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사과체험(2024. 10. 24)
- 전편 -
작년 이맘때였을 거 같다. 과일을 잘 안 먹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위해 사과를 구독했다고 한다.
"사과구독? 갑자기?"
이미 계란이랑 우유를 매주 배달해서 먹고 있는 나에게 굳이 사과구독은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과일값이 비싸다는 이야기에 아내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을 거고 아마도 인스타에서 떠도는 광고를 보았으리라,
"아니, 원래 여보 과일 좋아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과일 잘 못 먹는 거 같아서, 그리고 아침사과는 황금사과라잖아"
대학 때 자취를 하면서부터 아침을 챙겨 먹지 않은 나로서는 굳이 아침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 회사출근이 7시 30분으로 다른 회사보다 출근이 빠른 관계로 나에게 아침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아내 역시도 3교대 근무 간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신혼 초에 일주일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침을 챙겨주었지만 피곤과 불면증이라는 단어 앞에 무력하게 침대로 쓰러지기를 반복한 지 근 10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와이프의 사과구독은 자신에 대한 면죄부이자 남편의 아침식사를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였을 거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과구독이 현재까지도 쭉 이어져 오고 있다.
10월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면서
"여보, 10월 17일 연차 낼 수 있어?"
"갑자기? 왜? 뭔 일 있어?"
"우리 사과시켜 먹는 농장 있잖아, 그게 양구에 있는데 사과 따기 체험을 한다고 해서 거기 가보려고, 여보도 같이 가자, 갈 수 있지?"
단 둘이 살기는 하지만 우리 집의 분위기 메이커인 아내의 요청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추석 때까지도 무더웠던 이번여름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여름 내내 헐떡이다가 이제야 찾아온 가을문턱, 일종의 보상심리도 작동하였을 거라 생각되었다. 3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운행은 나에게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양구? 그래 가보자! 하루 노가다 뛰고 온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게 10월 17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14일부터 기상예보를 체크하던 우리에게 가을비가 촉촉이 전국을 적신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우앙! 여보 어떡해! 17일 비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여보 연차스케줄 변경 가능해?"
"이미 낸 연차를 어떻게 바꿔?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힘들 거 같아"
"그래도 좀 바꿔봐, 알았지? 지금 공지 왔는데, 17일 비 온다는 예보에 일주일 뒤로 연기되었단 말이야"
"그럼 24일? 에효, 알았어, 한번 상황볼게"
사무실 직원들과 커피를 나누던 중, 나와 동일한 17일 연차를 낸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직원의 경우도 24일로 연차스케줄을 변경한다고 한다.
' 오, 이거 잘하면 나도 같이 업혀갈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이 든 나는 바로 연차계획서를 수정해서 올렸고 나의 우려와는 반대로 별다른 일 없이 바로 결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