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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Feb 13. 2016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서평을 쓰기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 탁월한 저자요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저자의 주된 주장인 '상상력'과 '뒷담화' 부분은 솔직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동의했고 또 인사이트를 얻었던 부분 중심으로 글을 쓸 수 밖에는 없네요. 생각만 하다가는 시작도 못하고 계속 묵힐 것만 같아서, 그냥 현 수준에서 생각한 만큼만 써보려고 합니다만 너무 묵혔더니 오히려 정리가 안 되네요.


진화론에 입각한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인류 문명에 대한 비평서라고 생각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한 번 추천해봅니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농부'라는 단어를 '현대인'으로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기술은 점점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분명히 세상살이는 갈수록 편해지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인생살이는 갈수록 무겁고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우울하게 말하면, 기술 진보를 통한 발전의 목적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효율성 향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더 많은 성과 및 더 많은 착취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경제 발전 및 소비 고도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치품의 일상품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현재 사용 중인 물건들을 돌아보면 대부분 과거에는 사치품이었으며, 더 생각해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많습니다.


버나드 맨더빌이 그의 저서  '꿀벌의 우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산업의 최대의 적은 '만족감'이며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기업은 이 '적'을 무찌르기 위해 소비자들이 계속 현재에 대해서, 특히 현재 사용 중인 물건들에 대해서 불만족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현대 모든 기술혁신의 출발점은 소비자들의 불만족 또는 공급자가 생각하기에 소비자가 불만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개선(?)해나가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육체적인 힘이 월등했던 이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던 경우는 역사적으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직화된 무력, 즉 군대를 잘 활용했던 이들이 권력을 잡고 지역 패권을 잡았던 경우는 많았어도.


사회성이라고 했습니다만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권력에의 의지가 강하고 이를 뒷받침할 머리(들)을 가졌으며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했었죠.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진정한 시금석은 유용성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이론이 지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공감을 했고 깨우침을 얻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힘으로 전환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능력을 주지 않는 지식과 이론은 지식이 아니라는 주장인데요 100% 공감합니다.


예를 들어, 왜 세계 금융계를 주무르는 이들이 플라톤을 공부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크라테스를 연구할까요?

단순히 취미로?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서양 철학 이론과 지식을 자신들의 부를 늘리고 지키는 도구로 사용해서 큰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꾸준히 공부하 연구하는 것 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참조)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데 그리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권력을 누가 잡아도 사람들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허트 로커'라는 영화를 보는데 도입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

War is a drug. 여기서 'War'를 'Power'로 바꿔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마약이기 떄문에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권력을 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행복에 최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유지'에 가장 큰 관심이 있습니다, '정권 재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을 수 없어서 추구하는 겁니다.


결론은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부여하기 전에 이들이 권력으로 우리를 어떻게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야? 라는 질문을 계속 그들에게 던지며 그래야만 너희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날려야 하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각인시켜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놀아나면 안 되고 정치인들을 가지고 놀아야죠, 그 마약 계속 받아 먹고 싶으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봐 라고 하면서요. 어찌보면 정치인들, 절대 끊을 수 없는 마약에 중독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니 '정상적인' 나머지 사람들이 바른 길로 인도해줘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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