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급 셰프의 휴가? 혹은 병가

5성급 셰프의 감기 투병기

by 기억하는 나비

딸아이가 친구들과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3박 4일. 수능이라는 긴 터널에 다시 들어가기 전, 아이에게 주어진 짧고 달콤한 겨울방학입니다.


"엄마, 나 잘 다녀올게!" 현관문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너 없는 4일 동안 엄마도 좀 쉬자. 새벽 6시 기상도, 도시락 메뉴 고민도 잠시 안녕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딸아이가 비행기를 타자마자, 제 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장이 났습니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들더니 목이 붓고 코가 막혔습니다. 감기였습니다.

교토 아라시야마에 있는 유명한 맛집의 소고기 덮밥

딸아이는 일본에서 이렇게 근사한 와규 스테이크 덮밥을 먹고, 육즙이 팡팡 터지는 돈가스를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작 그 아이를 먹이느라 고군분투하던 '5-Star Chef'는 끙끙 앓으며 침대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딸이 집에 없을 때 아파서 다행이다. 도시락 쌀 일 없는 날이라 천만다행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이 풀려서 아픈 것인가?"


지난 보름간, 요알못인 주제에 '5-Star Chef'가 되겠다고 칼을 잡고, 새벽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주방에 섰습니다. 아마도 제 몸은 그 '엄마라는 책임감' 하나로 바이러스를 버티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 딸이 여행을 떠나고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어지자,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지며 그동안 참아왔던 피로가 감기라는 이름으로 밀려온 것이겠지요.


그 와중에 휴대폰 속 딸아이가 보내온 음식 사진들은 내가 싸줬던 도시락과 비교해서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photo_2026-02-10_15-14-41.jpg '규카츠(Gyukatsu)' 정식

이제 3박 4일이 지났습니다. 귀신같이 감기 기운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딸이 돌아오고, 다음 주면 다시 도시락 전쟁이 시작됩니다.

참 신기하죠? 책임져야 할 존재가 돌아온다니 몸이 스스로 나을 준비를 합니다.

저의 면역력은 비타민이 아니라, 딸아이의 "엄마, 다녀올게" 그 한마디에서 나오나 봅니다. 자, 이제 털고 일어나야겠습니다. 셰프의 휴가는(비록 병가였지만) 끝났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N수생? 재수생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