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수띤에 대해선 별로 알지 못한다.” 그는 깊이 파헤치지 못한 영역은 과감히 공백으로 남겨두는 대신, 미술 작품과의 내면의 대화를 거듭하면서 자신조차 분명히 하지 못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풀어내는 데 주력한다. 그의 눈에 밟혀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밝고 희망에 찬 표정이라기보다 절망과 폭력, 속박의 시간을 되짚는다. 왜 유독 그런 상흔 앞에서 그의 마음이 붙들렸을까.
작가는 이탈리아 피렌쩨의 우피찌 미술관에서 보띠첼리, 라파엘로, 다 빈치의 명화를 눈에 담고 곧장 싼마르꼬 수도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에서 프라 안젤리꼬의 <수태고지>를 만나고, 이 신약성서 이야기를 다룬 뭇 회화와 다른 안젤리꼬식의 단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에 반한다. 하지만 <수태고지> 말고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수도원 복도로 죽 늘어져 있는 승방들과 방마다 장식된 프레스코화였다. 안젤리꼬와 그의 제자들이 둘러앉아 책형도를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그의 머릿속에는 승방 속 고요한 고통과 조국 철장 속 고통이 덧보였다.
대통령의 술책에 이용되어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의 두 형들. 그들은 승방보다 작은 0.72평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두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출소할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난 창 대신에 프레스코화를 보며 세상의 소음을 밀어내고자
했던 수도사들과, 몸을 짓누르는 폭력과 설움을 이겨내고자 했던 두 형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시대와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자기 존엄을 붙들기 위해 치르는 내면의 투쟁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를 보여준다.
오늘날 후기 인상주의로 잘 알려진 고흐의 생애는 사실 실패와 자기모멸의 연속이었고, 주위 사람들마저 그를 괴팍한 정신이상자라며 손가락질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를 유일하게 응원해 준 사람이 있으니, 그의 동생 테오였다. 테오는 고흐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
에서, 그가 화가로 이름을 널리 알릴 날을 확신하며 그의 삶에 힘을 실어주었다. 오늘날 그 편지를 다시 읽는 우리는, 고독은 그 고독을 이해하는 자에게도 전이된다는 걸 느낀다. 즉 ‘창조하는 인간’으로서 고흐가 겪는 생활고, 슬픔, 고독은 동생 테오를 단순히 ‘감상하는 인간’으로 남기지 않고 그 고투에 함께하게 했다.
프랑스 오베르 쒸르 우아즈에서 작가 서경식은 <반
항하는 노예> 주위를 돌며 형에게 부칠 말을 떠올려 본다. 그러나 팔이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노예가 방사하는 속박의 이미지를 바라볼수록, 1971년 군사독재의 노예나 다름없는 두 형들이 떠오를 뿐이다. 순례에서 만난 여러 점의 작품 중에서도 그 ‘노예’가 걸어오는 말이 남달랐던 것일까. 작가는 1992년에 출간한 구판의 표지로 <반항하는 노예>를 삼기도 했다.
쁘라도 미술관에서 산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쁘린씨뻬 삐오 언덕의 총살> 복제품을 들고 서울의 공항을 지나던 어느 날, 그에게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난다. 17년에 걸친 투옥 생활 끝에 출소하게 된 형의 방에 걸어주고자 지니고 들어온 이 그림이 세관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세관원들은 무장한 군인들과 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엎어져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림의 출처와 구매하게 된 경위를 족족 캐물었다. 이 그림이 세관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림 속 살육과 저항이 조국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에게 국경이란 이산의 세월을 보낸 그를 감싸는 공간이 아닌, 더욱 매섭게 추궁하는 곳
이었고, 둘의 경계 위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온 그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만약 한 서양인 도슨트로부터 그들 미술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을 전해 듣는다면, 모름지기 서경식의 시선보다 더 정밀하고 객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서사는 마치 서양 미술을 다섯 보쯤 떨어져서, 유리막이 한 겹 덧대어진 채로, 건너편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인상을 줄지 모른다. 서경식의 서양 미술 순례가 유독 우리에게 와닿는 까닭은, 비잔틴 건축과 모자이크, 고딕 양식이 수놓는 서구의 화려한 풍경 너머에 놓인 자이니치로서 그의 담담한 자기 물음과 고백이 우리의 ‘흩어진 역사’라는 기억과 맞닿아 깊은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