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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열한 계단 - 채사장

by 생각창고

* '지대넓얕'의 작가 채사장의 자전적인 서평집이자 현재의 저자 자신을 만들어준 지적 여정에 대한 회고록입니다(물론 마침표를 찍지는 않았습니다). '문학'에서 '기독교', '불교', '철학', '과학'을 거쳐 '이상', '현실', '삶', '죽음', '나', '초월'까지의 11개의 계단, 즉 저자의 오늘을 만들어준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까지 박식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면 인생 참 피곤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의 지적인 항해에 함께 승선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죽음', '나', '초월' 이 3개의 계단은 벌써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말 그대로 그냥 훑어봤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좋은 책입니다. 제가 읽은 책들 또는 알고 있던 사실들도 책 안에 꽤 많이 등장합니다만 확실히 이해도와 사고의 깊이는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 책이 넓기는 하나 얕지는 않습니다. 읽다 보면 저자가 공부를 참 많이 하는 사람이고 생각 또한 많이 그리고 깊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고민하다 보니 책을 보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런 책 또한 쓰게 된 것이겠지요. 고민을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저자가 무언가를 찾아 삶 속에서 계속 헤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의 삶이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얼마나 고달팠을까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기도 합니다. 생각의 깊이와 삶의 만족도와 비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고달픔도 비례해서 커질 것 같아서 조금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 불편함의 감수를 적극 권유하는 저자의 마인드는 요즘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그랬다고 하지요,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호의'가 필요하다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편함'을 '익숙하지 않음'으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좌파는 하이에크와 칼 포퍼를 더욱 깊게 공부하고 시사점을 찾아야 하며, 우파는 마르크스를 읽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중의 의미로, 사고의 영역을 넓혀서 꼰대/꼴통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책을 읽는다는 것, 나만의 계단을 만들고 그걸 딛고 올라가 그만큼 성장하는 것

인생살이, 특히 본인의 지적 여정을 설명하는데 계단을 선택했다는 점이,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저자는 계단을 전부 오르막으로만 표현해놨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자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궁극적으로 본인이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줄곧 오르막이라, 그 과정이 작가 자신에게도 참 힘든 과정이었구나라고 짐작하게 합니다.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계단을 밟아왔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기독교' - '문학' - '현실' - '이상'의 계단을 현재까지 밟아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단을 밟게 될까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리막 계단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움 없이 밟고 내려가겠다는 다짐은 해봅니다. 뻔한 비유입니다만 내리막길을 걷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정상에 도달하는 경험을 등산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하게 됩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100% 오르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 익숙한 세계의 깊이를 더할 것인가 불편한 세계로 지평을 넓힐 것이냐

익숙한 세계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요즘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자의 불편한 세계로 지평을 넓히라는 권유는 어찌 보면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말처럼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합니다. 넓게 파다 보면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영역만 팔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불편하고 파기 힘든 부분도 파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생각의 지평, 사고의 영역이 넓어지고 그로 인해 깊어질 수 있습니다. 거듭 강조합니다만, 깊어지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합니다. 저자의 '지대넓얕' 철학은 결국 넓어짐과 깊어짐,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 나도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계단인 '문학'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다룹니다. 저자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죄와 벌'을 통해 소냐의 삶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으나 19세 시절의 저자는 로쟈에게 매료되었었다고 결론 부분에 이야기합니다. '죄와 벌'이 불멸의 고전이며 역작이고 강렬한 작품임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한사람, 즉 저자가 문학을 꿈꾸며 국문과를 가게 되었고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열병을-긍정적인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방향으로든-치러야 하는 작가인데요, 저자는 열병을 넘어 인생이 바뀌었네요. 첫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뀐, 아주 강렬한 독서 체험을 한 셈입니다. 저도 작년에 '죄와 벌'을 다시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강렬한 캐릭터들의 거침없는 진군, 심오한 철학적 깊이, 묵직한 질문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쉴 새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날리게 되는, 흔치 않은 경험 말입니다. 저자의 이야기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시너지를 내면서, '죄와 벌'을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03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앞둔 겨울 방학 동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특히 과학사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마냥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실 그 과정을 지금 돌이켜보면, 물리학,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고자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재의 세기'라고 일컫는 20세기 초반, 물리학계 천재들의 영웅담(?)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나마 알아간다는 사실이 참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의 독서에는 치명적인 약점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읽는다는 자기만족에만 집중을 했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해하려는 노력, 즉 사색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이론을,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나름 이해하고 넘어갔어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되면 책만 바꿔가면서 같은 내용을 반복 읽기만 했습니다. 참 즐겁고 보람찼던 시절이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만 채사장 작가의 '과학' 계단에는 상대성 이론, 현대의 우주론과 통일장 이론에 대해 훌륭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물리학 비전공자가 이 정도라도 알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 내용이라도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으면 어디 가서 대화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계단'을 딛고 다시 그간 읽었던 물리학 책을 읽는다면 한결 이해가 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기서 저는 저자의 고민과 사고의 깊이, 그리고 노력을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알고 있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지식 자체는 저나 채 작가님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이 정도 수준으로 요약 및 정리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네'라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깊은 생각과 치열한 고민의 깊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얼마 전에 니체의 '즐거운 학문'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무언가 좋은 이야기 가득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딱히 손에 잡히는 건 없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좋은 문장에 밑줄 치기만 잔뜩 한 그런 독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왜 니체의 사상이 정리가 잘 안되고 난해한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구절을 발견하고 앞으로 니체를 읽을 때의 팁을 얻었습니다 : 자신의 철학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까닭에 니체의 철학 개념을 단정적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즉, 문학적인 접근법으로 그의 책을 읽되, 그 안에 깔린 정신을 함께 읽으려고 노력해야 니체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Text에 대한 문학적인 이해 및 그 밑에 깔린 논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아주 독특한 철학자입니다, 니체는. 현대 철학 사상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니체이지만, 이 사람이 본격적인 문학을 했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왜 그의 대표작인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민음사'와 '열린책방'의 세계 문학 전집에 한 자리를 잡고 있는지 이 책을 읽고 어렴풋이나마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경 지식이 조금이나마 쌓이고 나니,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니체를 읽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어려운 상대성 이론과 니체를 이렇게 쉽게 요약하다니, 아무리 편집과 짜깁기가 용이해졌고, 구글신과 함께라면, 구글링을 통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쓰는 것이 불가능한 내용들을 썼습니다. 그 기반에는 저자의 충실한 이해와 깊이 있는 사고가 있습니다. 채 작가님은 넓은데 얇지는 않은 책을 쓰셨네요.


# 문장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갚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 모른다."


익숙한 세계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과 불편한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으로 조금 모자란 학생이었다. 반마다 그런 학생이 꼭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노는 것도 아닌, 그냥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것만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학생. 나는 그런 학생이었다.


<죄와 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하라." - 니체


일반적으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를 묶어서 현대 사상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근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합리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한 합리주의는 근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근대 : 근대성 - 이성, 중심, 발전, 진보, 성장
현대 : 탈근대성 - 반이성, 탈중심, 해체


이분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구분된 두 항 중에 하나의 항은 가치를 갖고, 나머지 항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늘의 가치만을 추구하다가 대지를 더럽히고 말았다.


자신의 철학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까닭에 니체의 철학 개념을 단정적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초인은 삶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자신을 극복한 존재를 말한다.


사회와 국가는 오직 당신의 노동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노동자로 살기 위해 이곳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좌표평면만 그릴 줄 알면 우리는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다. 기하학의 대상을 대수학, 즉 숫자와 문자로 된 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주 전체는 수학에 의해 빈틈없이 기술된다.(→ 정말 그런가???)


갈릴레이에 의한 존재자의 기하학화, 데카르트에 의한 존재자의 대수화, 뉴턴에 의한 관계의 수학화 과정


현재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은 양자역학에서 다루고, 중력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다루고 있어. 즉 과학자들은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합하고자 하지.(대통일 이론)


중남미의 부패한 독재 정권들은 UFC로부터 돈을 챙기고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상황을 방관했다. 이러한 국가들을 경멸의 의미로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당시의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그레나다, 과테말라가 대표적이었다.


낯선 시스템에 던져진 초기에는 누구나 그 시스템의 단점과 문제점을 쉽게 발견한다. 열정적인 그는 저항하고 좌절하면서 내적인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성실한 청년이 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나의 영혼은 이미 늙어버린 것은 아닐가 생각했다.


우선 책만 본 사람들의 한계는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는 자신에게 너무도 너그럽다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의 월급이란 내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월급은 내가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 제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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