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직장이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원유로부터 정제된 원료를 사다가 제품을 만들어서 다시 판매하는, 전형적인 B2B 업종에 속하는 제조업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업이었고 특히 마지막 1년 동안 사업기획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좌절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평생 석유화학 업종에서 사업기획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또 그러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직장 생활 초기에 특히 심각했었는데요, 처음 입사했을 때 제가 문과 출신인 데다가 화학의 화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직장 생활 내내 일종의 열등감 및 자극제로 작용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정말 윗분들이나 동료들이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습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특히 석유화학업종은, value chain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기본적인 화학 및 화학공학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이 지식이 없으면 결국 제품과 시장 전체를 읽는 눈을 가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시장 상황 및 수급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업종은 특히 하나의 원료로부터 다양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우리 회사 제품의 원료 가격이 오른다면 이 원료에 투입될 윗 단계의 원료가 다른 제품 생산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보고하고 대책을 세우려면 석유화학 업종의 전체 value chain을 머리 속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그냥 그냥 버티다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석유화학 관련 서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영양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2권 정도를 찾아서 열심히 읽고 머리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지요.
두 권 다 '석유화학공업'이라는 책입니다. 왼쪽의 책은 미국 책을 번역한 책인데 내용도 부실하고 번역도 조악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더 찾다가 찾다가 찾은 것이 오른쪽의 책인데 이 책이 기대 이상으로 정리도 잘 되어 있고 특히 원유 정제 단계부터 value chain 전반에 대해서 설명도 잘 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였는데 계속 읽다 보니 회사에서 들리는 이야기들과 연결이 되면서 차츰 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더군요.
생각해보니 이 무렵에 내 일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공부하기를 요구하는 삶이라면 마음을 비우고 능동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갈수록 직장 생활하면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도태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공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