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조리원 동기 엄마들은 찰떡궁합
의 호흡으로 11년째 모임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직업! 폭넓은 나이 구성!
환상의 조합!
만나기만 하면 웃음 빵빵!~~ ㅋ
터지는 개구쟁이 엄마 들이다.
근데 나는 아빠다.ㅎ
아내는 아이들과 댄스 학원을 함께 다니고
캠핑도 즐기고 뭐든지 같이 한다.
어느 토요일
"여보~~ 애들하고 목욕 간다~"
"수건 챙겨!!~"
"엥? 나도 가나?"
"그럼 자기도 가야지~"
난 서둘러 목욕용품을 가방에 욱여넣고
먼저 주차장에 내려가서 예열을 했다.
신나는 드라이브 음악 도 미리 틀어놓고
존경하는
사모님과 따님을 기다렸다.
승차하는 두 분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아내의 입에서
'흠~'
"음악 좋고~엉덩이 뜨뜻하고 직이네!!~"
"잘했따 송기사!!"
나는 포근한 미소를 띠며 핸들을 돌렸다.
목욕탕으로..
현장에 도착하니 총원 10 명이 벌써 대기 중이었다.
번개처럼 각자 여탕, 남탕으로 투입되었고, 즐거운 시간의 출발이었다.
근데.. 남자는 나 혼자..
다른 아빠들은 선약으로 인해 참석을
못 하였다.
원래 사우나를 좋아하는 나는 냉탕과 온탕
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것이 극락이구나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열탕에 몸을 푸~욱 담그고 실눈을
뜨고 있는 나의 눈에 80대 어르신과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아버지를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에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뜩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억에
순간 코 끝이 시큰 해졌다.
5남매의 막내인 나를 유독 귀여워해 주고
사랑해 주신 아버지
당연히 일요일 목욕탕 은 우리 두 사람 몫이었다.
다른 형제들의 시샘 역시 나의 몫이었고..
35년을 신문기자의 길을 걸으신 아버지는
박학다식하시고 끝없는 배움 을 갈구 하셨다.
그렇게 태산 같던 아버지 가 어느 순간 집을 찾지 못하고 남들과 싸워 보지 못했던 분이
수시로 친구분들과 다투고 분노하셨다.
'치매'
였다.
온 가족은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려고
대학병원을 다니고 온갖 종류의 약을 먹어보았다.
눈물로 보낸 시간이 얼마일까?
증상은 악화되고 주 보호자인 엄마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청력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가족회의 후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끝까지 끝까지 집에서 보살피려 했으나
우린 부족한 인간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전 아버지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부축하고 옷을 벗겨 드리는데
나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눈물이 터져 버렸다.
펑펑 울었다.
아버지.. 아니 '아빠 '라고 부르고 싶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앙상하게 마른 몸은
슬픔 그 자체였다. 운동장 같던 넓은
등은 굽고 총명하게 빛나던 눈빛은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를 못 알아보셨다.'
아버지 등을 밀어 드리며 흐느끼는 음성으로
"아빠!~ 시원하지예?"
"그동안 잘 키워 주셔서 감.. 사.. 합니다.."
나는 말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감사합니다 ~"
하시며 웃어 주셨다.
눈물의 목욕을 마치고 바나나우유를
드리며
"아버지 어릴 때 항상 이거 사주셨잖아요
기억 나시지예?"
"하모 하모 기억나지!"
"우리 강아지~ "
난 눈물 섞인 바나나우유를 마셨다.
너무나 보고 싶은 우리 아빠!
이렇게 나이 들어도 영원히 자랑스러운 우리
송기자님~
다시 한번 등을 밀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