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오늘의 미션: 개강이라는 정교한 전쟁

상담 실장의 일기 : 방학이라는 무대 , 그뒤편의 치열한 기록

by 은실장

오늘의 미션


블루카펫 위,


회색모퉁이를 돌아


뭉쳤다 흩어져


미로를 탈출하는 일




어느 회사마다 루틴이 있을 것이다.

바쁜 시기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덜 바쁜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학원에서 방학은 그야말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다

보이는 건 방학의 바쁜 시기겠지만,

사실 보이는 것 훨씬 이전부터

과정을 준비하는 전 단계가 10배 더 바쁘게 흘러간다.


대부분 학원들은 겨울학기 시작 전에는 여러 회차의 학년별 설명회를 개최하여 학원의 우수성을 알리고

신규인원을 모집하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설명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학원에 대한 관심은 물론, 최신 입시 흐름을 파악하거나 주변 친구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목적도 크다.

별 뜻 없이 설명회를 들으러 왔다가도 설명회 내용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프로그램과 실적이 좋다면, 입학고사 신청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신규생 입학과 직결이 된다.

이렇게 단계별 과정을 거쳐야만 학원은 비로소 방학 동안 성황을 이루게 된다.


학원은 사교육으로써 이익집단이기에 이 시기를 잘 보내느냐에 따라 한해의 흥망이 달려있다

실장인 나는 설명회 준비를 위해 출근 시간을 당긴다. 학부모님의 어떤 질문에도 명확히 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내용과 수강료를 미리 꼼꼼하게 숙지해 둔다. 학원의 첫인상인 청결관리와 각종 홍보물 부착 또한 나의 몫이다.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인 건 분명하다. 학원의 특성이 체득이 되어 있어 이런 과정 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설명회를 듣고 한 어머님이 주 5일 아침 10시 나오는 일정으로 수강을 신청하였다.

학생의 의견인지, 어머님의 의견인지를 물어보았더니 어머님 의견이라고 하셨다.

그동안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중도 포기한 학생들의 사례를 먼저 들려드렸다. 그리고 아이가 수업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해 보시도록 시간적 여유를 드렸다.어머님의 목표와 학생의 의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리는 것이 곧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후 주 3일로 변경하여 신청하였고, 어머님께서는 '실장님 말씀대로 하길 잘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방문하시는 분 중 안면이 있는 분은 꼭 기억해 '누구 어머님'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형제가 있다면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해 좋은 대입결과가 나온 졸업생 어머님이 동생을 입학시키고자 설명회를 방문하였다

나는 조금 높은 톤으로 " '우리 누구누구' 합격 축하드려요 어머님!" 하고 인사를 드리니 어머님도 우쭐해하셨고, 주위 어머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상담실장으로서 쌓아온 노련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겨울방학 전

학원들의 대거 이동이 시작이 된다.

이는 곧 우리 학원을 떠나는 아이들도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 데스크에서 학생들의 이름이나 특이한 점은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려고 애쓴다. 지날 때마다 간식을 쥐어주며 응원을 했던 학생의 퇴원연락이 오면 아쉬운 맘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어디서든 응원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래야 아이가 나중에 다시 돌아올 때 쑥스럽지 않게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해의 마침표이자 상급학년으로의 바통터치 되는 2학기 기말고사는

학생의 성적표인 동시에 강사의 성적표다.

강사들은 그동안 맡았던 학생들의 성적 향상도, 관리 상태, 재원 기간, 학부모 컴플레인 유무 등

결과치에 대하여 성적표가 매겨지고 냉정한 심판을 받는다.

강사에 대한 재계약과 연봉협상도 이때 결정이 된다.


전화벨 소리와 상담 소음이 가득한 이 소란스러운 전쟁터에서도, 내가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시를 적는 건 팽팽한 일상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숨구멍이다. 자, 이제 본격적인 전쟁터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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