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차장의 듀오링고 듀오링고
직원들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때 나는 조용히 듀오링고를 켠다. 화면 속 초록색 부엉이가 나를 반긴다. 내가 하고 있는 듀오링고는 중국어. 그런데 조금 유별나게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기반으로 중국어를 배운다. 한국어-영어-중국어, 중국어를 영어로 배우는 이 과정을 나는 매일 반복하고 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건데?’
대학 시절, 꿈을 안고 다녀왔던 중국 교환학생과 뉴질랜드 어학연수. 그때의 나는 세상 구석을 다니면서 멋지게 일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50여 명 남짓 직원이 있는 지자체 공기업 차장.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영어 한 마디, 중국어 한 자 쓸 일 없는 행정 서류들만 가득하다. 22년 차 직장인, 이제는 ‘만년 차장’이라는 수식어가 묘하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사실 외국어 공부를 지속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나 이렇게 2개의 외국어를 해요”라고 대놓고 어필하기에도 쑥스럽고, 알아봐 주는 이도 하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듀오링고의 리그 순위에 집착하며 ‘Amethyst League 1위’라는 타이틀에 안도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 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손에서 놓는 순간, 나의 삶은 한없이 무료해질 것만 같다. 직장에서는 매번 승진에서 누락되는 힘없는 직원으로, 집에서는 N수생 엄마로 살아가며, ‘나’라는 존재가 자꾸만 희미해진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정답을 맞히고 레벨을 올리는 순간 ‘능력이 부족해서 승진이 누락된 것이 아니야.’라는 주문을 나 스스로에게 넣을 수 있게 된다.
이 이중 언어 학습은 나만의 은밀한 자존감 창고다. 남들은 모르는 길을 스스로 선택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직 견제하다’는 확신을 얻는다.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없으면 좀 어떤가. 승진하기 위한 처세술이 모자라면 어떤가. 내가 나를 기특해하면 그만인 것을. 오늘도 나는 영어를 경유해 중국어의 바다로 빠져든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