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수강료가 아이의 성적을 대신해 줄 수 없는 이유

by 은실장
셔틀버스.jpg 학원가에 늘어선 셔틀풍경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 개강으로 학원가는 다시 분주해진다. 방학 동안의 성적을 토대로 반 레벨이 정해지는 이 시점, 상담실의 전화기가 유독 뜨겁다.


"왜 같은 돈을 내고 다니는데 우리 아이는 점수가 왜 이 모양일까요?"

"우리 애가 이 학원을 얼마나 오래 다녔는데 왜 1등급이 안 나오나요?"


얼마 전, 반 배정 결과에 화가 난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원하는 반에 배정하기 위해 개인 과외까지 병행하며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고작 이 반이냐는 원망이 수화기 너머로 쏟아졌다. 그 어머니에게 성적은 곧 '지출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어야 했다.


아이의 기록을 살폈다. 방학 동안 수업에는 성실히 출석했지만, 정기 평가나 주간 테스트는 번번이 빠져 있었고 과제 수행도 역시 낮았다. 결국 성적이란 돈을 지불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연필을 쥐고 고민한 시간의 결과물이다. 아이가 고민한 구슬땀이 모여 점수가 되는 그 당연한 이치를, 조심스럽게 수화기 너머로 전했다.


부모가 지불한 비싼 수강료가 학생의 노력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학원은 예쁘고 필기감 좋은 노트를 지급하고 연필 쥐는 법을 알려준다. 때로는 파란 펜으로 쓰면 좋겠다는 팁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노트 위에 인생을 써 내려가는 건 결국 학생 자신이다.


며칠 후, 그 학생은 결국 학원을 떠났다. 가르치는 건 강사의 몫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연필을 쥐게끔 더 치열하게 설득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관리의 패를 다 꺼내 보이지도 못한 채 아이를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더 집요하게 붙잡고 더 세밀하게 로드맵을 그려줄 기회를 놓쳐버린 미련이 퇴원 서류 위에 무겁게 남았다.


결국 학원이 줄 수 있는 건 환경일 뿐이다. 나의 설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믿음이며, 그 안을 채우는 건 결국 아이의 몫이다. 아이가 스스로 땀 흘리며 제 길을 그려가는 그 정직한 과정을 밟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15년 차 고등학원 상담실장으로서 건네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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