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과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비교하기
해당 리뷰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과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에 담긴 해석과 감상은 정답이 아니며, 다른 해석과 감상 역시 존중합니다.
최근 들어서 부쩍 웹툰, 웹소설 등이 드라마화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늑대의 유혹(2004)>이나 <성균관 스캔들(2010)>같은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두 작품의 간격을 봐도 알 수 있듯 ‘어쩌다 한 번’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웹툰의 점진적인 성장, 그리고 웹소설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이제 단순히 ‘드라마’로서 존재하는 드라마만큼이나 기존 작품들이 활자를 넘어 변한 드라마도 상당한 인기와 활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일까? 『보건교사 안은영』이 드라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낯설면서도 반가움이 들었다. 그 전까지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글을 쓴 정세랑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상위권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모두 나오고 나면 꼭 소설과 드라마 모두를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드라마가 모두 나오고 나서도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여유가 생겨 먼저 소설을 읽고, 그 다음으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소설을 읽었을 때는 역시 정세랑, 이라는 생각과 함께 만족감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드라마를 보았을 때는 소설을 용케 잘 구현해나간다 싶으면서도 갈수록 아쉬움이 느껴졌다. 드라마도 드라마 나름대로의 문법과 강점이 있었고, 또 소설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도 보였다.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더라도, 원작 소설보다 낫다거나 대등한 정도로 좋은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두 작품을 차근차근 비교해보면서, 어떤 부분들이 좋았고 또 어떤 부분들이 아쉬웠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인물
우선은 인물, 캐릭터다. 정세랑의 소설은 대개 일반적인 작품들에 비해 인물들이 많다. 51명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피프티 피플』이라는 작품도 있을 정도고, 해당 작품에서도 각각의 단편마다 새로운 학생들, 교사들이 안은영과 홍인표를 제외한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대개의 이야기들이 소수의 조연과 다수의 조연으로 구성되지만, 정세랑의 소설들은 그에 비해 다수의 동등한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얽히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주인공에 실리는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조연이나 단역으로 보이는 인물들에게까지 그 무게를 얹어주는 느낌이다.
사실 이런 구성은 드라마는 물론이고, 대개의 이야기에 어울리기 어려운 구성이다. 여러 인물들을 치밀하게 짜고, 그 속에서도 주인공을 독특하게 보여야 하지만 너무 튀어서도 안 된다. 인물간의 균형을 고려하고,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하려면 기존의 방식에 비해 더 많은 품이 든다. 그렇기에 드라마에서는 뿔뿔이 흩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합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정세랑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따뜻함이 많이 줄어들면서, 동시에 정세랑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도 다소 떨어졌다.
특히 럭키, 승권과 같은 주변 인물들에서부터 안은영, 매켄지 등 주요 인물들까지 자잘하게 변경되었는데, 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평범성이 기괴한 모습으로 흐트러지면서 소설이 원래 가졌던 ‘따뜻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많이 퇴색된 느낌이 있다.
이를 가장 간단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럭키’다. 소설에서는 럭키의 입안과 주도하에 방석도둑 계획이 일어나는데, 드라마에서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대학교 형들이 등장한다. 럭키의 특징이 운이 좋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고 엉뚱한 계획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데에 있다는 점인데 그것을 전혀 상관없는 엑스트라한테 넘겨버려서 드라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럭키’라는 별명이 무색하게도, 운이 좋은 면이나, 그런 운을 믿고 움직이는 면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변경이 조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은영의 경우 인표와 처음 압지석을 보러가는 과정에 ‘도를 아십니까’ 같은 대사가 추가되거나, 작품 중간중간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의 안은영이 쿨하다면 드라마에서는 날카로운 느낌이다. 이게 그냥 그대로 흘러갔다면 괜찮았겠지만, 옴잡이 백혜민과의 에피소드에서 단점으로 드러나게 된다. 드라마만 보면 마치 백혜민은 상관없는데 안은영이 억지로 백혜민을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백혜민의 심경이 내면묘사를 통해 나오고, 수면내시경 이후의 언급을 통해 백혜민이 내심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폐가 될까 거절하고 있음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속사정들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데다 안은영이 한층 날카로워지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소설의 인물이나 사건들이 삭제·통합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캐릭터와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부분들도 있다. 승권이나 인표, 매켄지가 그렇다.
소설의 단편 중 「원어민 교사 매켄지」에는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황유정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황유정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소심한 학생으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매켄지의 아주 사소한 친절을 계기로 짝사랑에 빠진 황유정은 결국 매켄지의 집에 무단침입하게 되지만, 매켄지와 은영이 갈등을 빚은 결과 매켄지가 전근을 가게 되면서 끝나게 된다. 이 중간에 나타난 것이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으로, 황유정이 학교를 쉬고 매켄지의 집에 침투한 동안 황유정 모양의 여러 젤리들이 학교에 불쑥불쑥 솟아나는데, 이게 드라마에서는 1화에서 승권 모양의 젤리가 생겨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짝사랑’이라는 면만 본다면 황유정이나 승권이나 짝사랑을 하고 있으므로, 같은 짝사랑끼리 묶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은 진짜 짝사랑을 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자신과는 다른 대상을 짝사랑으로 오인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황유정과 승권의 욕망을 과연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지, 같은 것으로 투영해도 되는 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소설을 드라마에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소설과 다른 길을 택하는 셈이다.
인표의 경우 큰 부분들은 거의 그대로지만 소설에 비해 좀 애매한 느낌이 든다. 소설에서의 인표는 원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괴한 사건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금줄에 대해서 모르기도 하고, 매듭법 역시도 전통 공예부의 부장에게 가서야 배웠다. 그러나 전통 공예부 부장의 캐릭터도 삭제되고, 안은영에게 모든 설명을 맡기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는지 인표가 이것저것을 많이 아는 캐릭터가 되었다. 소설에서 인표는 학교 이사장의 손자인데도 이런 사건의 이면을 전혀 모르는 제삼자라는 포지션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학교’를 상징하는 인물인 것인데, 이런 면모가 다소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면들은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 두 개가 아니라 작품 전반에서 계속해서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꼬집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2. 상징
‘드라마 하나 보는데 무슨 상징씩이나’하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드라마였다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징이 상당히 중요하다. 애초에 세계관에서부터 상징으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안은영이 보는 ‘젤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감정들이 실체화된 것이다. 주로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들이 뭉쳐 젤리의 형태로 발생하고, 그 젤리가 이상현상을 일으키면 안은영과 홍인표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적인 이야기의 진행방식이다. 즉, 젤리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존재이고, 이 작품은 그런 상징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작품 속의 상징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소설이라는 매체는 다른 매체에 비해 상징을 넣기도 용이하고 사용하는 빈도도 많기 때문에, 이처럼 다른 매체로 각색되는 경우 상징을 알기 쉬운 형태로 나타내거나 삭제하는 경우도 많다. 이 작품이 삭제한 것들에 대해서는 ‘인물’ 파트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으니 이번엔 반대로 빼거나 바꾸어도 되는 것들을 굳이 드라마에 넣어버리면서 혼란을 주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유독 오리 몇 마리가 자꾸 눈에 띈다. 소설에서는 한아름 선생과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한다. 소설에서야 단편의 끝에 학교의 마스코트 격이 되었다고 서술하고는 있지만, 정작 드라마에서는 관련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어떤 의미도 없는 상징이 되었다. 오리를 등장시키고 싶었으면 관련된 에피소드를 넣었어야 했고, 그럴 수 없었다면 최소한 자연스럽게 등장시켰어야 했다. 적어도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한아름과 오리가 관련되는 장면을 넣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였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라도 있었겠으나,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불필요하게 집중력만 떨어트리는 요소가 되었다.
3. 서사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장편소설이지만 옴니버스식이기에 오히려 연작소설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큰 줄거리의 서사가 없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러면 안되기에 원작과 다르게 큰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 큰 서사가 작품과 잘 맞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생각에는 크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원작과 다르게 간다면 적어도 그게 잘 맞고 재밌었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원작과는 다르게 드라마에는 ‘안전한 행복’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 단체가 등장하면서 작품이 가지는 기괴함은 더욱 커졌다. 비정상적으로 크게 웃는 것이라거나, 맥켄지가 소속되어있기도 하고, 오리지날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는 화수, 그리고 정체를 감춘 일광소독도 안전한 행복과 연관이 있다. 서사가 없는 작품에 서사를 넣기 위해 노력한 점은 알겠으나 잘 어울리지는 않는 느낌이다. 감독은 ‘시즌 2’를 하겠다면서 래디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시즌 1을 마무리했지만, 이미 원작도 많이 바꾼데다 남은 단편도 고작 1~2개인 상황이라 안전한 행복과 관련한 오리지날 서사로 시즌 2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또 그것을 과연 ‘보건교사 안은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드라마를 위해 소설의 사소한 디테일들이 자꾸 바뀐다. 그 의미를 읽지 못한 것이든, 알지만 일부러 드라마를 위해 바꾸었든 그로 인해 원래 가지고 있던 이야기의 장점이 무뎌지는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드라마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CG와 음악은 드라마만의 독특한 강점이고, 김강선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도 오리지날로 여운이 느껴지게 잘 만들어냈다. 각각의 작품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나, 원작을 그대로 옮기던 드라마에 어울리게 각색을 하건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도 저도 되지 않은 느낌이라는 점에서 좀 아쉬웠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