용 테이프를 뜯어내고 응급치료를 했다. 피하조직이 보이는 상태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잔여물 확인을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봉합을 했다. 세상에나 마취액이 그렇게 아플 일인가? 마취주사가 너무 아파 또 다른 마취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묻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고,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 슨센님,,,,예..예프게 꿰매 주세,,여."  ㅠㅠ 겁 많은 건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예쁘게 라니,, 자신을 다 안다고 자신하거나 확언해서는 안 되는 1인이 거기에 또 여기에 다. 그때의 나는 다량의  피를 본, 나이도 얼굴도 없는 그저 얼이 빠진 환자였을 뿐, 부끄러움은 애먼 외과의가 감당할 몫이었다.


암튼, 발을 절뚝이면서도 과제와 기말 테스트를 무사히 냈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한  내가 대견하다.


오전에, 봉합했던 발의 실밥을 제거했다.  걷기가 한결 편하다. 3일간은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그래도 상처 깊이가 있어서 발 움직임은 예전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차차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런 사고가 없었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나란 사람에 대해 들여다볼 새로운 경험을 하나 더 갖게 되었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에 주어진 것들과 늘 옆에 있어서 고마움을 몰랐던 친구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였다. 그리고 발 상태도 이만하니 얼마나 또 감사한 일인가. 의사도 신경을 건드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모든 것에 감사하다. 역시나 운이 좋았다.



어떤 말들은, 시대를 건너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닳기는커녕 그 의미가 더 견고해지고는 한다. 경험으로 체화되기까지 하면 '본래'가 되어 힘이 더 강해진다. 당장 알 수는 없어도 세상에 모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는 것처럼 나쁜 일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란 걸 이렇게 또 새기게 된다.


브런치 가족들 주말 잘 보내셔라~ 당신들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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