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창고 Apr 15. 2017

[서평] 미운 청년 새끼 - 최서윤, 이진송, 김송희

*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을 진솔하면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세상이 바라보는 '청년'과 청년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청년'간에 큰 간극이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실성과 솔직함, 그리고 - 저자들 스스로가 청년 들인 만큼 - 생생함입니다. 읽어 보시면 이 시대와 현실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이 책을 보며 저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20대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정말 암울하고 답 안 나오고, 좌충우돌하기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좋은 편이어서 조금 늦은 나이이기는 했지만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고, 취업을 했으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어렵사리 집 한 칸 장만해서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20,30대들에게는 이런 '평범함'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악을 쓰고 온 힘을 다해도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고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느끼는 우울하고 힘든 현실이 담백하게 여과 없이 그려져 있어, 답답한 마음과 준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서,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솔직히 저자들을 대표로 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나만 너무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 같아서요.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어버린 이 시대, 사회는 고도로 발전했고 또 계속 발전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과거에는 평범하고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별함이 되어 버린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저자가 여러 명이다 보니, 문체의 일관성 및 글의 난이도 조절은 좀 아쉽습니다. 쉽게, 크게 공감하며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들이 있는 반면, 학술 논문에 가까운 어렵고 전문적이다 싶은 글들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좀 무거운 분위기인 것도 아쉬운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저자들, 이 시대의 청년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라고 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 '우리는 떠들어야 했다'


청년들은 모름지기, 말이 많고 시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청년들은 모름지기'라는 표현을 저자 청년분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제대로 떠들 줄 아는 청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현학적인, 구름 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이야기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신랄하게 풀어갑니다.


말하지 않고 떠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청년들의 고민과 힘든 삶은 청년들 스스로가 계속 떠들면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적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귀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세상에 불만을 이야기하고 또 대안을 제시하면서 쉬지 않고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 및 취지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세상을 향해서 '냉소'를 보내고 '분노'를 표출한다는 측면에서 말이지요.


# 청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어떤 사람들을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습니다. '나이 등 물리적인 기준으로 청년을 다른 세대와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중심적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계속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들고 갱신해가는 나가는 태도'로 청년을 정의하기도 하고, '구조의 유동성을 믿고, 혁명이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청년을 구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주제 및 소재를(즉 청년) 가지고 책을 쓰기 앞서 그것의 정의 및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상당히 수준 높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전에, 정책 입안자들께서는 '청년들이 과연 누구일까'라는 고민을 먼저 진지하게 했으면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그들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작금에 청년들을 향해 펼치는 정부의 정책들과 언론 보도의 방향성을 보면 거의 덤 앤 더머 수준입니다. 청년들을 거의 빈민층 및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위기의 아이들 취급을 할 뿐입니다.


# 기본적이고 꼭 필요하나 답 없는(?) 소재들을 다루다.


살면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을까요? 나의 의지와 기호가 가장 반영되기는 힘들지만 반대로 나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는요? 말 그대로 삶의 양식인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만고불변, 청춘들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 그리고 도저히 청년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주거 및 부동산 문제는요? 이 책은 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5가지 주제를 솔직담백 하게, 그리고 밑바닥에서 느끼는 것들 그대로를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① 먹고사니즘

요즘 청년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본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단 정해진 규칙과 기준에 맞춰 성실히 복무할 것 같으며, 윗분들 말에 순종적이고 조직 적응력이 높으면서도, 창의적이고 모험심이 뛰어난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막 쏟아낼 수 있는' 인재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 '언어도단'을 뛰어넘는, 즉 이 언어도단이 언어도단이 아님을 증명해야 취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보태어 증명하기 위해 짦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을 기업 서포터즈, SNS 기자단, 인턴십 등' 준비합니다. 이러한 준비들이 저자의 이야기처럼 얼마나 열심히, 성실히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부족함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치열한, 시대의 요구에 의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열정이 없다라든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어르신들의 멘트는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언어폭력입니다. 열심히 사는 삶의 표현 양식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무원을 꿈꾸고, 업무량이 적어 보이는 부서를 지원하는 게 왜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라는 이야기에도 개인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누구나 선택을 할 자유가 있고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개인의 몫인데', 이런 노력들을 세상을 편하게 살려고만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것도 넌센스입니다. 그런 선택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하여야 합니다. 본인들의 생각하는 노력의 형태가 아니라고 다른 이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 책에서 하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지적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② 정치

정치적으로 요즘의 20대는 참 불쌍한 세대입니다. '우리의 20대가 이명박으로 시작해 박근혜로 끝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비참해요'라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한 시기의 대한민국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우병 파동 및 세월호 사고 이후 벌어진 일들을 통해 '집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하고, 사진으로 기록해 여론이 이러하다고 전시를 해도 결정권자와 기득권을 옹호하는 언론이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만'인 시기를 너무 오래 경험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국민을 그렇게 겁박하며 과로하게 하나'라는 정권을 너무 오래 경험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 시기가 묘하게 잘 맞아서 정치인들이 여론이라는 것을 수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만 - 시민의 힘으로 평화롭게 정권이 교체될지도 모르는 시대를 이 시대의 청년들이 만들어 내고 또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희망 섞인 경험이 있어서 정치가 '더럽고 치사해도 놓치지는 않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도덕 교과서에나 등장하면 어울릴만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끊임없이 떠들고, 서로를 존중하고 좋은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망에 속하며, 계속되는 배움이 있는 일상'으로서의 정치를 청년들이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 청년들은 나이와 세대와 지역으로 구분되는 이들이 아닙니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나름의 생각을 가진 모든 이들입니다.


③ 주거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이 '주거' 부분을 읽을 때였습니다. 저의 20대의 경험이 저자들이 경험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하숙도 몇 달하고 친척집에 신세도 좀 지다가, 마지막에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업을 마쳤습니다. 처음은 반지하에서 시작했고 군대 갔다가 복학한 후에는 옥탑방에서 1년 여 살다가(한 여름의 옥탑방 생활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졸업할 때까지는 단독 주택의 별채 방에서 살았습니다. 남자 3명이서 같이 살았는데 셋이 누우면 좌우로 몸 돌리기가 힘들 정도로 좁은 방이었습니다만(그래서 여름에는 최악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도 참 많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연히 보증금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던 시절이라 신림동 고시원에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고시원, 한 방에서 2년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창문은 없었지만 2인실로 만든 방을 혼자 쓰는 것이어서 자취할 때보다 공간적으로는 더 여유가 있었던 그런 아이러니한 시절이었습니다. 방세는 월 23만 원이었는데 1년 동안 안 나가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2만 원 깎아주더군요, 그 사장님 참 좋았습니다(고시 식당도 같이 운영하셨는데 방세 드리는 날에는 식사하라고 식권도 몇 장씩 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 직전, 취업할 때까지는 하숙의 변형 형태인 잠만 자는 방이라는 곳에서 몇 달을 지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시원, 반지하에 사는 청춘들, 직장인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반대합니다. 이 고시원과 반지하가 '끝'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과정'으로 이곳들을 거쳐 갑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삶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맷집이 생기고 또 세상 살기가 정말 만만치 않음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학교 진학해서, 바로 전세로 시작해서 서울에서 주거의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요? 반지하 생활이나 고시원 생활이 생각만큼 그렇게 최악은 아닙니다, 인생의 소중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특히나 말이지요.


다만 이 고시원, 반지하가 주거의 '종착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회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공임대주택의 형태이던, 어떤 형태이든 간에 부동산을 통해 얻는 이득 중에 일부는 공적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반영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거의 문제는 결혼 및 출산과도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말 그대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고, 아이를 둘 이상 안 낳는 것이 아니라 못 낳는 겁니다, 사회 시스템이 워낙 훌륭해서 말이죠.


# 통찰력 있게 이 시대를 읽는 눈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사회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계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본을 가진 주체, 유저들이 인터넷에 무급으로 올리는 콘텐츠를 활용해 수익을 거두는 플랫폼 업체 등이 수익을 독점할 가능성이 큰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인간 대부분의 노동력을 산업 현장에서 배제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시야가 좀 넓어진 부분이 있다면 위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유통 수단을 독점하는 이들이 수익을 독점,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노동력을 산업 현장에서 배제시킬 것이라는 것인데요, 좀 섬뜩하면서도 눈이 트였습니다. 저도 '글'이라는 콘텐츠를 계속 이 시대에 공급하고 그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자칫하면 콘텐츠 유통업자들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에 탄탄해 보였던 나의 직장, 나의 생업이 말 그대로 한방에 훅가는, 그런 순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도 다시 한번 했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수인囚人 - 황석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