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메데이아> 주인공 메데이아는 코린토스 왕가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남편 이아손에 큰 배신감을 느껴 공개적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그 복수의 제물로 두 아들을 삼는다. 왜 메데이아는 자신의 피붙이까지 죽이면서 끔찍한 복수를 계획하는가? 작품 속 ‘두 아들을 죽이는 모티프’를 통해 메데이아가 가지고 있는 악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런 악의 심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타인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내 삶을 가꾸는 것에 집중하여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타인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오히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혹은 적극적으로 법의 심판을 이용하여 타인을 벌하는 법. 하지만 메데이아가 선택한 복수 방법을 향해서는 누구든지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필이면 자신의 두 아들이 복수의 수단으로 쓰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메데이아의 악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질문이다. 권력형 인간인 이아손에게 두 아들은 자신이 손에 쥔 권세를 후대로 이어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올코스에서 왕위를 차지하려는 그의 목표는 이미 좌절되었고 추방된 코린토스에서 다시 한번 권력을 손에 넣기로 결심하는데, 배수의 진을 친 그에게 두 아들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이아손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두 아들은 언제든지 가장 큰 약점이 되어 이아손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죽임으로써 이아손의 권력욕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메데이아는 왜 굳이 자기 손으로 두 아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두 아들의 숨이 끊기는 참혹한 광경을 눈에 담기 힘들어서라도 다른 방법을 택할 수는 없었을까? 얼핏 보면 메데이아가 자식에게 한 치의 애정도 없었기에 능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메데이아는 되려 자식들을 너무도 사랑했다. 메데이아는 자식들이 웃음거리가 되도록 원수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필요하다면 생모가 직접 죽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어떤 적도 두 아들을 능욕하고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자기 손으로 묻어주겠다고 말했다.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에서는 더 이상 두 아들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두 아들은 나라의 공주를 독살한 일에 가담했고 심지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이코패스와 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사회의 노여움을 사 죽을 목숨일 게 뻔한 두 아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서 죽게 두느니 차라리 본인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다짐했고, 이런 메데이아의 커다란 모성애가 역설적으로 두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죽이는 일이 자신에게는 두 배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고통이 메데이아에게 주는 최후의 의미는 무엇인가. 메데이아는 막상 두 아들을 마주하고 난 뒤 자신이 끔찍한 살인을 계획했던 것에 크게 반성하게 된다. 또 아이들을 죽이고 나서는 자신이 불경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메데이아가 계획한 복수 그 마지막은 바로 자기 스스로 벌하는 것이다. 이아손이 인생의 참패를 맛보는 순간을 온전히 자기 손으로 매듭지으면서, 동시에 윤리적이지 못한 살인에 대한 벌로서 자신의 전부를 잃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출세의 기회란 극히 제한적이었고, 유일한 길은 남편과 가정에 헌신하여 인정받는 것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전장에서 칼을 뽑고 승전고를 울릴 수 없었다. 학문을 갈고닦아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 역시 보편적이지 않았다. 독립된 주체로서 여성은 성공의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되었고 오로지 좋은 남편과 행복한 가정이 여성이 소망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었다. 이아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 이유였듯 메데이아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유일한 존재 이유였고, 그렇기에 이아손이 권력을 손안에 쥐려 앞을 향해 나아갈수록 메데이아 역시 삶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서 그 뒤를 맹렬히 쫓았다. 그렇게 메데이아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대가로 이아손의 삶을 사금파리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메데이아가 품은 배신감은 그를 부계사회의 희생자로서 영원히 남기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규범에 도전할 수 있는 여성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을 쥐고 흔드는 힘 역시 악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반해 훨씬 매몰찬 사회에 느끼는 배신감, 잘못된 일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어딘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억울함이 우리를 자극하고 움트게 만든다. 악을 골자로 한 대부분의 소설이 보여주듯, 악은 추스르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라 잘못 표현되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악은 순기능을 가진다. 분노는 맞서야 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둔화시키고 열의로 가득 차게 만든다. 감정의 울부짖음이 모여 교사의 인권이 수면 위로 부유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부당함에 맞서 촛불을 들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메데이아가 품었던 정의의 분노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