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 : 날카롭고 공정함
#1 바쁘고 힘든 일상의 연속
지난 한 주간 말 그대로 무지무지하게 바빴습니다. 8시에 출근해서 11시, 12시, 새벽 2시, 다시 11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로도 많이 쌓이고 짜증도 많이 나고 그랬습니다. 가족들 얼굴도 거의 못 보고 잘 때 들어갔다가 자는 거 보고 나오고 하다 보니 그것도 정말 못할 짓이더군요. 참 힘들었던 일주일이었습니다.
#2 먹고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밤늦게 택시에서 내려 툴툴대며 걸어가다가 우연히 집 앞에 있는 치킨집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여다보니 주인아저씨가 맥주잔을 씻고 계시더군요. 장사 마치고 뒷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습니다.
#3 요즘 유행처럼 이야기되는 자영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직장이 있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살겠다는 흔한 다짐을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먹고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다만 일 년의 며칠만 새벽에 퇴근하지만 이 사장님은 매일 새벽에 퇴근할 것입니다. 저는 보고서 스트레스를 매일매일 받지만 이 분은 매일매일 매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메르스 같은 사태가 터져서 관광객이 감소하면 하루하루 매출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고, 예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조류 독감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치킨집 사장님도 당장 급감하는 매출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다 같이 힘들다는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먹고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엄정하고 공평합니다.
월급쟁이들은, 현실의 녹녹지 않음을 알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사업을 꿈꿉니다. 자영업이 얼마나 힘든지, 조직의 보호막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지를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조금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면 다른 종류의,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스트레스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4 부동산 임대업?
최근에 들은 농담 중에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웃으며 가볍게 넘기기에는 여러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은 말이었습니다. 수많은 월급쟁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열에 여덟 아홉은 부동산 임대업을 이야기하거든요. 근데 이게 그렇게 장미빛 인생을 만들어 주는 직업은 아니더군요.
대학 때 알고 지내던 선배님 중에 한 분이 당신이 살던 빌라 건물이 경매로 나오게 되자 그것을 조금 무리해서 샀습니다. 부동산 임대업자의 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어선 것이지요. 철없던 시절, 형님께 부럽다고 이야기했더니 이 형님의 답은 '힘들어 죽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건물주가 되니 세입자들이 컴플레인을 하면 바로 가서 처리를 해주던지 아니면 사람을 써서 그때그때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호소하더군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서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건물주이니, 공짜로 월세를 받거나 전세금 인상 효과를 누릴 수는 없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결국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저로 하여금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했습니다.
#5 그래서 결론이 뭔데?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월급쟁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영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등도 지금은 상황이 괜찮을 수 있으나 그게 얼마나 길게 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스트레스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로도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월급쟁이로서의 스트레스보다는 자영업이나 부동산 임대업의 스트레스를 택할 거야 하고 선택을 했다면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겠죠.
저는 장기적으로 '저자'가 되는 스트레스를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월급쟁이 스트레스도 가능한 길게 받을 거고요.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는 이상 작가임에는 틀림없으나 '저자'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는 것이니(마케팅, 편집자와의 충돌, 안 팔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등) 마음에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려고 합니다. 갑자기 조금 슬퍼지기는 합니다. 늑대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