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역설에 대하여

클라이스트의 <칠레의 지진>

by 수련


인간은 집단에 소속되면서 개인으로선 해낼 수 없는 무언가를 이뤄내곤 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부족을 형성해서 야생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지켰고, 사회를 형성하고 강력한 규칙을 두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했다. 하지만 이런 집단의 속성은 쉽게 역이용되어 오늘날 타자화, 편견, 혐오라는 사회적 폭력을 만들어 냈다. 집단 속에서 인간은 개인의 이름으로 주저하는 일을 더욱 대범하고 본능적으로 해낸다. 집단에 가해지는 비판과 책임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수준에 비해 훨씬 가볍고,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칠레의 지진>은 물리적 재앙인 지진과 인간의 정신사적인 흔들림, 그리고 그 가운데 이성을 잃은 폭도들의 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47년 칠레 왕국의 수도 산티아고. 지진이라는 파괴적인 힘이 사회를 뒤덮었을 때, 눈길이 닿는 한 모든 재앙의 온상에서는 제후와 거지, 귀부인과 농부아낙, 신부와 수녀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진 것을 베풀고 서로를 동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진의 여파가 잦아들자 거리 사람들은 교회에서 열리는 미사에 하나둘 모여들었고, 고위성직자는 얼마 전 수도원에서 일어난 두 주인공의 스캔들에 대해 운을 떼며, 지진을 ‘도시의 타락에 대한 징벌’이라 선언했다. 그렇게 성난 무리는 진짜 예로니모와 요세페가 누구인지 확신하지도 못한 채 그의 일가에 돌을 던져댔고 결국 무고한 타인의 죽음을 만들었다. 집단의 대세를 거스르기 힘든 개인이 눈앞에 놓인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다수에 편승하여 억울한 피해를 낳은 것이다.


작품은 집단의 광기와 악을 더욱 들끓게 하는 요소로 종교의 양면성을 내세운다. 도로나 건물 같은 물리적인 근간이 무너지더라도, 종교와 같은 인간의 의식체계는 결코 위협받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그런 혼란 가운데 더욱 신의 뜻에 의지하며, 자신의 믿음이 공격받지 못하도록 지켜낸다. 작품 속에서 성직자는 이러한 인간본능을 이용해 종교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이끌고, 그 속에서 자신이 새로운 질서의 구심점에 서고자 한 것이다. 자연이라는 악으로부터 도망쳐온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신성한 포악성’을 낳았다.


인간에게 집단이란 매우 양가적인 존재이다. 자연자해라는 거대한 악을 외집단으로 인식한 인간은 사회라는 내집단을 중심으로 연대하고 결합한다. 하지만 그 결속력이 약해지고 잘게 분열한다면 언제든지 인간은 본능적이고 필연적으로 또 다른 외집단을 만들어 내고, 공동의 적을 향해 돌을 던져 댈 것이다. 만일 미사에 모인 무리 중 단 한 명이라도 부당함을 외칠 용기가 있었다면 그 억울한 죽음을 유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부단히 집단의 역기능 앞에 맞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비정상 혹은 파괴적인 오답으로 분류되는 사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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