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는 책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하는 선생만 책을 가지고 있고
앉아 있는 학생은 그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선생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서
결국 나름의 책을 한 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이 중세
시대의 학습법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공부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권도 아니었던, 조금은
애매했던 나의 성적은 사실 잘못된 공부
방법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필기를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이 그냥
마냥 받아 적고 칠판에 적어 주는 것을
옮겨 적고. 사실 책에 다 있는 내용인데,
그것을 마치 무언가 크게 새로운 것이 있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옮겨 적고 외우는
그런 공부. 애매한 성적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해서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시간으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만 승부하려
했으니 나아지는 부분이 없지.
경청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중해서 듣고 책의 내용과 비교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사고하는 과정이 없이 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외워서 시험 보고 대학원까지 마치고 현재의 자리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공부 방법 및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이런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차분히 사고하려는 삶과 공부에 대한 자세가 중요한데 그냥 마음만 조급해서 때려 외우고 그걸로 시험보고 점수 따고 상급학교 진학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솔직히 조금 부끄럽다.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에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 내 지식의 깊이가, 내 사고의 넒리와 깊이가 얕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