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엄마는 언니를 어디에도 묻지 못했다.

가슴에도 묻을 수 없는 자식 잃은 슬픔

by 기억하는 나비

슬픔이 몸과 하나가 되면


슬픔은 정직하다. 그러나 때로 그 정직함은 잔인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눈물로 다 쏟아내지 못한 슬픔,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린 통곡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갈 곳을 잃으면 몸 안으로 숨어든다. 언니를 보내던 장례식장, 차갑게 굳어버린 딸을 흑바닥에도 가슴에도 묻지 못하고 쓰러졌던 엄마. 언니의 마지막 길조차 배웅하지 못한 엄마에게 언니의 죽음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아니라,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왜? 어떻게, 왜..."


밤마다 천장을 보며 내뱉던 엄마의 원망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엄마의 내장을 찔렀다. 보지 못한 것은 믿지 않게 되고, 믿지 못하는 진실은 몸 안에서 응어리로 굳어간다. 언니를 보내지 못한 그 지독한 슬픔이, 결국 엄마의 대장 속에 검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다시는 가고 싶은 않은 곳


다시는 그 '암 공장' 같은 거대 병원의 혼잡한 복도에 서고 싶지 않았다.

언니의 손을 잡고 수없이 오갔던 서울 대형병원의 풍경은 흡사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같았다. 5분 진료를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며, 절망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무채색 눈빛들. 그 차가운 곳에서 우리는 언니의 생명을 돈과 시간으로 저울질하며 조금씩 마모되어 갔다.


엄마의 암을 확인하고, 나는 결단했다. 이번에는 그 비인간적인 틈바구니에 엄마를 밀어 넣지 않겠노라고. 우리는 집 앞의 작은 종합병원을 선택했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이고, 의사가 엄마를 기억해 주는 곳. 대장암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고,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나 옅은 미소를 지었을 때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거대 병원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그 작은 해방감이, 어쩌면 언니 때와는 다른 결말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잔인한 데칼코마니


치료를 축하하던 박수 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 운명은 가장 잔인한 장난을 시작했다. 대장암 수술의 예후를 살피던 정기 검진 날, 의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담도암입니다. 전이가 있어서 수술이 어렵습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담도암. 마흔다섯의 언니를 앗아간 그 이름이 일흔다섯 엄마의 차트에 다시 선명하게 적혔다. 신은 어찌 이토록 상상력이 빈곤한 것일까. 왜 하필이면 언니를 데려갔던 그 똑같은 병명을 엄마에게 다시 던지는 것일까.


대장암을 이겨내며 비로소 언니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엄마였다. 이제야 언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갔음을 인정하려던 찰나, 운명은 똑같은 칼날을 엄마의 몸속에 들이밀었다. 그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빠르게 사람의 생기를 앗아가는지 너무나 잘 아는 나였기에, 한참 동안 입을 틀어막고 울어야만 했다. 이것은 신이 설계한 가장 지독한 데칼코마니였다.


마주하는 암흑


우리는 이미 이 전쟁에서 지는 법을 배웠지만, 다시 한번 싸울 준비를 한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그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가 보려 한다.


엄마는 담담했다.

“네 꿈엔 그렇게 자주 가면서, 내 꿈엔 왜 그렇게 안 오나,,, 했는데 그제 밤에 꿈에 나왔더라고. 꿈에서라도 보니 너무 좋더라 “


꿈에서 언니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묻지 않았다. 엄마는 항암 치료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흔다섯, 누군가는 '살 만큼 살았다'라고 말할 나이지만 엄마에게는 아직 '남겨진 숙제'가 있었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셋째 딸. 혼자 남겨질 그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라도 엄마는 이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했다.


언니가 못다 춘 살풀이춤의 마지막 자락을 엄마가 이어받으려 한다. 우리는 승률 없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다시 갑옷을 입는다. 언니가 나비가 되어 보여주었던 그 평온한 날갯짓을 향해, 우리는 한 걸음 더 무거운 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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