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느림보의 역습] 서울대아빠의 성적표는 아니었지

by 은실장

느림보의 역습



초롱대에 남은

마른 심지 한 잎


네가 길어 올린 빛으로

물든 세상


보이니?



입학 시즌이 다가와 설렘을 주는 3월이 왔다. 봄 학기 개강으로 학원가는 또 한 번 술렁인다. 어떤 레벨에, 어떤 선생님이 배정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신규생들의 입학 고사가 진행되는 날, 응시하러 온 학생에게 기초 정보를 적게 하고 이전에는 어떻게 공부했는지 물었다. "아빠에게 배웠어요. 아빠가 서울대를 나오셨거든요." 어머니가 질문을 낚아채듯 빠르게 답변하셨다.


학원 강사들도 본인 자녀는 가르치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당연히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아버님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학생의 성적이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결과는 저조했고, 아이는 기본반에 배정되었다. 원장님과 결과 상담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표정이 많이 굳어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원장님께 들어보니, 상담실 안에서도 아버님의 학력을 꽤 강조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부모의 과거는 아이의 현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화려한 배경이 아이의 실력을 보장해주지 않듯, 오늘의 저조한 성적이 아이의 미래를 가두지도 않는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아빠만큼 하는 법'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걷는 법'이어야 하지 않을까. 3월의 찬바람을 견뎌낸 꽃만이 제 빛깔을 내듯, 이 아이도 타인의 이름표를 떼고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해지길 응원해 본다.

아이가 아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울대 아빠'라는 수식어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 늦어도 당당히 걸어가는 아이의 독립된 길을 지지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너를 기억해:차가운 마음을 데운 달콤한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