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년만에 다시 사랑 받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은 어떻게 2026년에 뜨겁게 사랑받게 됐을까?

by 무형

Review note


영화《왕과 사는 남자》(2026)

감독 장항준

출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외


많이 춥지요? 따듯한 데로 갑시다.

화면 캡처 2026-03-09 18112522333.png


청령포 기슭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던 소년. 왕이 아닌 아이로서 그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촌평을 내리자면 뻔해서 아쉽고, 뻔해서 볼만했던,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기 때문에 와닿았던 영화 같다. 지금부터 ‘단종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영화의 개인적 셀링 포인트와 약점을 정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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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장가, 특히 한국영화계에는 크게 흥행한 작품이 없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하더라도 관객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여운을 남긴 작품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다. 특히 접근성이 좋은 영화야말로 가장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갈증을 충족시켰다. 극장에 어르신들 혹은 아이들도 많았다는 후기를 종종 들었다. 나 또한 예상했던 웃음코드를 다른 관객들과 함께 해서 좀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폭력적이지 않고, 선정적이지 않고, 남녀노소가 볼 수 있는 따듯하고 무해한 영화가 오랜만에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공통 정서는 요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유대감과 정(情)의 필요성을 대리해 채워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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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서 작품은 천만영화의 도식을 그대로 따른다. 영화 전체가 직설적인 문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연기 구멍이 없는 캐스팅으로 배우에 대한 애정이 작품 밖으로도 확장이 되며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극중 단종으로 분한 박지훈 배우의 화보를 두고 “단종오빠가 반바지 입은 것 같아서 못 보겠다” 따위의 반응이 공유되는 것이다. 또한 릴스, 쇼츠 등 많은 숏폼에서 명대사를 각자 처지에 맞게 변용하여 연기하는 등 대중의 참여형 문화로써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강원도 영월(실제 단종의 유배지)의 방문과 경제가 폭발적으로 활성화되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영월군은 4월 24일 개최되는 제59회 단종문화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좋은 사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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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운 점은 연출과 캐스팅 측면이다. 마을 주민들과 감정을 쌓아가는 부분에서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지’ 톤의 연출은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또한 ‘빌런’으로 나오는 한명회가 등장할 때 전설의 고향처럼 (이 글을 읽는 어린 연령대 분들은 전설의 고향이 뭔지도 모를 수 있다.) 번개가 치는 장면도 세련됨이 부족한 예시 중 하나이다.


또한 성추문 논란의 오달수 배우를 굳이 캐스팅 했어야 했냐는 의견도 분분하다. 영화가 무해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면, 과정에서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면 좋지 않았을까?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감초 배우들이 있음에도 관객의 불매 요소가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점이 다소 아쉽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이홍위를 직위가 아닌 사람으로 기리는 영화이다. 시신을 아이처럼 안아주던 엄흥도의 진실된 애정처럼, 우리는 어쩌면 장엄함 이전의 인간된 이야기를 원해왔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