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리부트

발리, 인도네시아

by 수련



좋은 풍경을 보는 날이면 꼭 필름 카메라를 챙기고 싶다. 가방이 꽉 차 다른 걸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달랑 쥐고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아날로그가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우리로서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네 삶은 스마트폰이라는 근사한 기술과 함께 한지 오래다. 마음에 쏙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찍으면 되고,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수평과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 완벽한 한 장을 건져내는 건 일도 아니다.


한편 필름은 어떤가. 일회용이라면 17컷에서 많게는 39컷, 그 안에 알차게 피사체를 담는 건 우리 몫이다. 바투르 산으로 지프 투어를 가는 날, 일출 사진을 꼭 가지고 싶어 전날까지 딱 한 장 남은 와인더를 감지 않고 고이 챙겼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으로 렌즈를 가려서 검게 나온 사진, 역광으로 찍어 배경이 하얗게 날아간 사진.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가 눈에 띄게 되면, 옳다구나! 이게 필름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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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심리학은 우리에게 ‘바람직한 불편함’이라는 좋은 이야깃거리를 준다. 의식적인 수고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 디스플레이 속에서 모든 게 가능해진 사진은 더 이상 특별함을 주지 못해 내면의 암기를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면, 느리고 신중한 과정을 거친 것들은 더 진한 기운을 남긴다.

발리의 거리를 걷다 말고 우뚝 서서 뷰파인더로 건너다본 장면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시간이 붙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행커치프가 생각나는 알록달록 짜낭사리. 엇비슷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개성이 담겨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스턴트 세상 속에서 기다림은 쉽게 증발한다. 기다림은 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어떤 감정을 동반한다. 그런데 아날로그가 가진 약간의 불편함은 언제나 우리에게 설렘이나 기대 따위의 좋은 신호를 가져다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든 속도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걸 느낀다.

필름이 주는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당신, 여유로움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발리로 떠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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