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언니의 첫 기일, 와르르 무너지다

78년생 김지영이었다.

by 기억하는 나비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맞이하는 첫 번째 일 년. 무심한 시간은 어느덧 흘러 언니의 기일이 돌아왔다. 나는 여동생과 함께 언니가 살던 그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익숙한 공기 속에는, 주인을 잃은 슬픔이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언니의 이름으로 일궈낸 꿈들

제사상 앞에 쪼르르 늘어선 세 명의 조카들. 그 아이들을 바라보던 내 옆에서 갑자기 ‘꺼억꺼억’ 하는 거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동생이었다. 참으려 애쓰던 울음이 끝내 제방을 넘치듯 터져버린 것이다.


여동생에게 언니는 단순한 자매 그 이상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동생들을 걱정하던 언니는, 시댁의 눈치를 보며 모은 돈으로 여동생의 편입 학원비를 대주었다. 언니가 제 살을 깎아 만들어준 그 기회 덕분에 전문대를 졸업했던 동생은 4년제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로 편입했고,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방송국 메인 뉴스의 취재기자가 되었다.


동생은 자신의 성공 뒤에 가려진 언니의 눈물을 알고 있다. 언니, 조카들과 유독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동생이었기에 언니가 없는 이 공간이 더더욱 가슴을 후벼 팠을 터였다.


대물림된 시집살이의 그림자

제사에는 언니의 시어머니와 두 명의 시누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언니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에 매일 등 하원까지 시켰던 시누이들의 아이들까지 북적였다.


살아생전 언니는 시누이들이 제집 드나들 듯 오는 것을 죽도록 힘들어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은 사라진 그 집에, 언니가 그토록 밀어내고 싶어 했던 이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앉아 있는 풍경이라니.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우리 자매에게 ‘시집살이’는 뿌리 깊은 트라우마다. 엄마 역시 할머니를 모시고 혹독한 고부갈등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우리 가정은 늘 평온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속 가장 큰 응어리는 아마도 본인이 겪은 그 고통을, 가장 아끼던 큰 딸이 고스란히 어쩌면 더 가혹하게 물려받았다는 자책이었을 것이다.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척(慘慇)의 고통

엄마는 언니가 떠난 그날부터 “저 사람들이 내 딸을 죽였다”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혹여 병이라도 날까 봐, 또한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라는 것을 알기에 수백 번을 달랬다.


하지만 입관식에서 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슬픔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엄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언니를 어루만지다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책에서나 보던 그 비극적인 묘사가 수사(修辭)가 아닌, 처절한 현실임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엄마, 언니가 간 건 저 사람들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엄마를 다독였던 나조차도, 제삿날 언니집에서 시누이들이 언니의 소중한 물건들을 제 것인 양 쓰는 것을 보고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이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조카들을 보며 울음을 삼키려 죽을힘을 다했지만, 결국 나 역시 그 가혹한 운명과 대물림된 상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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