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수생 엄마의 딜레마
오늘 도시락 반찬은 제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메뉴, '계란말이'입니다.
서툰 칼질 탓에 모양이 들쑥날쑥한 다른 반찬들과 달리, 계란말이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약한 불에서 계란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말고, 다시 붓고, 또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겹겹이 쌓아 올리면 어느새 단단하고 두툼한 모양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저는 이 계란을 말면서 속으로 수십 번도 넘게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같이 말아버렸습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기 전 딸아이는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행 다녀와서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진짜 열심히 할게!"
그 말에 친구들과의 일본 여행을 허락한 보람이 있다며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독학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엄마, 나 이번 주 토요일에 조퇴하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기로 했어."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술을 마신다는 건, 곧 다음 날인 일요일의 공부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극상위권'들이 모인다는 한의대. 그 좁은 문을 뚫으려면 1분 1초가 아까운 시점인데, 여행 다녀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다시 술 약속이라니요.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습니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한의대가 장난이야? 엄마는 새벽마다 도시락 싸느라 진이 빠지는데, 넌 재수생인데 대학 합격한 친구들하고 술 마실 생각이 드니?"
당장이라도 쏟아붓고 싶은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을 닫았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애꿎은 설거지 감만 달그락 거리며 외면했습니다. 지금 내가 입을 열면, 응원이 아닌 독설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할 퀴고, 결국 상처만 될 것이 뻔했으니까요.
제 반응이 없자 딸아이가 묻더군요.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다마다. 너무 잘 들려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데.
'6 광탈'의 아픔을 겪고도, 아직 그 절박함이 부족한 걸까. 엄마인 내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까지 다그쳐야 하는 걸까.
N수생 엄마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육체적 노동은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흐트러지는 아이를 보면서도 '혹여나 기가 죽을까 봐', '잔소리가 스트레스가 될까 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참아야 하는 감정 노동은 정말이지 뼈를 깎는 고통입니다.
수능 날까지, 오늘로 딱 D-280일이 남았습니다.
엄마는 속이 타들어가는데, 아이의 시간은 왜 이리도 태평하게 흐르는 걸까요
오늘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딸아이가 이 두툼한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 때, 그 안에 겹겹이 숨겨둔 엄마의 '무겁고 슬픈 침묵'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껴주기를.
그래서 친구들과의 술 약속은 이번 주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본인 자신의 인생을 위한 수능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