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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Aug 29. 2015

논어 공부 (1) : 학이(學而) 편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

틈나는 대로 '논어집주'를 기본 텍스트로 논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논어집주는 논어에 대하여 남송 때 철학자인 주희가 제자들과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대표적인 논어 해설서 중 하나입니다)



이 과정에서, 딱 한 가지 만을 염두에 두고 읽고 공부하고 생각을 합니다 :

'논어로 어떻게 자기 계발을 할 것인가.'



이 목적의식에 기반한 읽은 내용 요약 및 이해한 바와 주관적인 생각을 여과 없이 계속 써 볼 예정입니다.

갑자기, 조금 민망한 비유입니다만, 팬티를 벗고 사람들 앞에 서는 기분이 듭니다. 나의 무지함과 잘못된 이해 및 생각량의 부족'만' 드러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래도, 결심을 했고 나름 공부를 했으니 앞으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만, 비난은 지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어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편이 '학이'편인데요, 이 편에서는 대체로 근본에 힘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구절인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너무 유명하고 잘 아는 부분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현재 월급쟁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도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뿐이겠습니까?


(1) 일하면서, 배우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배움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또는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일하는 과정 중에 얼마나 배우고 있습니까, 그리고 기뻐하고 있습니까?회사일을 하면서 '배운다'는 자세로 일하고 그 과정을 기뻐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얼마나 될까요? 배움은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주자와 그의 문도들은 이야기합니다. 배운 것을 얼마나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지금 질문을 던져 보지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時習(시습)은 익히지 않을 때가 없다의미입니다.

習(습)이라는 글자는 원래 새 새끼가 날기 위해서 날갯짓을  계속하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인데요, 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새끼 새가 쉴틈이 있을까요, 생존의 문제인데?

매 순간 순간이 배움이요 실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하루 일과 중에서 얼마나 배우고 익히고 본받고 있나요?

업무를 할 때 배움의 자세로 임하는 것, 그리고 그 배움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직장인 자기계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잘못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

잘못이 발견되면 속히 고쳐야지, 이걸 지금 드러내면 난처하지 않을까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서 속된 말로 뭉개고 있으면 나중에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일을 하다가 본인의 실수가 발견되거나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시작 시점에서 바로 윗 선에 보고하고 바로 고쳐야 합니다. 이게 굉장히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유치원만 나와도 아는 이야기인데 문제를 숨기고 또 숨기다가 판을 크게 키우는 경우가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로그 트레이더'라는 영화를 보면 엄청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본인을 위해서 문제 발생 초반에 깨지는 게 낫습니다.


(3) 교언영색(巧言令色) 하지 맙시다!!!

이 유명한 사자성어가 이 학이편에서 나온 것임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교언영색, 말 그대로 '번지르르한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을 의미합니다. 말과 얼굴빛으로 아첨하는데 힘을 주로 쏟으면, 멀리  오래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는 것이 '교언영색'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4) 절차탁마(切磋琢磨) 합시다!!!

원래 의미는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닦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조금 자세히 의미를 따져보면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은 뼈나 뿔을 자르는 것을 의미하고 '차'는 자른 이것들을 가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탁'은 옥이나 돌을 쪼아 잘라내는 것을 가리키며 '마'는 이 잘라낸 옥이나 돌을 연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닦는다는 의미만 강조하고 싶었다면 굳이 '절'이나 '탁'이라는 글자는 필요 없지 않았을까요?

먼저 재료들이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용도에 맞게 최적의 크기로 가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계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내가 가공할만한 가치가 있는 '원재료'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갈고 닦임을 당할 수 있도록 기꺼이 나의 몸과 마음을 내놓고 있는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직을 한 경우에는, 이런 과정을 기존의 나의 작은 성취 및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다른 원재료가 추가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뿔이나 옥과 '나'와의 차이점은 나의 갈고 닦인 부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남아 있다가 그게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보통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5) 남을 알아보는 눈을 키웁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할까 조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하라'


일전에 '프루스프테쿠스의 침대'를 가지고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요, 내가 가진 것'만'으로 남을 바라보면 절대로 다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면 반드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연차가 쌓여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들이 잘하는 게 뭔지를 빨리 파악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 때 정말 중요한 것이 남을 알아보는 눈 입니다.


남을 알아보는 눈은 조직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특히 리더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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