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곰의 꿀단지

제철 음식을 굳이 찾아서 먹었던가?

by 썬이

1. 제철 음식을 굳이 찾아서 먹었던가?


아니다.

나는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주부였다. 사실 지금도 모른다. 해보려고 했던 적은 있다. 번번이 실패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잘 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였다. 엄마는 한 번 끓이면 오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주로 했는데, 가장 많았던 건 곰탕이었다. 다행히 나는 음식을 쉽게 질려하지 않는다. 같은 메뉴가 며칠째 이어져도 무심히 먹었다. 조금 물린다 싶으면 순대를 사다가 넣어 먹고, 김치를 꺼내 곁들이면 그게 또 별미였다. 냄비 하나 안에서 나름의 변화구를 줬다.

간도 딱히 하지 않는다. 삼삼하고 슴슴한 맛으로 먹는다.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먹는다. 김치는 간간하게도 먹고 짜게도 먹는데, 엄마는 내가 싱거운 걸 좋아한다고 여겨서인지 내 것만 양념을 조금 덜 묻혀 따로 챙겨주셨다.


난 그렇게 컸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와이프가 되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걸 알았다.


신혼 때였다. 날씨가 꽤 화창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노란 싱크대 앞에 서서 콧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며 김치찌개를 완성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안에서 두부가 덩실거렸다. 꽤 만족스러웠다. 숟가락으로 한 술 떠서 후후 불고 호로록 맛을 봤다. 나름 그럴싸했다. 맛있었다.

— 앞서도 말했듯, 나는 삼삼하게 먹는 사람이고, 전남편은 음식에 소금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

전남편은 나이가 어렸다. 쉴드일 수도 있다. 내 김치찌개를 한 술 떠 맛보더니.


"윽.... 진짜 맛 없네. 갖다 버려. 썬."

"진짜?"

"버려. 안 먹어."

"진짜 버려?"

"버려버려라잉."

"....."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로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버려졌다. 싱크대에 쏟아진 김치찌개를 보며 조금 허탈했다. 상처도 받았다. 눈물도 찔끔 났다. 내 나이 스물셋. 나름 노력한다고 했던 건데, 맛있는 척이라도 해줬다면, 조금 더 해보려 했을 텐데. 그래도 그도 어렸다. 스물일곱.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사실 지금도 요리를 잘 못한다. 큰아이가 "엄마, 우리 학교 급식이 진짜 제일 맛있어"라고 말할 정도다.

큰아이가 벌써 열넷이다. 함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성인이 되면 할머니가 계신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목표가 생겼다. 2026년 안에 55킬로를 만들어 다이어트를 마무리하고, 그다음엔 요리와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것. 다이어트처럼 하루하루 기록하고 글로 남길 생각이다. 이건 차기작의 예고편쯤 된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닭가슴살, 감자, 샐러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뭐랄까.. 닭장에 갇혀 난각번호 4번 달걀을 낳는 닭이 된 기분이랄까. 이번엔 질리지 않고 오래 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뭘까 한참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단백질, 탄수화물, 채소에 제철 음식을 넣어보자.

나름의 지루함에서 변화구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은 정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버전으로 골랐다. 탄수화물은 감자가 가장 잘 빠진다고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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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식재료는 햇감자였다.

제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들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몰랐다. 감자는 마트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계절이 바뀌어도 감자는 늘 거기 있었고, 나는 그냥 집어 들었다. 특별히 더 맛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햇감자는 달랐다. 소금을 찍지 않아도 짭조름하고 달큰했다. 식감이 쫀득했다. 뭔가를 처음 제대로 맛본 사람처럼, 나는 잠깐 멈췄다. 감자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흔하다고 다 아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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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나.

처음엔 그냥 쪄서 소금이나 설탕에 찍어 먹으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한 입 먹고 잠깐 멈췄다. 아니, 이게 뭐야. 아무것도 찍지 않았는데 이미 맛있었다. 햇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괜히 신이 났다. 다이어트 첫날부터 이렇게 설레도 되나 싶을 만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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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발사믹 식초와 크림치즈를 곁들여 먹었다. 사실 나는 그릭요거트를 못 먹는다. 어릴 때 엄마가 억지로 먹였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그 맛을 떠올리면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이 그릭요거트를 즐겨 드시는 걸 보면서 조금 부러웠다. 그래서 크림치즈라도 사봤다. 헤헤.

크림치즈와 먹어도 별미였고, 닭가슴살과 먹어도 별미였다. 한 끼를 햇감자 하나로 때워도 충분히 맛있고 충분히 행복했다.

혹시 5월에 다이어트를 시작할 계획이 있다면, 햇감자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제철 식재료는 그 계절에 가장 잘 자란 것이고, 영양도 식감도 그때가 정점이다. 제철, 제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햇감자를 한 입 베어 물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나는 그렇게 제철 음식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 다이어트의 시작은 참을 인 자가 아니라, 제철과 행복이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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