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의 학원에 13년째 근무 중이다. 처음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단순히 현실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고3이었던 딸아이는 기숙사 학교에 있었고, 주말에 아이를 만나기까지 견뎌야 했던 혼자만의 불안감과 고독을 밀어내기 위해 나는 '일'이라는 몰입이 필요했다.
아이의 학원 상담을 다닐 때마다 느꼈던 갈증이 나를 움직였다. "내가 상담하는 사람이라면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까?"라는 의문은 곧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되었고, 그것이 내 제2의 인생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경력 단절 여성을 기꺼이 채용해 주신 첫 원장님은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첫 출근 전날, 나는 스스로 대본을 썼다. 미리 받아온 프로그램 안내서를 정독하며 전화 멘트와 목소리 톤까지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인수인계도 없는 공석이었지만, 학부모로서 느꼈던 경험을 대입해 보니 첫 근무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단순 업무에 그치지 않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셔틀 기사님의 손으로 그려진 노선표를 학원 프로그램에 기초자료로 입력하고, 이를 다시 엑셀로 추출해 깔끔한 파일로 만들어냈고, 들쑥날쑥하던 수강료 납입 방식을 체계화했다. 상담 매뉴얼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기도 했고, 구두로만 전해지던 공지사항들도 워드로 정리해 공식적인 가정통신문으로 문서화하였다. 애써 작성하던 파일을 완성직전 통째로 날려보기도 하고, 엑셀 파일 수식을 몰라 밤새 스스로 수식 적용법을 깨우치며, 나는 내가 커가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에서 느꼈던 품격은 벤치마킹을 하여 적용하고 아쉽게 느꼈던 내용들은 답습하지 않도록 개선점을 찾았다. 나와 학부모님과의 신뢰가 곧 학원의 믿음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전체 회의에서 원장님께서 나를 향해 "진정한 A급 강사"라고 칭찬하셨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후 다른 학원을 인수하며 확장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일구어놓은 시스템으로 학원을 빠르게 안정화시켰다. 학원 성장의 기폭제가 된 시점이었다.
연이은 급여 인상과 특별 상여금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내 업무에 대한 인정과 신뢰였다. 그때 나는 이 일이 나의 '천직'임을 깨달았다.
천직이라 믿으며 뜨겁게 달려온 비행은 어느덧 안정 고도에서 평온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창밖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기엔 내 안의 꿈틀거림이 요동을 치고,
첫 엔진을 달구며 이륙을 꿈꾸던 그때의 설렘이 다시금 나를 흔든다. 본업이라는 첫 번째 엔진이 무사히 궤도를 지킬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나는 두 번째 엔진에 불을 지피려 한다. 다시 이륙을 준비하는 지금, 나는 여전히 '슈퍼루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